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짜리 부품만 바꿨더라면…대형로펌엔 수십억
중대재해 87% '추락·부딪힘·깔림·끼임'…후진국형 재해
안전 비용 '몇만원' 아끼다 변호사 비용에 '수억원' 쓰는 경영자들
"솜방망이 처벌이라도 기소사건 모두 유죄…비판하며 개선해야"
"안전한 일터 만들자는 법 취지 공감해야"…법조계·산업계도 자성 필요
▶ 글 싣는 순서 |
①2.5년간 대기업 기소 단 한 건…무력화된 '중처법' ②소극적인 檢+관대한 法…중처법, 대형로펌에는 '잭팟' ③매일 바꿔가며 '합의 종용'…유족들 "사람으로 안 보여" ④만원짜리 부품만 바꿨더라면…대형로펌엔 수십억 |
"판·검사 출신 법률가들이 공익적 취지가 강한 법의 기능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사법부의 신뢰를 무너뜨릴 결과로 이어질 게 자명하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처법)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 상황에 대해 고려대 노동대학원 김성희 겸임교수이 내린 결론이다.
김 교수는 '중처법의 오작동'이 사법부의 불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전망을 내놓을 수 있는 근거는 우리나라의 중대재해가 대부분 안전·보건 조치만 시행해도 예방할 수 있는 '후진국형'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중대재해가 벌어졌는데도 이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힘쓰는데 법기술자들의 능력이 낭비되고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중대재해 87% '추락·부딪힘·깔림·끼임'…후진국형 재해
관련 통계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6일 고용노동부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강득구(더불어민주당·안양만안) 국회의원실에 제출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현황(올해 3월말 기준)' 자료를 보면 2022년 1월 27일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 이 법이 적용된 사건은 543건에 이른다.
CBS노컷뉴스가 해당 중대재해 사건들을 재해 유형별로 나눠 다시 분류한 결과 실족·추락이 210건으로 가장 많았고, 부딪힘 96건, 깔림 85건, 끼임 84건 등 후진국형 재해가 전체 중대재해의 87.5%를 차지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더라도 그 아래 안전그물이 있었다면, 금속기계에 작업자가 협착되지 않도록 안전장비를 구비했다면 사망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의미다.
이는 역대 선고가 이뤄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뤄진 17건의 중처법 선고 사건에서 가장 많이 위반한 사항은 '유해·위험요인 확인 및 개선 절차 마련'과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업무수행 평가 기준 마련'이었다.
기소된 17개 업체 가운데 15개 업체가 이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 경영책임자에게 부여된 안전·보건 확보 의무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사항이 이행되지 않아 재판에 넘겨졌던 셈이다. 그럼에도 사업주 대부분 실형을 피해 '집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지금까지의 중처법 재판이 경영자들이 안전한 작업 환경을 조성하는 데 의무를 지키지 않았지만 '법기술자'의 조력으로 실형은 피하는 데 급급한 형태로 진행됐다는 방증이다.
안전 비용 '몇만원' 아끼다 변호사 비용에 '수억원' 쓰는경영자들
중처법 위반으로 1심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엠텍의 경우는 경영주의 안전의식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엠텍에서는 2022년 7월 네팔 국적 40대 남성 노동자가 다이캐스팅(주조) 기계 내부 금형 청소 중 금형 사이에 머리가 끼여 그 자리에서 숨졌다.
대한산업안전협회는 사고가 발생하기 전부터 해당 기계 일부 안전문 방호장치(리미트 스위치)가 파손돼 '사고 위험성이 높고, 즉시 개선이 필요한 상태'라고 수차례 알렸다. 다이캐스팅 기계 안전문 방호장치는 온라인 공구마켓에서 1만원대의 가격에 판매되는 부품이다.
