1인 가구도 ‘국평 임대주택’ 살 수 있을까[올앳부동산]
※투기와 투자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집값이 오르긴 오른 걸까. 우리가 살게될 집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통계로 점철된 부동산 기사의 행간을 읽어내고 판단을 내리려면 나만의 질문과 관점이 필요합니다. 경향신문만의 질문과 관점으로 부동산의 모든 것을 짚어드리는 ‘올앳부동산’은 경향신문 칸업(KHANUP) 콘텐츠입니다. 더 많은 내용을 읽고 싶으면 로그인 해주세요!
앞으로는 아이가 없는 1~2인 가구도 ‘국민평형’으로 불리는 전용면적 84㎡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최근 정부가 공공 건설임대주택 공급 면적을 가구원수에 따라 제한하는 ‘칸막이 규제’를 폐지하면서다. 대신 신생아 출산 가구가 경쟁에서 밀리는 일이 없도록, 이들은 어떤 유형으로 지원하더라도 1순위로 공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실제로 ‘면적 상향’에 성공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청년·신혼부부가 입주할 수 있는 공공 건설임대의 물량 자체는 줄어들고 있어서다. 공급량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임대주택 입주가 더 시급한 사람이 후순위로 밀리게 되는 ‘역진성’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양질의 임대주택이라는 한정된 재원을 놓고 ‘제로섬 게임’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1인 가구도 ‘국평’ 살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월 ‘공공주택 특별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가구별 면적 기준 상한선을 도입했다. 1인 가구 공급기준은 전용면적 40㎡에서 35㎡로 줄이고, 2~3인 가구는 각각 44㎡, 50㎡ 이하 주택에만 입주할 수 있게 했다. 4인 이상 가구는 44㎡의 하한을 뒀다. 식구가 많은 가구에게 더 넓은 집을 공급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자 ‘1인 가구는 10평 이하 원룸에서만 살라는 것’이라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행복주택은 대부분 원룸형인 26㎡과 거실과 방이 분리된 36㎡로 공급된다. 1인가구 입장에서는 면적 상한이 5㎡ 줄어들더라도 실제로 입주하게 되는 면적은 더 크게 줄어들게 되는 셈이다. 2인 가구도 상한(25~44㎡)이 최대 13평형이라 투룸 이상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에 국토부는 지난달 29일 공공건설 임대주택의 세대원 수 별 면적 기준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예비 입주자들이 원하는 평수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저출생 대책’이라는 취지에 맞게, 신생아 출산 가구는 청년·신혼부부·장애인 등 어떤 유형에 지원하더라도 1순위 공급하기로 했다. 남은 물량은 기존 배점표에 따라 가점제로 공급된다.
면적 규제는 시행규칙 개정을 거쳐 이르면 10월 폐지된다. 이기봉 국토부 주거복지정책관은 “다인 가구가 많지 않은 지역이라면 1인 가구들이 (상대적으로 넓은 집을) 전략적으로 신청해볼 수도 있다”며 “공공임대주택 거주자 중 60%가 1인 가구인데 소외감을 드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면적 기준 폐지, 누가 웃고 우나?
예비 입주자들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공공임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면적 제한으로 인해 재계약 때는 더 작은 집으로 옮겼어야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아이 있는 가구에 가점으로 밀릴 순 있어도 원하는 평수를 지원은 할 수 있게 된 점은 다행”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하지만 ‘칸막이식 규제’가 완전히 사라지면서 예비 입주자들의 셈법은 지금보다 복잡해졌다. 일단 선호도가 높은 36~39㎡형을 두고 ‘1인 가구’와 ‘아이 없는 신혼부부’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때는 가구원수 가점을 더 받을 수 있는 아이 없는 신혼부부의 당첨 가능성이 좀 더 높다. 당첨확률을 높이고 싶은 1인 가구 입장에서는 기존대로 원룸형에 지원하는 것이 유리하다.
문제는 2세 이상 자녀를 둔 3인 이상 가구다. 이들은 다자녀나 신혼부부 우선공급 물량(60%)의 1순위를 신생아 출산가구에 주고 남은 물량을 배정받게 된다. 만약 해당 평형에 지원하는 신생아 출산 가구수가 많다면 아예 경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행복주택 중 40㎡ 초과 주택 비중은 17.4%, 영구임대는 3.7%로 낮은 편이다. 비교적 다양한 평형이 골고루 공급되는 국민주택도 40㎡ 초과 주택의 비중이 절반(55.4%)에 그치고 있다. 단지나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겠지만 큰 평수를 둘러싼 경쟁이 심화할 여지가 큰 것이다.
임대주택이 더 필요한 사람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역진성’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예컨대 중위소득 100~110%의 신생아 출산가구가 무자녀 차상위계층보다 먼저 입주하는 것도 가능하다. 국토부는 신생아 가구에 우선 공급하고 남은 물량은 기존대로 가점제로 운영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 저소득층의 출생율이 일반 계층보다 낮게 나타났다”며 “신생아 공급물량(전체의 10% 내외)을 폐지하고, 이를 다자녀와 신혼부부 몫으로 돌리는 만큼 소득이 낮은 무자녀·다자녀 가구의 입주 물량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대주택, ‘제로섬 게임’이 안되려면
국토부 설명과 달리 ‘국평 임대주택’에 입주하는 1인 가구 사례는 실제로는 많지 않을 수 있다. 청년·신혼부부가 당장 입주할 수 있는 건설임대주택 수가 윤석열 정부 들어 대폭 줄어든 영향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4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한 행복주택 공급호수(모집공고일 기준)는 수도권 기준 2021년 8205호, 2022년 6347호에서 2023년 1236호로 급감했다. 청년 대상 행복주택 공급호수도 지난해 911호로 전년(6191호) 대비 15%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LH 관계자는 “2022년 기존의 행복주택·국민임대·영구임대를 ‘통합 공공임대’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현상”이라고 해명했지만, 청년·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한 통합공공임대 공급물량은 2022~2023년을 합쳐 500호도 채 되지 않았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공공주택 정책의 무게추를 ‘공공임대’에서 ‘공공분양’으로 옮긴 것과 무관치 않다는게 정 의원의 분석이다.
건설임대·매입임대·전세임대를 모두 더한 임대주택 ‘공급 총량’ 역시 지난 정부보다 줄었다. LH 공공주택 공급현황에 따르면, 2021년 이전까지 평균 10만가구를 상회하던 임대주택 공급물량은 2022년 9만4267가구, 2023년 5만9708가구, 2024년 6만1996가구를 기록했다. LH 관계자는 “동탄·파주 등 2기 신도시 공급이 마무리되고 대규모 신규 공급이 줄어든 영향”이라며 “2026년 이후 3기 신도시 입주가 본격화되면 임대주택 공급 물량은 다시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임대주택 공급이 예비 입주자 간 ‘제로섬 게임’으로 흐르지 않기 위해 공급 물량 자체가 충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윤성진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임대주택이 우선 공급되어야 하는 계층은 당연히 저소득층”이라며 “역진성 우려를 해소하려면 (신생아 우선공급과 면적기준 폐지로) 저소득층 공급량이 지금보다 줄어들진 않는다는걸 수치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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