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형의 닥터 사이언스] NASA는 왜 6200억짜리 달 로버를 쏘지 않고 해체하나
NASA, 4억5000만달러 들인 달 남극탐사 로버 계획 포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예산과 일정 지연은 거대 과학 숙명
1972년 12월 11일, 아폴로 17호 우주인 유진 서넌과 해리슨 슈밋이 달에 발을 내디뎠다. 두 사람은 반세기 넘게 지난 지금도 마지막으로 달을 다녀온 우주인으로 남았다. 인류의 위대한 도전에 세계가 흥분하고 있을 때 전의를 불태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 달 뒤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발사한 옛 소련의 달 탐사선 루나 21호가 아폴로 17호 우주인들이 걸었던 지점에서 북쪽으로 170km 떨어진 곳에 착륙했다.
다음 날 루나 21호에서 바퀴가 8개 달린 로버(rover·탐사용 차량) 루노코드(Lunokhod2) 2호가 내렸다. 루노코드 2호의 관제소는 크림반도 심페로폴에 있었다. 관제사들은 루노코드2호의 마스트에 장착한 TV 카메라를 통해 지형지물을 살피며 조이스틱으로 로버를 움직였다. 무려 38만5000km 떨어진 원격조종이었다.
영하 150도까지 떨어지는 혹한의 밤을 견디며 5개월 동안 루노코드 2호가 달린 거리는 39km. ‘지구 밖을 가장 멀리 달린 인공 물체’라는 명칭은 41년 동안 루노코드 2호 차지였다. 당시 미션에 참여한 행성 지질학자 알렉산더 바실레프스키는 네이처에 “루노코드 2호의 카메라가 포착한 암석과 흙은 경이로웠다”면서 “연구를 위해 로버를 멈추자고 요청했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고 했다. 달에 미국보다 더 많이 옛 소련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기 때문이다.
루노코드 2호를 넘어선 것은 2014년 미 항공우주국(NASA)의 화성 탐사 로버 오퍼튜니티였다. 오퍼튜니티가 39km를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은 10년이었다. 루노코드 2호 과학자들이 얼마나 기록 수립에 열성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로버는 아폴로 미션 이후 수십 년간 우주 탐사의 주인공이자 국력 과시 수단이었다. NASA의 쌍둥이 화성 로버 오퍼튜니티와 스피릿은 붉은 화성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줬고, 큐리오시티와 퍼서비어런스는 화성에 생명체가 살았다는 희망을 주는 흔적을 찾아냈다. 유럽우주국(ESA)의 로제타에 실렸던 로버 필레와 일본우주개발기구(JAXA) 하야부사 2호의 로버 미네르바는 각각 혜성과 소행성의 신비를 풀어내는 열쇠가 됐다.
우주에 대한 인류의 시각을 바꾼 이 로버들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지난달 17일 NASA가 “바이퍼(VIPER·휘발성 물질 조사 극지 탐사 로버) 발사 계획을 백지화한다”고 발표하면서 과거의 영광이 주목받는 것이다. 달의 남극에서 물과 얼음을 탐사하고 활용 방안을 찾고자 만든 바이퍼는 우주 로버 역사에서 가장 야심 찬 미션이었다. 과학자들은 바이퍼가 인류를 다시 달에 보내고 유인 기지를 건설하는 ‘아르테미스 미션’의 핵심 데이터를 보낼 것으로 기대했다.
문제는 돈이다. 당초 골프 카트 크기로 설계됐던 바이퍼는 장비와 기능이 계속 추가되며 소형 자동차 규모로 커졌고, 일정까지 지연되며 예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NASA는 바이퍼 제작에 4억5000만달러(약 6200억원)를 쏟아 부었고, 내년 9월 발사까지 1억5000만달러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더 이상 예산 확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NASA는 곧 바이퍼를 해체하고 중성자 분광기, 질량 분석기, 아이스 드릴 등 첨단 장비를 재활용할 계획이다. 과학자들은 NASA의 결정을 ‘스캔들’이라고 부르며 반발한다. 6년에 걸쳐 막대한 돈과 인력을 쓴 바이퍼를 포기한 것은, 어떤 우주 계획도 안전하지 않다는 신호라는 것이다.
바이퍼는 거대 과학이라는 여정이 얼마나 험난한지 다시금 보여준다. 우주 만물에 질량을 부여한 ‘신의 입자’를 발견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와 우주 탄생의 신비를 밝혀주는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은 성과를 내기 전까지 엄청난 예산 증액과 일정 지연으로 여러 차례 운용 중단 위기를 맞았다. 인류의 미래 에너지원을 만들겠다며 35국이 손잡고 프랑스 카다라슈에 건설하고 있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는 언제 가동할 수 있을지 얼마나 더 들어갈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다. 과장과 욕심으로 과학자들이 엄청난 돈을 낭비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근원을 찾는 일이나 세상을 바꾸는 도전이 계획대로 될 리가 없지 않은가. 과학은 결국 모든 이의 인내심을 먹고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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