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은 체조의 신, 미국을 감동시켰다… “이게 올림픽 정신”
시상식서 동료와 무릎 굽혀 1위 선수 축하
모두의 주목을 받은 ‘체조의 신’ 시몬 바일스(27·미국)가 파리 올림픽에서 딴 마지막 메달의 색깔은 은색이었다. 하지만 시상대 위에서 보여준 행동 하나에 “금메달보다 값진 명장면”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란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바일스는 5일 여자 기계체조 마루운동 결선에서 발을 헛디디는 실수 등 불운이 겹쳐 은메달을 획득, 이번 올림픽을 3관왕(단체전·개인 종합·도마)으로 마무리했다. 목표로 했던 5관왕에는 조금 못 미치는 결과를 낸 것이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 열린 시상식에선 어떤 자책이나 좌절, 실망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바일스는 3위를 기록한 동료 조던 차일스(미국)와 함께 웃는 얼굴로 무릎을 꿇고 손을 활짝 뻗어 레베카 안드라데(브라질)를 카리켰다. 마치 ‘스포트라이트는 당신의 것’이라 말하는 것 같았다. 바일스는 취재진과 만나 “시상대 위에 모두 흑인 선수가 오르게 돼 기분이 좋았는데, 조던이 ‘우리가 허리라도 숙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며 “당연히 그러자고 했다. 그녀는 완벽한 연기를 선보였고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차일스 역시 “안드라데의 헌신과 노력은 조명받아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소셜미디어에선 차일스의 동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바일스가 본인의 은메달보다 더 기뻐하며 차일스를 포옹하는 모습도 화제가 됐다.
올림픽에서 금메달 7개, 세계선수권에서만 금메달 23개를 딴 바일스는 체조 사상 첫 10점 만점 연기를 선보인 나디아 코마네치와 더불어 여자 기계체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명으로 평가받는다. 이 분야에서 흑인이 약하다는 편견을 깬 선수기도 한데, 전 영부인인 미셸 오바마 등이 기회가 될 때마다 바일스를 응원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22년 7월 바일스에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영예인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여했다. 바일스는 2020 도쿄 올림픽 당시 ‘정신적 안정’을 위해 기권한 아픔이 있다. 정치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특정 현안에 있어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왔는데, 이 때문에 애국심을 유달리 강조하는 이른바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지지자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바일스가 지난 2일 X(옛 트위터)에서 “나는 나의 ‘흑인 일자리(Black Job)’를 사랑한다”고 말한 것을 놓고도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우회 저격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사흘 전 트럼프가 전미흑인언론인협회(NABJ) 초청 토론회에서 “불법 이민자들이 ‘흑인 일자리’를 차지하려 한다”고 말한 것을 놓고 ‘흑인 일자리’가 무엇이냐는 2차 논란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한편 톰 크루즈, 아리아나 그란데, 스눕독, 레이디 가가 등 미국의 여러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물론 배우자인 프로 미식축구(NFL) 선수 조너선 오언스 역시 바일스의 퍼포먼스를 보기 위해 여름 훈련 기간 ‘특별 휴가’를 받아 이번 올림픽 현장을 찾아 화제가 됐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