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신병원 손·발·가슴 묶고 ‘코끼리 주사’…숨질 때까지 고용량

고경태 기자 2024. 8. 6. 06: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부천더블유(W)진병원 진료기록 입수
현직 정신과 전문의가 분석한 사망사건
5월24일 밤 11시30분 처음으로 세 명의 남자 보호사들에 둘러싸여 손과 발, 가슴을 묶이는 5포인트 강박을 당하는 피해자 박씨. 약에 취했는지 전혀 반응을 하지 않고 반듯하게 누워있다. CCTV 영상 갈무리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h:730’을 쳐보세요.)

“환자가 정신병적인 증상이 있었다기보다는 입원 등 환경의 변화로 거부 반응이 극심한 상태였는데 (다른 방법으로 이를 완화하려 하지 않고) 첫날부터 급성 조현병 또는 양극성 장애 조증에 준하는 약물을 투약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겨레와 함께 정신병원 입원 17일 만에 부천더블유(W)진병원에서 숨진 박아무개(33)씨의 진료기록을 확인한 전문의 경력 10여년의 정신과 전문의 강아무개씨가 지난 5일에 한 말이다. 유족이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복통과 장 폐색으로 박씨가 숨졌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제 박씨에게 투여된 약이 상당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음에도 과도하게 처방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강 전문의는 이런 이유로 가족 등 법적대리인 등에게 약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이뤄지고, 투약 이후 환자의 상태에 대해 면밀한 관찰이 이뤄져야 하지만 이런 과정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실제 유족은 병원이 상태가 악화된 박씨를 방치했다고 보고 병원장 양재웅씨 등 의료진 6명을 통상적인 업무상 과실치사가 아닌 유기치사죄를 앞에 내세워 형사고소한 상태다.

입원 초부터 고용량 진정작용제 투여

한겨레는 유족이 병원 쪽으로부터 확보한 간호기록지, 경과기록지, 경리·강박 시행일지, 안정실(격리실) 폐회로텔레비전(CCTV) 일람표 등 각종 진료 관련 기록을 받아 강 전문의에게 분석을 의뢰했다. 가장 먼저 지적된 건 입원 초반의 고용량 진정제 투여였다.

피해자인 33살 여성 박아무개씨는 지난 5월10일 다이어트 약 중독 치료를 위해 이 병원에 입원했다. 어린 시절부터 미국 유학생활을 하다가 귀국한 박씨는 7년 전부터 내과병원 등에서 대표적인 식욕억제제인 디에타민(대웅제약)을 처방받아 복용했다. 지나친 수면과 결벽증 등 디에타민 중독 증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울의 몇몇 대학병원에 입원을 하거나 통원치료를 받기도 했는데, 어머니의 권유로 부천더블유진병원에 최대 4주 예정의 입원을 하게 됐다.

지난 5월10일 부천W진병원에 입원한 박아무개씨가 의료진이 주는 약을 입에 넣고 있다. CCTV 영상 갈무리

입원 첫날 박씨는 경찰에 신고전화를 하는 등 낯선 환경에 대해 강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출동한 경찰은 면담 뒤 그냥 돌아갔고, 피해자는 체념 상태로 입원을 받아들였다.

격리실 시시티브이 영상을 보면, 입원 첫날인 5월10일 한참이나 환복을 거부하며 의료진과 실랑이를 벌이던 박씨는 오후 3시55분경 의료진이 준 약물을 삼킨다. 경과기록지를 확인해보니 이날 복용한 약은 페리돌정 5㎎, 아티반정 1㎎, 리스펠돈정 2㎎, 쿠아틴정 100㎎, 쿠에틴서방정 200㎎이었다.

강 전문의는 “(의료진이) 하나의 약으로는 충분한 진정효과를 가져올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들은 대부분 강한 행동 억제 효과를 가진 항정신병약물 혹은 최면진정효과를 가진 향정신성의약품이다. 하지만 주의할 것은 그만큼 의식 뿐만 아니라 신체기능까지도 저하시킬 수 있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투여 초반, 부작용 체크 거의 없었다”

이후의 간호기록지를 보면, 피해자 박씨는 졸림과 처짐을 느끼고 과도한 진정상태를 보이면서도 수시로 배고프다며 간식을 요구한다. 이는 피해자가 입원 이전 복용하던 디에타민의 성분인 펜터민 금단현상으로 인한 식욕 증가와 정신과 약물의 ‘식욕 항진효과’가 겹쳤기 때문일 수 있다고 했다.

