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교묘해지는 中 싹쓸이 조업… 세계 15국서 ‘깃발 꽂기’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2024. 8. 6.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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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국기 걸었지만 소유는 중국
아르헨 65척, 오징어 잡아 韓 수출
떼지어 어망… 전세계 바다 훑어
지난 2019년 8월 서아프리카 연안에서 조업 중인 중국 어선. 이 선박은 중국 기업이 소유하고 있지만 타국 법인 소속으로 등록돼 자유롭게 조업을 하고 있었다. /아웃로 오션 프로젝트

중국이 자국 선박을 남미·아프리카·태평양·중동 등 전 세계 국가 법인 소속으로 허위 등록시켜 현지 당국의 감시망을 피해 주요 어장에서 ‘싹쓸이식 조업’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규모 선단을 이룬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에 각국 정부가 대규모 군사력을 동원해 단속에 나서자 국제사회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이런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의 불법 어로 활동을 추적해 온 미국 워싱턴 DC의 비영리 언론 단체 ‘아웃로 오션 프로젝트(Outlaw Ocean Project)’는 중국 기업들이 남미와 아프리카, 중동, 남태평양 등 15국에서 자국 선박 249척을 현지 법인 소속으로 등록한 뒤 이 국가들에서 조업하고 있다고 4일 밝혔다. 본지가 이 단체에서 확보한 중국 선박 이름과 소속 회사, 식별 번호 등을 분석한 결과 이 어선들은 아르헨티나·가나·세네갈·이란·러시아 등 현지 국기(國旗)를 내걸고 조업하고 있지만 실소유주는 모두 중국 기업이었다. 현지인을 대표로 앞세우면서도 지분은 과반을 유지하거나, 현지인에게 선박을 빌려주고 수익은 고스란히 가져가는 방식을 쓰고 있었다. 이런 방법은 상당수 국가에서 외국 국적 선박의 어업 및 외국인 선주 등록 금지 규정을 우회하는 편법·불법행위다.

우리 수역에서 불법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들이 해경의 단속을 피해 도망치는 모습. 중국 어선들이 우리 수역을 침범해 어종을 싹쓸이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해양경찰청

아웃로 오션 프로젝트는 “중국 기업들이 현지 국가 법인으로 등록한 뒤 외국 국기를 꽂고 활동하는 이른바 ‘깃발 꽂기(flagging-in)’ 방식으로 세계 곳곳의 어로(漁撈) 통제권을 급속도로 확장하고 있다”고 했다. 타국 수역에 침범해 대규모 남획을 한 뒤 도망가는 식의 불법 조업을 벌여왔던 중국이 현지 당국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더욱 교묘한 방법을 쓰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 원양 어선은 현재 3000척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어선의 10%에 가까운 선박(249척)이 ‘깃발 꽂기’ 방식으로 현지 단속을 피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이 이런 ‘꼼수’를 통해 가장 활발히 진출한 국가는 남미 국가 아르헨티나였다. 중국 선단 65척이 아르헨티나 국기를 달고 어업을 하는데, 이는 아르헨티나 전체 오징어 어선의 90%에 달했다. 아웃로 오션 프로젝트가 현지 언론에 공개된 10여 선원 명부를 검토한 결과 아르헨티나 해역에서 조업하는 어선 근로자 4분의 1 이상이 중국 국적자라고 나타났다. 사실상 중국 어선들이 아르헨티나의 오징어 어장을 독점하는 셈이다. 이 외에도 가나(70척), 세네갈(13척) 등 아프리카 국가들과 미크로네시아(16척) 등 태평양 국가들, 이란(11척) 등 중동 지역까지 중국 어선이 진출해 이 나라들 깃발을 내걸고 해양 자원을 쓸어가고 있었다.

중국은 2000년대 이후 경제성장으로 수산물 수요가 급증하자 본격적으로 원양어업에 나섰다. 떼를 지어 몰려다니면서 어망을 내리고 닥치는 대로 쓸어가 어류 씨를 말리는 중국 어선단은 전 세계 국가에 공포 대상이다. 상당수 국가는 자국 해역에 미사일을 갖춘 함정을 곳곳에 배치하고 불법 중국 어선들을 침몰시키기도 했지만, 이들의 불법 조업은 끊이지 않고 날로 규모를 키우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어획한 어류를 한국에도 대량 수출하고 있다고 나타났다. 중국 선박들은 지난 2022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2년간 아르헨티나, 가나, 모리타니 등 3국에서 조업한 1058t(톤) 규모의 참치와, 오징어 등을 한국으로 수출했다. 아웃로 오션 프로젝트 관계자는 “한국 또한 중국 불법 조업의 주요 피해국”이라며 “피해 국가 소비자들이 중국이 다른 국가에서 사실상 약탈한 생선을 소비하는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했다.

중국이 아프리카와 남미·태평양 곳곳에 자국 선박들을 진출시키는 건 이들 국가에 대한 항구 통제권을 강화해 장기적으로는 해양에서의 군사 영향력을 높이려는 의도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간 중국 지도부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신실크로드)’ 사업과 연계된 민간 프로젝트를 지렛대 삼아 타국에서 군사 거점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왔다. 이들은 천문학적인 건설 자금을 빌려줘 항구를 짓고 나서, 빚이 쌓이면 항구 운영권을 앗아가 상업용 항구를 군사기지로 전환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깃발 꽂기(flagging-in)

선박을 해외 국가의 법인 소유로 등록한 뒤 해당 국가의 영해에서 활동하는 방식. 선박에 외국 국기를 꽂아 위장하기 때문에 ‘깃발 꽂기(flagging-in)’라 불린다. 현지인을 대표로 앞세우되 과반 지분을 유지하거나, 현지인에게 선박을 빌려주고 수익은 고스란히 가져가는 방식 등이 있다. 깃발 꽂기를 할 경우 외국 국적 선박의 어업 및 외국인 선주 등록을 금지하는 규정을 우회할 수 있어 상당수 국가에서 이를 편법·불법으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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