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준칼럼] 답 없는 의정갈등, 한동훈이 나서 보라
유급 시 1학년만 7625명 수업 사태
누구도 나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
여당 대표로서 새 모습 보여줄 기회
“정부도 이젠 뚜렷한 해법이 없고, 모두가 자포자기한 것 같아요.”
째깍째깍 시곗바늘은 돌아간다. 파국을 향해서다. 정부가 의대 수업시간을 학년제로 변경했으나 물리적 시간이 없다. 연간 30주 수업을 내년 2월28일까지 채우려면 겨울방학을 거르더라도 당장 수업을 시작해야 한다. 다행인지 학교별로 수업의 3분의1 또는 4분의1 이상 출석하지 않을 때 유급시킨다. 그래도 이달 말이 마지노선이다. 정부는 고육책으로 F(Failed·낙제) 대신에 I(Incomplete·미완) 학점까지 도입했다. 이달 말까지도 학생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30주 수업시간마저 줄여줘야 할지 모를 일이다.
의대생이 집단 유급하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1학년에서 늘어난 의대생 4567명에 진급을 하지 못한 3058명까지 7625명이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한다. 수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지금도 해부실습실에서 14명이 다닥다닥 붙어 실습하는데 28명으로 늘면 뭘 배우겠느냐”고 L교수는 물었다. 이 규모의 의대생은 예과에서 본과, 전공의 과정으로 그대로 이어진다.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정부 방침대로 내년 1509명 증원 규모를 의료교육 현장에서 수용 가능할지 의문이다. 충북대 의대 정원은 49명에서 200명으로 4배, 경북대는 110명에서 200명으로 2배 늘어난다. 생화학, 생리학, 약리학 등 수업이 모두 실험실습으로 이뤄지는데 공간과 기자재가 충분히 확보돼 있을까. 50명을 가르치던 교수와 인프라로 200명을 가르친다는 건 글쎄다. 대학 총장들이야 가능하다고 하는데, 현장의 의대 학장과 교수들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의학교육 평가기관인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 주관하는 인증기준(ASK 2019)을 통과나 할 수 있을까. 자칫 불인증 판정을 받아 의대 신입생을 뽑지 못하고 결국 폐지된 서남대 의대 사태를 되풀이하지 말란 법이 없다.
비상 상황이라고 할 만한데 이제는 누구도 나서질 않는다. 목소리를 내기에 지칠 대로 지쳐서인지 대학, 교수, 의사단체, 전공의단체가 모두 포기한 듯하다. 정부로선 증원 규모를 축소하고 미복귀 전공의 행정처분을 철회하는 등 나름대로 양보할 만큼 했다고 여길 법하다. 그렇다고 눈을 뻔히 뜬 채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는 없다.
물론 의료계를 기득권 집단으로 보는 국민이 많다.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식의 집단행동에 대한 반감이 크다. 이번만큼은 정부가 원칙대로 대응 기조를 지켜 물러서지 말 것을 주문하는 강경 목소리도 있다. 여론과 시간이 정부 편이라고 여겨 의료계가 제풀에 꺾일 때를 기다리고 있다면 큰 잘못이다. 후유증이 너무 크다. 질 낮은 의료인력 배출로 피해는 그대로 국민에게 돌아간다. 전문의 중심병원 구축과 같은 정부 목표도 제대로 교육받은 의대생과 전공의 배출이 없다면 허상에 그칠 뿐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신임 대표가 관심을 갖고 해결을 위해 나설 것을 촉구한다. 친윤이니 친한이니 하며 당내 분위기가 어수선하기는 하다. 국민 눈높이와 민생을 얘기하려면 이 문제를 외면해선 안 된다. 정부와 의료계 갈등이 깊은 상황에서 새로운 시각에서 양쪽 입장을 충분히 듣고 한 발짝씩 양보할 방안이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탄핵과 입법 폭주로 정치적 피로감이 높은 국민에게 여당 대표로서 기성 정치인과 다른 모습을 내보일 기회다. 무엇보다 의대생과 전공의가 싸워 꺾어야만 하는 대상은 아니지 않은가.
박희준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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