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당뇨·고혈압, 관리만 잘하면 합병증 없이 ‘9988’
주기적 예방 교육·진료 음성 알림
광명시, 30세 이상 합병증 검사비 지원
혈당 수치 인지율도 전국 평균의 배
2013년부터 참여한 서울 성동구
누적 1만7000명 육박… 98%가 만족
혈압·혈당 인지율 서울 평균 웃돌아
“당뇨병은 자가 관리가 중요하다는 걸 알지만 혼자 실천하기 버거웠는데, 센터에 다니며 주기적으로 당뇨 교육을 들으니 동기 부여가 되고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려 나 스스로 노력하게 되는 것 같아 좋습니다.”(60대 여성 당뇨병 환자 정모씨)
“동네 의원에서 진료비, 약값 할인도 해주고 보건소 선생님들이 병원 갈 때 되면 문자를 보내주고 전화로 안부도 물어줘서 항상 고맙게 생각해요.”(80대 남성 고혈압 환자 안모씨)
정씨와 안씨는 거주지인 경기도 광명시의 고혈압·당뇨병 등록교육센터(일명 고·당센터)에 다니며 해당 질환을 꾸준히 관리하고 있다. 두 사람은 고·당센터에 참여하며 느낀 점을 이렇게 말했다.
고·당 등록교육 사업은 질병관리청이 2009년부터 시작한 1세대 만성질환 관리 프로그램이다. 고혈압과 당뇨병의 지속 치료율과 자가 관리 역량을 높여 심근경색, 뇌졸중, 만성 콩팥병 등 중증의 합병증을 예방하고 의료비를 절감하기 위해 도입했다. 광명시를 시작으로 2012년 이후 19개 시·군·구에서 25개 보건소가 참여 중이다. 동네 병·의원과 보건소의 협력을 기반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절반씩 비용을 부담해 운영한다(일부 지자체는 자체 사업으로 운영).
고·당센터에는 30세 이상 고혈압, 당뇨 환자 누구나 등록할 수 있지만 65세 이상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주로 이용하는 단골 병·의원의 연계로 센터 시스템에 등록하면 당뇨·고혈압 이론과 실습, 영양·식이, 운동, 합병증 예방 교육을 주기적으로 받게 되고 건강 상담도 수시로 할 수 있다. 센터는 또 환자들의 병·의원 진료일 1주일 전에 문자나 음성으로 알람을 보내 준다.
광명시 고·당센터 한애란 팀장은 5일 “병원 예약일이 두 달 이상 지난 환자 중 임의로 치료를 중단한 사람은 보건소의 방문건강관리팀에 의뢰해 가정 방문 간호사가 건강 상태 및 치료 여부를 확인 후 센터로 회신해 준다”면서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층의 건강까지 세심하게 살핀다”고 말했다.
30~64세 신규 등록자에겐 혈압계도 무료로 나눠준다. 심뇌혈관질환 예방 관리가 중요한 해당 연령대의 등록률을 높여 지속 치료와 건강 관리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자가 관리 능력을 키워 주기 위해서다.
또 65세 이상은 본인 부담 진료비 중 월 1500원, 약값 월 2000원을 합쳐 총 3500원을 감면받는 혜택을 받는다. 병·의원의 경우 등록비로 65세 이상은 1인당 연간 1000원, 30~64세는 5000원이 지원된다. 환자와 의료기관 참여를 독려하기 위함이다.
20년 전 당뇨병과 고혈압을 진단받은 정특영(69)씨는 8년 전 서울에서 광명으로 이사 온 뒤 다니게 된 내과의원을 통해 이곳 고·당센터에 등록했다. 정씨는 “센터 등록 후 운동이나 식습관이 확 바뀌었다. 옛날에는 밥을 빨리 먹고 과자도 즐겼는데, 지금은 그런 습관을 싹 버렸다”면서 “그 덕분인지 당뇨와 고혈압을 오래 앓았어도 아직 심장이나 뇌에 합병증을 겪은 적이 없다”고 했다.
5년 전 같은 고·당센터에 등록한 당뇨 환자 이금주(65)씨는 6주간의 건강 리더 양성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환자 자조 모임을 이끌고 있다. 센터 등록자 중 1년 이상 스스로 관리가 가능한 모범 환자를 건강 리더로 양성하는 과정이다. 이씨는 “지난 3월과 6월에 참여했는데, 9월에 있는 다음 교육이 너무 기다려진다”고 고대했다.
광명시 고·당센터는 65세 이상에게 진료비, 약값 지원 외에 시 재정으로 30세 이상 등록자에게 만성 콩팥병(연간 1만원 이내)과 안질환(연간 1만8500원) 등 합병증 검사비 일부도 별도 지원한다. 이 또한 환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광명시 고·당센터장인 이원영 중앙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소액이지만 노인들에게는 기본 진찰료 정도가 인센티브로 제공되니까 동기 부여가 된다. 병원도 더 자주 가게 되고 의사들도 등록을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이 때문에 초창기에는 ‘3500원의 기적’으로 불렸다”고 설명했다.
