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양궁 김우진의 “해 뜨면 마른다”
남자 양궁 김우진은 이번 세 번째 올림픽에서 평생 벼르던 개인전 금메달을 기어코 따냈다. 올해 32세. 띠동갑 후배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상황이라 다음 올림픽은 장담할 수 없다. 어쩌면 개인전 금메달을 노릴 마지막 기회였다. 결승점 세트 동점 마지막 슛 오프(승부 쏘기) 순간, 한 발로 필생의 과업이 성취되느냐 마느냐 하는 찰나에 김우진은 상대와 같은 10점을 쐈다. 그리고 화살이 과녁 정중앙에 4.9㎜ 가까이 맞아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김우진은 감격에 겨운 눈물도 환호도 내비치지 않았다. 평소보다 조금 더 크게 웃을 뿐 덤덤했다. “금메달을 하나, 둘 땄다고 해도 내가 양궁을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잖아요. 딴 메달에 영향받지 않고 원래 모습을 찾아 계속 나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표정 관리를 잘하는 선수가 태반인 양궁계에서도 김우진만 한 ‘포커페이스’는 없다고 한다. 화살이 크게 빗맞거나, 중요한 대회에서 일찍 탈락해도 표정에 변화가 없다. 김우진 말을 또 빌리자면 이렇다. “과정이라는 걸 통해서 결과를 얻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 생각하고 간다면 결국에는 텅 빈 게 되는 거예요. 과정을 좀 더 생각하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파리에서 만난 많은 한국 선수는 ‘즐기고 싶었다’고 자주 말했다. 사격 여자 25m 권총 금메달을 따낸 양지인은 “열심히 훈련한 걸 헛되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쐈더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서 웃었다. 여자 복싱 최초로 동메달을 따낸 임애지 역시 “이번만큼은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내려두고 준비 과정에 집중했다”고 했다.
결과를 포장하는 미사여구가 아니었다. 펜싱 여자 에페 맏언니 강영미는 개인전 32강에서 탈락한 뒤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 후회 없이 뛰었다”면서 눈물을 떨궜다. 그는 “경기 내용은 만족하는데 이기지 못해 나오는 눈물”이라면서 “시원하게 울었으니 이제 웃겠다”라면서 멋쩍어했다. 유도 남자 대표팀 맏형 김원진도 남자 60㎏급 패자부활전에서 진 뒤 “여기까지가 내 역량이다. 아쉬움이나 후회는 일절 없다”고 하더니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흐느꼈다. 단지 분통한 감정만은 아닐 것이다. 최선을 다해 준비한 끝에 누구보다 스스로를 잘 알게 됐다는 후련함. 그들에게서 청춘의 광채가 비쳤다.
김우진은 전인미답의 경지에 오른 직후 이렇게 말했다. “어린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메달 땄다고 젖어 있지 말아라. 해 뜨면 마른다.” 결과가 어떻든 너무 기 죽지도 지나치게 들뜨지도 말란 충고다. 눈앞 성과는 결국 신기루 같은 것. 도착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그 순간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진정한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 고교 시절부터 수도 없는 대회에서 숱하게 이기고 졌던 ‘신궁(神弓)’이 나름 깨우친 삶의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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