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지치고 전기료에 치인 ‘찜통’ 쪽방촌

백경열 기자 2024. 8. 6.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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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도 웃도는 방 온도…요금 걱정에 에어컨 사용 꺼려
시설 개선 조례들 실효성 없어…대구, 내년 개정 시도
지난달 30일 오후 대구 중구 한 쪽방에서 주민이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다. 낮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오른 이날 방 안 온도계가 31.84도로 표시돼 있다.

지난달 30일 오후 대구 중구의 한 여관. 폭염경보가 내려진 이날 윤모씨(60)는 6.6㎡ 남짓한 방 안에서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한 채 더위를 견디고 있었다. 그는 가벼운 옷차림에도 연신 땀을 닦아냈다. 방에 설치된 전자온도계는 31.84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바깥 기온과 불과 2~3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2013년부터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윤씨는 “쪽방에 사는 사람들은 한낮에 대부분 지하철 등으로 몸을 피한다”며 “작년부터 (시에서) 쪽방에 에어컨을 달아준다고 들었는데 설치가 불가능한 곳이 많고, 전기료 부담에 제대로 틀지 못하는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폭염이 본격화하면서 쪽방촌 거주민과 노숙인 등 폭염 취약계층을 위한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국 각 지자체는 다음달까지 노숙인·쪽방촌 주민 등 폭염 취약계층에 냉방용품을 지급하고 임시 주거공간 마련, 무더위 쉼터 및 폭염 모니터링단 운영 등에 집중한다. 대구시의 경우 2018년 제정한 ‘폭염 및 도시열섬현상 대응 조례’를 통해 지붕녹화 및 쿨루프 같은 건축물 녹화시설, 선풍기 등 냉방물품 등을 지원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폭염 취약계층에게는 이 같은 조례도 역부족이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해당 조례가 폭염 관련 시설 개선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조례에는 선풍기 구입 예산 정도만 반영돼 있는데 냉방시설의 안정적인 설치 및 가동을 위해서는 전기료 등 추가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전국 대부분 지자체들도 별도의 전기료 지원 등을 조례안에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대구시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쪽방 에어컨 설치 사업’을 벌였다. 지난해 쪽방 29개동에 에어컨 96대를 설치했고, 올해 추가로 15대를 놓았다. 전기배선 노후화 등 안전상 이유로 쪽방의 3분의 1가량은 설치가 이뤄지지 못했다. 지역 쪽방 주민은 592명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올해까지 대구시는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후원으로 에어컨이 설치된 쪽방에 1대당 월 5만원씩, 2개월간 전기요금을 지원한다. 내년부터는 지원 근거가 사라진다. 이에 값비싼 냉방시설이 자칫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에어컨 3대가 설치된 중구 한 여관(16명 거주)의 경우 지난해 여름철 한 달 평균 약 35만원의 전기료가 나왔다. 평소보다 10만원 정도 많은 수준이다. 이곳 주인은 “내년부터 지원이 끊긴다면 주민들이 에어컨을 쓴 만큼 요금을 내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민철 대구쪽방상담소장은 “에어컨 설치 당시에도 전기세 부담을 느낀 쪽방촌 주인들의 거부로 설치하지 못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면서 “쪽방의 경우 방이 여러 개 붙어 있는 구조여서 에어컨 설치에 따른 전기 용량이 커지는 만큼 설비 개선비용을 지원 근거에 담는 등 폭염 조례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의회에서도 지난해 ‘폭염 조례’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대구시는 난색을 표했다. 지원 근거를 조례 형식의 ‘강제조항’으로 만드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것으로 시의회는 보고 있다. 임인환 대구시의원은 “여름철에 한해 쪽방 거주민들이 다른 곳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이주 대책이나 전기료 등 생활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내용을 조례에 담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의회는 올해 폭염 상황을 반영해 내년 6월쯤 조례 개정을 다시 시도하기로 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현재 폭염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다양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쪽방촌 전기료의 경우 내년 여름에는 에너지바우처 형태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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