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지 않는 물·그늘·휴식…폭염에도 '쉴 권리' 그림의 떡 [심층기획-폭염 속 '작업 중지권' 강화 논란 가열]
열사병 등으로 2024년 14명 사망
근로자 휴식 요구 ‘근태불량’ 판단 우려
폭염에도 당당한 쉴 권리 요구 어려워
마트 지하주차장 카트 정리 등 사각지대
고용부 사측 위주 점검 방식도 도마 위
최근 여야 발의된 관련 법안만 총 5건
입법조사처 하계 90.7시간 적용 추정
경영계 “획일적 작업 중지 피해 막대”
고용부도 “이미 관련 규정 있어” 신중론
“휴게실, 에어컨… (그런 건) 여기 하나도 없어요.”
박세중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이 같은 현장 상황에 관해 “10층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거기까지 계단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게 더 힘든 일이어서 통상 내려오지 않고 위에서 쉬곤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동자가 쓸 수 없는 휴게실을 휴게실이라고 할 수 있냐”며 “최소 2층에 한 개씩은 휴게실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박 국장은 현재 대책이 강제성 없는 권고에 그치는 탓에 실효성이 없다고 짚었다.
그는 “‘더워서 일을 못 하겠다’고 했을 때 사업주가 ‘근태가 불량하다’는 다른 핑계를 대서 내일부터 못 나오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휴식을 요구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제52조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고, 이를 요구한 근로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해선 안 된다고 나와 있으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코스트코 대구점 주차장에서 카트 정리 업무를 하는 이모씨는 다 같이 작업을 멈출 수 있는 건설업계가 오히려 상황이 낫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10분을 쉬면 대체할 사람이 제가 있는 자리로 와야 한다”며 “건설업계처럼 일시에 작업을 중단하면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어 “주차장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더 덥고, 차량이 내뿜는 열기 때문에 대기 온도와 체감온도 차이가 크다”며 “지난해 산재 발생 뒤엔 아침부터 환풍기를 돌리긴 하지만 습도가 80% 넘어가는 날엔 여전히 고역”이라고 토로했다.
강한수 건설노조 수석부위원장은 “건설사 측이나, 현장 소장에게 물어보면 당연히 작업 중지권이 잘 이행되고 있다고 하지 않겠느냐”며 “현장 노동자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해야 맞다”고 말했다. 고용부 측은 올해도 점검을 계획하고 있는데 조사 방식 변경은 현재 검토하지 않고 있다.
노동계에서 실효성 있는 작업 중지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여야 합쳐 작업 중지권을 강화하는 취지의 법안이 총 5건 발의됐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 입법영향분석’ 보고서에서 작업 중지권이 강화할 때 영향을 분석했다. 산안법 제52조의2(기후여건에 따른 작업 중지)를 신설할 때를 가정한 분석이다. 보고서는 작업 중지권을 강화하면, 장기적으로 노동생산성 감소를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실제 작업 중지 명령이 시행될 경우 여름철 90.7시간, 겨울철 43시간 작업이 중지될 것으로 추정했다. 최근 6년간 발령된 평균 폭염 경보가 연간 12.2일, 한파경보가 5.8일이라는 점이 근거다.
이에 대해 경영계는 현행 산안법 39조에 이미 사업주가 고온(폭염), 저온 등에 의한 건강장해 예방을 위한 보건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며, 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폭염특보와 같은 재난경보 기준으로 획일적인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리면, 산업 현장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폭염과 한파에 따른 작업 중지가 이뤄진다고 가정하면 연간 20일의 작업 중지일이 발생할 것”이라며 “생산량 감소, 납기일 지연, 수출 경쟁력 저하 등 부작용이 심각할 것”이라고 했다.
고용부도 경영계가 언급한 “이미 관련 규정이 있다”는 점을 들어 법 개정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법률 개정의 실익, 작업 중지 명령의 요건 등을 고려해 법 개정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폭염·폭우·태풍 특별대응 기간을 운영하는 등 폭염에 취약한 현장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지민 기자 aaaa346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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