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집 평면도까지 그려 놓고 집필… 캐릭터 개성 살려”
구상과 취재는 두달, 집필엔 한달… 편견 바꾸기 위한 체험형 취재 즐겨
“번아웃 온 30년 경력 스타 무당 등 다른 몸 돼보는 듯 전이의 체험 재미
세대-젠더 아닌 한 인간 그리고파”
《영화나 소설을 볼 때 내 마음에 든 신인이 활동하는 걸 보면서 마음속 응원을 보낸 적이 있나요? 문화예술계의 미래는 작가, 미술가, 연출가, 배우 등 다양한 분야의 젊은 예술가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을 겁니다. 한국 문화계를 이끌 MZ세대 크리에이터들을 조명합니다.》
“제 안에 아저씨가 좀 있는 것 같아요.”
2일 동아일보와 만난 성해나 작가(30)는 “제 소설을 읽은 분들이 ‘당신은 아저씨나 할머니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며 씩 웃었다. 50대 베이비부머 남자 교사부터 문신으로 상처를 덮는 위안부 할머니, 유튜브 영상을 편집하는 시골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 속 인물들에는 장년이나 노년층이 적지 않다. 그는 “할머니 손에 자라서 그런지 어른들한테 좀 더 애틋한 시선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온라인 서점 예스24가 최근 선정한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위에 올랐다. 앞서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오즈’로 등단할 당시 ‘정형화된 인물을 탈피해 개성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낸다’(구효서·은희경 소설가)는 호평을 받았다. 번아웃이 온 30년 경력의 스타 무당 등 작품마다 다양한 나이와 직업의 인물들이 등장해 독자들의 눈길을 끈다. 그는 “다른 몸이 돼 보는 것, 그런 전이의 체험이 정말 재밌다”고 했다.
같은 2030세대 여성 작가들이 주목하지 않는 인물을 등장시키는 건 ‘세대 간 이해’라는 주제의식의 영향이 크다. 왼팔을 잃은 아버지와 왼다리를 잃은 아들이 함께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하근찬의 ‘수난이대’와 같은 이야기에 어릴 적부터 마음이 끌렸다고. 그는 “한 인간을 보려 하지 않고 세대, 젠더 식으로 묶어버리니까 갈라치기나 갈등, 혐오가 더 심해지는 것 같다”며 “제 소설 안에서라도 서로 불신이 쌓이지 않게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개성이 넘치는 다양한 캐릭터들은 어떻게 세상에 나올까. 그는 단편소설 한 편을 쓸 때 구상과 취재에만 두 달을, 집필에 한 달을 쓴다고 한다. 등장인물의 리얼리티를 높이기 위해 그가 사는 건물의 평면도까지 그려 놓고 글을 쓴다. ‘구의 집’ 작업 당시 그린 주인공 집 평면도에는 화장실과 출입구 위치 등이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빼곡히 표시돼 있었다. ‘벽면 마감: 고급 흡음 벽지, 유공 합판 위에 비닐페인트로 칠함’ 같은 깨알 메모는 건축가의 도면을 방불케 했다.
젊은 작가답게 몸으로 부닥치는 ‘체험형 취재’에도 종종 나선다. 청년들이 농촌 어른들에게 유튜브 편집을 가르치는 내용의 단편소설 ‘당춘’을 쓸 땐 충남 홍성군 홍동면의 농장을 찾아가 감자를 캐고 보리를 밟았다. 당시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때라 농촌 분위기가 울적할 거라고 지레짐작했는데, 농작물의 인터넷 판매가 늘면서 실제는 반대였다. 그 덕분에 처음 구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품을 쓰게 됐다. 그는 “역시 뭐든 직접 겪어봐야 안다”며 “현장 르포는 디테일하게 쓰려고 가는 면도 있지만 제 편견을 바꾸러 가는 것이기도 하다”고 했다.
신인 작가들이 대개 그렇듯 등단 직후 그도 힘든 시기를 보냈다. 3년 반 동안 원고 청탁이 한두 건에 불과해도 ‘뭐라도 쓰자’는 각오로 매일 일정한 분량의 글을 썼다. 낮에는 공공기관 아르바이트, 글쓰기 강의 등의 부업을 하면서 주로 밤에 글을 썼다. 이 시기 독자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고. 그의 휴대전화에는 ‘나를 살게 해주는 것’이라는 제목의 폴더가 있다. 캡처한 독자 리뷰를 폴더에 보관해 놓고 두고 두고 꺼내 읽는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유튜브 등 영상 콘텐츠가 범람하고, 책 읽는 이가 줄어드는 시대에도 그는 “글의 힘을 믿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 생에선 글을 쓰며 살게 될 것 같습니다. 쓰다 보면 힘들 때도 있겠지만 초연하게 해나가려고요.”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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