5월14일 기록을 보면 “횡설수설한다”는 표현이 나온다. 19일부터는 섬망 증세도 기록돼 있다. 박씨의 어머니 임미진(가명·60)씨는 한겨레에 “입원한 이후부터 딸아이와 통화를 해보면 늘 정신이 혼미해 있었고, 딱 한번 면회를 했을 때는 비틀거릴 정도였다”고 말했다.

강 전문의는 정신작용제 부작용으로 소화기와 근육계통에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정신작용제의 흔한 부작용으로 항콜린 부작용(구강 건조, 장운동의 저하, 소화불량, 변비, 배뇨 곤란, 안구 건조, 섬망 등)과 함께 근육 계통의 부작용(근육 떨림, 급성 근긴장 이상, 좌불안석증, 신경이완제 악성증후군 등)이 있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의료진의 체크가 초반부에 거의 없었다”고 했다.

특히 “섬망은 정신과적 부작용이 아니라 소화기 계통 및 근육 부작용의 누적으로 생겼을 수 있는데, 이를 정신과적 증상으로만 보고 약으로 잠재우려 한 것 같다”고 짚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장의 흡수와 연동운동의 정체 상태가 지속되면서 장 폐색이나 패혈증성(전신성 염증반응 증후군) 쇼크가 진행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막판에 “대변물을 흘렸다”는 진료기록도 소화기 폐색과 함께 배변 조절이 안됐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코끼리조차 쓰러뜨릴 정도의 ‘주사제’ 사용

그럼에도 고용량의 진정제 투여는 사망하던 날까지 쭉 지속됐던 것으로 보인다. 투약기록을 보면, 약 때문에 졸리고 처진 피해자가 약을 삼키지 못하자 후반으로 갈수록 경구약보다 주사제가 쓰였다. 피해자가 약을 삼키지 못할 정도로 자기 몸을 주체 못하는데, 오히려 ‘역가’가 높은 주사제를 쓴 것이다. 이러한 주사제는 정신장애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코끼리조차 쓰러뜨릴 정도로 강한 진정효과를 갖는다고 하여 ‘코끼리 주사’로 불리기도 한다.

결국 박씨는 5월26일 저녁 격리실(안정실)에 갇힌 채 복통을 호소하며 문을 두드렸으나 병원 쪽은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보호사와 간호조무사는 5월27일 0시30분 박씨의 손과 발, 가슴을 침대에 두 시간 동안 묶어놓았다. 이후 박씨는 숨을 헐떡이고 코피를 흘리면서 강박에서 풀려났지만, 그로부터 1시간30분도 지나지 않아 숨을 거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 결과 ‘급성 가성 장폐색’을 사인으로 추정했다.

강 전문의는 피해자가 부천더블유진병원 입원 전 복용했다는 디에타민의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다이어트 약으로 쉽게 여겨지고 소비되는 측면이 있는데, 심한 부작용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연구 결과 그 성분인 펜터민에 대해 심장 독성, 심한 의존성과 남용을 이유로 2000년 시장에서 퇴출당한 약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계속 시판되고 비급여 약물로 분류되어 국가 모니터링 시스템의 사각지대에서 다이어트약 처방 유행과 더불어 점점 처방이 증가해왔다.

그는 정신과 약물이 정신질환을 완치시키는 ‘치료제’라기보다 심리, 행동 어려움을 완화하는 ‘조절제’에 가깝다고 설명한 뒤 “때문에 약을 적절히 활용하고, 관계 중심적인 치료를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신병원을 둘러싼 한국의 치료환경은 열악하기만 하다.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은 연평균 입원환자 60인당 정신과 전문의 1인, 입원환자 13인당 간호사 1인을 두도록 하고 있는데, 이런 환경에서는 약물을 섬세하게 사용하고 상담을 적절히 활용하는 인간 중심의 치료를 시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잇따라 드러나고 있는 정신병원 환자 강박 사망 사고가 문제를 드러내고 성찰을 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강 전문의는 “이번 사건을 정신과 의사에 대한 공격이라기보다는 정신질환을 바라보고 대처해야 하는 우리 사회 시스템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로 삼는 게 좋겠다”며 “지금의 치료 환경이나 약에 대한 의사의 처방이 분명히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시민들에겐 “모든 의료 영역처럼 정신의료 또한 효과와 부작용 모두 있다. 이를 견주어 사용하는 지혜가 꼭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