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짜 뉴스에 폭력 시위, 영국보다 한국이 더 위험할 수 있다
영국에서 ‘무슬림 이민자가 소녀 3명을 흉기로 살해했다’는 가짜 뉴스가 퍼지면서 폭력 시위가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영국 정부가 범인은 이슬람 교도가 아니라고 거듭 밝혔지만 시위대는 ‘사실’보다 믿고 싶은 ‘거짓 정보’를 더 믿고 경찰을 공격했다.
지난달 30일 리버풀 인근에서 어린이 3명이 사망하는 흉기 사건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전국적 폭력 시위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소셜미디어에 ‘범인은 이슬람 교도’ ‘시리아 출신 불법 체류자’ 등 가짜 뉴스가 올라오고, 인종주의 성향 유명인이 이를 퍼나르자 흥분한 군중이 거리를 불태우고 돌을 던졌다. 영국 정부가 범인은 기독교 국가인 르완다 출신 부모를 둔 영국 태생이고 무슬림이 아니라고 이례적으로 공개했는데도 폭력 사태는 잡히지 않았다. 반이민·반이슬람 분위기에 가짜 뉴스가 불을 붙이자 무분별하게 타오른 것이다.
가짜 뉴스는 테러만큼 위협적이다. 작년 5월 미 국방부 청사 인근에서 대형 폭발로 검은 연기가 치솟는 ‘가짜 사진’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급속히 퍼지면서 미국 주식시장이 출렁이고 금·국채 가격이 오르는 등 혼란이 일어났다. 백악관이 화재에 휩싸인 이미지도 유포됐다. AI가 만든 가짜 뉴스였다. 하마스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뉴스는 진짜보다 가짜가 더 많을 정도다. 진실이 덮이고 허구가 판치고 있다.
한국 사회는 특히 가짜 뉴스에 취약한 체질이다. 이미 광우병·천안함·사드·오염수 괴담 등이 기승을 부렸다. 주요 정당과 정치인들이 적극적으로 가짜 뉴스를 퍼뜨린다. 거짓으로 드러나도 사과나 퇴출이 아니라 극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는다. 가짜 뉴스가 사회에 해악을 끼쳐도 소셜미디어와 유튜버들은 오히려 돈을 번다. 양극화와 상대 증오가 심한 한국 사회에서 교묘히 엮은 가짜 뉴스가 영국 시위보다 더 큰 폭력과 혼란을 부를 수 있다. 현행법상 개인 유튜브는 방송법 적용을 받지 않고 언론 중재 대상에서도 빠져 있다. 포털과 소셜미디어도 가짜 뉴스 유통의 숙주 역할을 하고 있지만 언론이 아니라며 책임을 피하고 있다. 가짜 뉴스 유포자, 이를 전달하는 포털, 소셜미디어 등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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