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포스트잇] [33] 성인(聖人)들이 생고생하는 나라
인간을 짐승과 구별시키는 결정적 세 가지가 있다면, ‘과학’과 ‘예술’과 ‘종교’일 것이다.
평소 스님과 목사님 등 여러 종교 사제(司祭)들의 말씀에서 공부를 얻곤 한다. 삼국 시대와 통일신라 시대의 승려 원효(元曉)에 대한 대중적 키워드로 ‘해골’과 ‘파계(破戒)’를 들을 수 있다. 원효는 승려 의상(義湘)과 두 차례 당나라 유학을 시도한다. 34세 때인 650년에는 고구려 국경 경비대에 잡혔다가 풀려나는 바람에 실패했고, 45세 때인 661년에는 당항성 부근 횡혈식 석실 파묘(破墓) 안에서 잠을 자다 비몽사몽 어둠 속에서 마신 달고 청량한 물이 아침에 깨어 보니 해골에 담긴 더러운 물이었음을 알고는 ‘크게 깨달아’ 신라로 발길을 돌리고, 의상만 계속 당나라로 향한다.
이후 저술과 기행(奇行)을 오가던 원효는 무열왕과의 ‘암호 풀기식 소통’ 끝에 요석 공주와 동침해 장차 유학(儒學)의 거목이자 이두(吏讀)를 집대성하게 되는 설총(薛聰)을 낳았다. 이게 이른바 ‘원효의 파계’인데, 불교사에 자리 잡은 해석은 다음과 같다.
당시 신라 불교는 왕족과 귀족의 전유물이었고, 삼국 간 전쟁이 5세기 60회, 6세기 50회, 7세기 150회로 백성들은 참화와 도탄에 빠져 있었다. 이에 원효는 파계로 신분을 강등해 민중 속으로 들어가 가르치고 치료해주는 고육책(苦肉策)을 실천했다는 것이다. “무지몽매한 사람들조차 모두 부처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원효의 교화 덕이다.” ‘삼국유사’에 적힌 바다.
무엇보다, 원효는 파계 즉시, 무열왕의 사위로 지내기는커녕, 승복을 벗고 스스로를 소성거사(小姓居士)라 낮춰 부르며 살았다. 파계로 인해 원효는 신라 종단과 상류 사회에서 ‘왕따’ 당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복권된 것은 고려 시대에 이르러서다. 그럼에도 불교 이론에 있어서만큼은 숨어서라도 추존하지 않을 수 없었던 원효의 업적과 사례는 한반도, 중국, 일본에 차고 넘쳤다.
직접 인도에서 가져온 새로운 경전들과 학식으로 7세기 동아시아 불교를 ‘창조적 혼란’에 빠뜨렸던 ‘서유기’의 등장인물 삼장법사 현장(玄奬)을 논리로 제압한 것도 원효였다. 아무 종교인이나 제 교리와 도덕에 파계를 일삼고는 스스로를 원효에 빗댄다며 크게 웃으시던 어느 스님의 호탕한 한탄이 기억난다.
얼마 전, 국가적 범죄로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한 위인이 자신을 면회 온 국회의원들에게, “(국회의원) 당선자 여러분들도 지금 내가 누군가에게 그래주고 있듯 ‘대속(代贖)’을 해줬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그리스도에게 적용하는 신학적 용어와 그 개념을 사용했다 한다.
저런 더러운 소리를 멀쩡히 듣고 앉아 있는 국회의원들은 한탄도 아깝지만, 국민들 역시 자업자득이다. 정치인은 국민들의 압축된 거울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옥’이란 어떤 곳일까? 성인(聖人)들이 이 나라에선 생고생이시다. 사기꾼이 원효가 되고 부처와 예수 행세를 하는 그런 지옥이라면, 차라리 짐승의 세계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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