사고 열흘 전까지도 이같은 경고는 이어졌지만 회사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재판이 시작되자 엠텍 대표이사는법무법인 변호사 7명을 선임해 재판에 대응했다. 재판부는 "유족과 합의하고 사후 시정조치를 마쳤다고 하더라도 집행유예 등으로 선처할 수 없다"며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엠텍 측은 선고가 부당하다며 상고했다. 이 사건은 현 시점에서 중처법 관련 최고 처벌이 이뤄진 사건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신하나(법무법인 덕수) 노동위원장은 "중처법은 기업 경영자들을 처벌하는 법이기 때문에 큰 기업일수록 대형 법무법인에게 선임료를 낸다"며 "로펌들도 여타 형사사건과 달리 거액의 변호사 선임비용을 안내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고 설명했다.
신 변호사는 "로펌마다 비용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형로펌의 중간급 이상 변호사들의 수임료가 시간당 60만~100만원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이 기준으로 따져봐도 수억원으로 계산된다"며 "중소로펌도 시간당 40만~50만원 수준으로 수임료를 받는 걸 감안하면 중처법이 도입되고 로펌들의 수입이 엄청 늘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려대 김성희 교수도 "변호사들이 사활을 걸고 회사 대표의 사법적 위험에 적극 대응하는 것에 비춰보면 중처법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얼마나 위력적이고 의미있는 법인지를 드러낸다"며 "대형로펌에 수억원씩 돈을 들일 텐데, 그 돈이면 얼마든지 안전대책, 시설 마련하는 데 충분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꼬집었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도 기소사건 모두 유죄…비판하며 개선해야"
전문가들은 현실에서 무력화된 중처법이지만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섣부르다고 입을 모았다. 노무사 출신인 김남석(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비록 집행유예지만 법원이 기소된 사건에 대해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는 점에서 로펌들의 중처법 대응전략이 성공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주희(법무법인 다산) 변호사는 "아직 도입 초반이라 기준점이 없어 판사들이 중처법 법리를 정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처럼 중처법 사건에서 약한 처벌이 반복되다면 노동자의 작업 안전을 개선해 중대재해를 줄이자는 법의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어 법조계가 이에 대해 계속 비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족 합의→감형' 법원의 양형 패턴 변화 필요
이 변호사는 지금까지 중처법 재판이 경영자의 과실을 확인했으면서도 유족과 합의를 했거나 처벌을 원치않는다는 이유로 감형하는 경향으로 굳어지는 것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원 감형 요소 가운데 유족과의 합의 부분은 한걸음 더 들어가 우리사회가 고민해야 할 대목이 있다"며 "형사사건, 중대재해처벌법 수사와 재판에서 피해자들의 원통함이 제대로 양형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재판 구조상 피해자들은 참고인 또는 관련자 수준에서 사건을 참관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며 "피고인 사측이 변호인단을 꾸려 적극 대응하는 것과 달리 피해자들은 오로지 검사의 판단과 구형만 지켜볼 뿐, 죽음이나 산업재해 장애 등 극단적인 피해를 입고도 제대로 처벌 요구조차 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피해자들이 엄벌을 요청하는 의견서 등을 낼 순 있지만 판사에게 참고 사항에 불과하다"며 "형사사건이나 중대재해 사건의 피해자들이 재판에서 피고 측과 동등한 지위에서 사건에 대응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나 체계를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강조했다.
"안전한 일터 만들자는 법 취지, 법조계·산업계도 자성해야"
법조계 내부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신하나 변호사는 "중처법의 특혜를 가장 크게 누리고 있는 주체가 로펌인데, 이들이 정책토론회 같은 데서는 중처법이 포괄적으로 규정돼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며 "법인 대표에 대한 포괄적인 형사처벌 조항이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로펌에 돈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집단이 처벌 규정을 더 구체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위선에 가까운 행위"라고 비판했다.
산업계의 인식 전환도 필수다. 김성희 교수는 "산업계도 중처법으로 인한 경영자 처벌이 과도하다고 인식할 게 아니라 기존 관련법 체계만으로 막을 수 없는 사고들을 더 강력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도입된 법의 근본 취지에 공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오죽하면 이런 법이 만들어졌겠는가, 왜 이 법이 필요한 것인지 생각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투자와 노력에 더 집중하는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정부와 언론 등도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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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주영민 기자 ymchu@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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