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맞추기 돼버린 수능… "수능 폐지 아닌 공교육 정상화로 풀어야"

강지원 2024. 8. 6.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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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D-100 : '수능 해킹' 저자 문호진 인터뷰]
"사교육 받은 수험생, 큐브 맞추듯 수능 풀어"
"킬러 문항 배제 오히려 사교육 확대 가져와"
"학교 배우는 곳 아닌, 기록하는 곳으로 전락"
"일정 수준 교육 제공 공교육 정상화 급선무"
'수능 해킹:사교육의 기술자들'의 공저자 문호진씨가 지난달 31일 한국일보 본사에서 수능 제도의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시행일(11월 14일)이 6일로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는 의과대학 증원, 전공자율선택(무전공) 선발 확대 등으로 더 높은 수능 성적을 받으려는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수능에서도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제)을 배제하고 공교육 범위 내에서 적정 변별력을 유지하는 문제를 출제하겠다고 공표했다. 하지만 지난해 수능이 전 영역에서 '불수능' 평가를 받고 올해 6월 수능 모의평가도 난이도 조절 실패로 어려웠다는 분석이 나오자, 킬러 문항을 없애면 입시 부담이 줄어들 거란 기대는 정부의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냉소적 반응이 퍼지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섣부른 수능 개편 시도는 수험생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은 물론, 경쟁을 오히려 심화해 사교육 시장을 키워주는 역효과를 낼 거라는 경고가 나온다. 정부의 킬러 문항 배제 기조로 덧칠된 수능은 2028학년도 입시부터 모든 수험생이 같은 문제로 시험을 치르는 통합수능으로 전면 개편될 예정이라 수험생들은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당분간은 교육 당국이 입시 현장에 혼란이 없도록 상황을 잘 관리해야 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수능을 포함한 대입 제도에 근본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여전하다.

지난달 ‘수능 해킹: 사교육의 기술자들’을 출간해 수능이 출제 원리를 간파(해킹)한 사교육에 의해 ‘퍼즐 맞추기’로 전락했다고 비판한 문호진(34)씨를 지난달 31일 만나 수능 제도의 문제와 대안을 들어봤다. 입시업계에서 유명 모의고사 문제집을 집필했던 문씨는 현재 서울의 한 공공병원 일반의로 근무하고 있다.

지난달 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건물에 의대 입시 홍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사교육이 수능을 해킹했다고 주장한 이유는.

"정육면체 큐브를 맞출 때 처음에는 어려워 오래 걸린다. 하지만 퍼즐 맞추는 공식만 파악하면 1분 만에 맞춘다. 수능도 마찬가지다. 1993년 도입된 수능의 문제 유형이 표준화하면서 사교육이 출제 원리를 파악했고, 이를 숙달한 수험생들이 고득점을 얻게 됐다. 사고력과 논리력을 요구하는 도입 취지와 달리 문제 풀이 기술을 숙달하게 하는 수능은 반(反)교육적이다. 2022학년도 수능 국어 영역에서 헤겔의 변증법 관련 지문이 나왔는데, 정답률이 46%였다. 헤겔의 변증법을 이해하지 못해도, 문제를 푸는 공식을 대입해 퍼즐을 맞춘 거다. 이런 공식은 학교가 아닌 수능을 해킹한 사교육에서 가르친다. 지난해 수능 전 영역 만점자와 표준점수 최고점자 모두 유명 입시학원 출신 재수생이었다."

-정부가 사교육 해킹을 피해 킬러 문항 배제 방침을 내놨는데.

"킬러 문항 배제로 되레 사교육 시장이 커졌다. 사교육을 안 받으면 수능 고득점을 받기 어렵다고 하니 정부는 ‘왜 학교에서 안 배운 문제(킬러 문항)를 내냐’고 없애라고 지시했다. 현장을 전혀 모르는 조치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워서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다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입시에서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 아니고 기록하고 평가하는 곳이 됐다. 공부는 사교육에서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킬러 문항을 배제하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변별력 확보를 위해 같은 난이도의 문제를 더 복잡하게 출제했다. 복수 응답이나 출제 오류 등 논란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개념을 묻기보다 문제 유형만 복잡하게 만들었다. 사교육에서 기술 훈련을 더 많이 받은 수험생이 유리한 구조다."

-올해 수능도 사교육을 받은 수험생이 유리할까.

"지난해 수능에서도 확인했듯 킬러 문항을 없앤다고 문제가 쉬워지는 건 아니다. 6월 모의평가에서도 킬러 문항이 나왔다. 같은 난이도의 문제를 복잡하게 변형해 사교육에서 훈련을 받은 수험생들이 여전히 유리한 구조다. 불확실성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의대 증원, 무전공 선발 확대 등 입시 전형이 분화됐다. 전형이 늘어나면 학생들이 어디에 지원할지 혼란스럽다. 졸업생 등 N수생도 많다. 전형이 많아지면서 수능 합격선 변동 폭이 확대될 수 있다. 킬러 문항 배제, 무전공 선발 확대 등 교육당국의 정책이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불안이 커지면 사교육으로 간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지난달 2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5학년도 수시 대학입학정보 박람회'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사교육 확대, 대학 서열화 등 폐해로 수능 폐지론도 나온다.

"수능 폐지가 답은 아니다. 수능은 개편이 필요하지만 공교육 문제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수능을폐지해도 사교육이 없어지지 않는다. 내신 대비를 위해서도 사교육을 받는다. 초등 의대반 등 과도한 선행학습이 초중고 전 과정에서 일어난다. 수시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학교에서 대학 전공 수준을 넘는 논문을 참고해 보고서를 쓰고 발표를 한다. 수업시간에 이를 발표하고 다른 학생들은 듣지 않는다. 교사들은 발표 내용을 생활기록부에 반영한다. 내신이 불리해서 정시를 준비하는 자퇴생 수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는 거다. 교사들도 수업 외 업무가 많아지면서 정작 수업 준비는 안 한다. 학교에서 배우고 가르치는 교육적 가치가 실종됐다."

-공교육을 정상화하려면.

"요즘 일부 학생들은 교사에게 '어삼쉬사(어려운 3점, 쉬운 4점 문제)'라고 한다. 수능 수학 문제를 못 푸는 교사를 뜻하는 멸칭이다. 소수의 최상위권 학생만 신경 써서 명문대에 보내는 '스타 교사'도 있다. 이런 현상들은 학교에서 일정 수준의 보편적인 교육이 제공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어느 지역에서나 '뺑뺑이(무작위 추첨)'로 중고등학교에 가도 비슷한 수준의 질 높은 교육이 제공돼야 한다. 교사들을 지원해 수업 역량을 끌어올리고, 각 학년별 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이행돼야 한다. 대학은 입시에서 학생들이 학교에서 일정 수준의 교육을 잘 받았는지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선발하면 된다. 적어도 이게 이뤄지면 과도한 선행이나 수능 기술을 배우는 게 아니라 개인별 부족한 학습을 채우려고 학원을 이용하게 될 거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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