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인가 스캔들' 감독, 김하늘에게 한 부탁 [인터뷰]
"재밌는 드라마 만들고파"
그간 많은 드라마들이 여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그러나 이들이 '진짜' 주인공이었을지는 의문이다. 여자 주인공 곁에는 구원자 역할을 하는 남성이 있었다. '화인가 스캔들' 박홍균 감독은 이러한 관습을 깨뜨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가 김하늘에게 한 부탁도 완수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시청자가 인정할 수 있도록 무게감을 발산해달라는 것이었다.
박홍균 감독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화인가 스캔들'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화인가 스캔들'은 대한민국 상위 1% 화인가를 둘러싼 상속 전쟁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나우재단 이사장 완수와 그의 경호원 도윤이 화인가의 비밀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는 작품이다.
16부작으로 기획됐던 '화인가 스캔들'
박 감독은 '화인가 스캔들'이 당초 16부작으로 기획됐다고 했다. 그러나 해당 작품은 결국 10부작으로 만들어졌다. 박 감독은 "('화인가 스캔들'에) 6개의 공간이 더 있었다면 완수와 도윤의 감정을 더 심도 깊게 다룰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10개를 하다 보니 할 말만 하고 가야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화인가 스캔들'이 다양한 매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 감독은 "여러 장르가 복합돼 있다. 미스테리도, 액션도 있다. 로맨스 요소도 존재한다"고 전했다.
그간 재벌가의 이야기를 담은 많은 드라마들이 대중을 만나왔다. 박 감독은 "사실은 이 작품이 기획된 지 굉장히 오래 됐다. 지상파 방송사용으로 준비됐던 드라마다. 작가님께서 '재벌 드라마가 기획되지 않을 때였다'고 하시더라"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시청자 입장에서는 재벌 드라마를 이미 많이 본 상태에서 '화인가 스캔들'이 나온 거다. 그래서 나도 부담이 됐다"고 털어놨다. 이어 "이 이야기의 힘이 소재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보편적인 캐릭터들이 어떻게 각 배우를 통해 개연성을 갖고 시청자를 설득시키는지에 집중해 주신다면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거다"라고 귀띔했다.
김하늘·정지훈의 활약
김하늘은 '화인가 스캔들'의 중심에서 극을 이끌었다. 박 감독은 "전통적인 막장 드라마에서 안타까운 지점이 있다.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여성의 자주권을 표현하는 듯하지만 남자 구원자가 있다. 기존 가치를 재생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화인가 스캔들'은 그렇게 가지 않길 바랐다"고 밝혔다. 그는 '화인가 스캔들'에서 도윤이 열심히 뛰어다니지만 진짜 주인공은 완수라고 생각했다. 박 감독은 "완수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시청자가 인정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늘씨에게 '그 부분을 어떻게든 연기로 채워주면 좋겠다. 완수의 무게감을 가져가면 좋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다른 주역 정지훈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다. 박 감독은 "다른 시청자분들도 정지훈씨가 정극 멜로 배우라는 생각은 덜 했을 것 같다. 로맨틱 코미디나 짓궂은 개구쟁이 관련 이미지는 충분히 있는 배우였다. 그렇지만 정극 멜로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르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정지훈씨가 '화인가 스캔들'을 통해 배우로서 능력치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준 듯하다. 우리 작품과도 잘 맞았다"고 생각을 전했다.
서이숙의 헤어스타일에는 '화인가 스캔들' 팀의 깊은 고민이 녹아 있다. 박 감독은 "서이숙 선배님의 캐스팅을 결정하고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스타일을 잡을 때 이미 재벌 관련 드라마를 하나 찍고 계셨다. '그 작품과 (이미지가) 겹치지 않으면서 개성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햤다. '화인가 스캔들' 팀은 서이숙이 연기한 화인가 회장 미란의 외모에서 기품을 지우고자 했다. "기품 같은 부분과 관련해 역으로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촌스러운 느낌으로 비틀게 됐다"는 것이 박 감독의 설명이다.
박홍균 감독의 목표
앞서 박 감독은 '뉴하트' '선덕여왕' '최고의 사랑' 등 굵직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사랑받았다. '선덕여왕'은 무려 62부작이었다. 박 감독은 "소비자들의 소비 방식이 달라졌다. 하룻밤에 (작품을 몰아서) 볼 수 있어야 하고 길어지면 시청자 입장에서 부담이다. 50~60부작을 앉은 자리에서 보면 좋겠지만 체력, 집중력 때문에 힘들다. 다양한 방식의 무언가를 받아들여야 할 때다.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큰 만족을 드릴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의 숙제다"라고 이야기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K콘텐츠의 위상도 크게 상승했다. 박 감독은 "세계로 눈을 돌려서 보면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한국적인 깊이도 중요하지만 보편적인 넓이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화인가 스캔들'이 아시아 시장에서 호평받은 것은 한류가 처음 시작됐을 때 한국 드라마의 성공 공식과 비슷한 지점이 있어서인 듯하다. 이야기의 힘, 보편적인 감정의 힘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추리 스릴러가 아닌, 옛날 방식의 드라마이더라도 여러 사람이 공감할 보편적인 부분에 어필한다면 사랑받을 수 있다. K드라마가 한국 시장에서만 살아남기 위한 전력을 취할 필요는 없는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재밌는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그가 이후 선보일 작품에도 기대가 쏠린다.
정한별 기자 onestar10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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