광명시 고·당센터는 관내 병·의원 외래 진료 실인원 대비 30~64세는 7%, 65세 이상은 100% 등록을 목표로 한다. 지금까지 누적 등록자는 7월 말 기준 3만9691명이다. 외래 진료 실인원(5만5135명)의 70%가 넘는다.
광명시는 15년간 센터를 운영한 결과 혈압·혈당 관련 지표가 전국 최고 수준을 보이는 등 뚜렷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질병청의 2023년 지역사회 건강조사에서 광명시의 혈압 인지율은 87.1%로 전국 평균(62.8%)과 경기도(62.1%) 보다 훨씬 높았다. 혈압 진단 경험률 역시 27.2%로 전국(20.6%)과 경기도(20.7%)를 웃돌았다. 고혈압 치료율도 95.7%로 전국(93.6%)과 경기도(93.2%)를 상회했다. 혈당 수치 인지율은 광명시가 72.1%로 전국 평균(30.6%)과 경기도(30.4%) 보다 배 이상 높았다. 당뇨병 치료율도 95.3%로, 비슷한 수준의 전국 및 경기도(각 92.8%, 92.9%)를 웃돌았다.
서울 성동구는 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유일하게 고·당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2013년부터 11년째다. 성동구 고·당센터에 따르면 고혈압·당뇨 환자 등록자는 2013년 637명에서 꾸준히 늘어 올해 6월 기준 누적 1만6598명으로 26배나 증가했다. 관내 병·의원 외래 진료 실인원 대비 31.3%에 해당한다. 박경옥 팀장은 “연중 열리는 소규모 상설 교육장 운영으로 참여자들 만족도가 높다. 1회당 교육 인원을 20명 이내 소집단으로 구성해 교육의 효과성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개별 프로그램의 효과도 입증됐다. 2020~2022년 센터가 운영한 당뇨병 집중관리 프로그램 보고서에 의하면 85명 대상 조사에서 참여 전·후 당화혈색소(2~3개월간의 혈당의 평균치)가 8.3%에서 7.7%로 감소했다. 센터가 운영 10주년을 맞아 진행한 등록 환자 만족도 조사에선 응답자의 98%가 고·당 서비스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3주년 조사(71%) 때 보다 훨씬 높아졌다. 5년 전 성동구 고·당센터에 등록한 이관모(73)씨는 “센터 교육 프로그램을 들으며 ‘내 병은 내가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고 했다.
지역사회 건강조사(2013~2022년)를 보면 성동구의 혈압 수치 인지율은 2013년 대비 33.4%포인트(44.8%→78.2%), 혈당 수치 인지율은 47.6%포인트(11.5%→59.1%)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당뇨병의 콩팥 합병증 검사 수진율도 같은 기간 46%포인트(35.7%→81.7%), 당뇨 안질환 합병증 검사율은 31.6%포인트(40.1%→71.7%) 높아졌다. 성동구의 혈압·혈당 인지율은 서울시 전체 평균보다도 월등히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박 팀장은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고혈압·당뇨 관리의 궁극적 목표인 심뇌혈관질환 사망률의 지속적 감소가 확인됐다는 점”이라며 “통계청의 2012~2022년 사망 원인 통계를 보면 성동구의 10만명 당 심뇌혈관질환 사망률이 10년간 평균 25%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그는 “만성질환 관리 사업은 심뇌혈관질환 진행 시기 지연, 입원율 감소, 사망 예방이 목적인 만큼 단기적 성과보다는 20년 30년 후를 내다보고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지역 환자들의 만족도도 높아 전국 확대가 필요하다. 그러면 국내 심뇌혈관질환 예방의 시너지 효과가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2년 기준 국내 10대 사망 원인 중 당뇨병은 8위, 고혈압은 9위다. 합병증인 심장질환이 2위, 뇌혈관질환은 5위로 10대 사인 중 4개가 해당한다.
이원영 중앙대 의대 교수는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약 83세이고 건강 수명은 70세가 채 안 된다. 생의 마지막 10~15년은 질병을 안고 산다는 얘기다. 이 시기 질병은 암도 있지만 고혈압·당뇨, 그로 인한 합병증이 대다수다. 만일 고·당 사업의 진료비 등 지원 대상을 60세 은퇴 나이로 확대하고 의료 서비스를 강력하게 개입하면 죽기 전까지 건강 수명을 늘릴 수 있다. 의료비 절감 효과는 물론 환자 삶의 질도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질병청도 이처럼 우수한 사업 성과에도 불구하고 2012년 이후 장기간 19개 시·군·구에 국한돼 사업이 진행된 데 대한 한계를 인지하고, 향후 사업 지역 확대를 꾀하고 있다. 관건은 예산 확보다. 질병청 관계자는 “내년에 6개 시·군·구를 추가하고 장기적으로 전국 확대를 계획 중이다. 이를 위해선 예산 확보가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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