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식수비·허 찌르는 변칙공격…안세영 적수가 없었다

김지한 기자(hanspo@mk.co.kr), 임정우 기자(happy23@mk.co.kr) 2024. 8. 5.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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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만에 배드민턴 女단식 金
中허빙자오 2대0 꺾고 정상에
부상 불구 철저한 자기관리로
"낭만있는 올림픽" 목표 이뤄
겨드랑이 10㎝ 더 벌어지게
큰 스윙 만들어 공격 극대화
"하루도 운동 안쉬어 메달"

◆ 2024 파리올림픽 ◆

안세영이 5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포르트드라샤펠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중국 허빙자오에게 승리한 뒤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파리 이충우 기자

올림픽 금메달을 확정 짓자 코트에 무릎을 꿇고 있는 힘껏 포효하는 세리머니로 순간을 만끽했다. '낭만 있는 올림픽'을 치르겠다는 자신과의 다짐을 실천한 안세영(22·삼성생명)이 명실상부 세계 최고 '배드민턴 여제'로 거듭났다.

배드민턴 여자 세계 1위 안세영이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을 획득했다. 5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포르트드라샤펠에서 열린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안세영은 세계 9위 허빙자오(중국)를 상대로 51분 만에 2대0으로 완승을 거두고 그토록 바랐던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방수현이 금메달을 딴 뒤로 28년 만에 나온 한국 여자 배드민턴 단식 금메달이었다.

금메달을 목에 건 안세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정말 행복하다. 이제야 숨이 쉬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21년 도쿄올림픽 때 8강에서 탈락했던 안세영은 올림픽 금메달을 선수 생활 최고의 목표로 꼽았다.

개인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는 과정은 험난했다. 1년 가까이 부상과 싸워야 했고, 경쟁자들의 강력한 도전도 넘어야 했다.

모든 걸 실력으로 이겨낸 안세영은 프랑스에서 배드민턴 여제 대관식을 화려하게 열었다.

지난해 10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안세영은 통증 관리에 온 힘을 써야 했다. 당시 결승에서 안세영은 천위페이(중국)를 상대하다 오른쪽 무릎을 다쳤고, 정밀 진단 결과 무릎 인대 부분 파열 진단을 받았다. 당초 재활 후 나아질 줄 알았던 무릎은 계속 그를 괴롭혔다. 또 지난 1월 인도오픈에서는 오른쪽 허벅지 안쪽 근육을 다쳐 기권했다. 전영오픈, 우버컵 등 연이어 우승에 실패하면서 경기력 저하 우려도 있었다.

안세영은 묵묵히 버티고 훈련하며 견뎠다. 자기 관리도 더 철저히 했다. 이번 대회에서 정상에 오르기 위해 튀김류 등 몸에 좋지 않은 것들을 모두 끊었다. 인터뷰와 광고 촬영 등을 자제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부상에 따른 몸 상태 변화로 경기 전략도 바꿨다. 안세영의 소속팀 삼성생명 감독을 맡고 있는 길영아 매일경제 파리올림픽 자문위원은 "원래 같았으면 끈질긴 수비로 마지막까지 경기를 끌고 가 이기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부상을 당한 뒤 공격으로 시간을 단축하고 점수를 먼저 따내는 스타일로 변화했다"고 설명했다.

코트 구석구석 한 박자 빠르게 꽂는 공격력을 장착하기 위해 안세영은 '한 동작'을 집중해서 연습했다. 공격 상황에서 오른 겨드랑이를 붙이지 않고 10㎝ 이상 벌린 상태에서 어깨 전체를 사용하는 스윙을 하는 것이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아주 사소한 동작이지만 안세영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이 동작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안세영은 대표적인 수비형 선수에서 공격력까지 갖춘 선수로 거듭났다.

안세영을 세계 최고의 선수로 진화하게 도운 스윙 변화는 길 위원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길 위원은 "수비력에 비해 공격력이 좋지 않아 반쪽짜리 선수라는 평가가 안세영의 이름 뒤에 붙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공격 시 오른 어깨 전체를 사용하는 스윙으로 교정한 그는 공격과 수비 모두를 잘하는 무결점 선수가 됐다"고 설명했다.

오랜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동작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는 안세영의 노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길 위원은 "안세영의 새로운 스윙은 단기간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최소 3년 이상의 노력이 쌓여 완성된 결과물"이라며 "손으로만 휘두르는 스윙에서 오른 어깨 스윙으로 바꾸기 위해 수천 시간을 투자했다. 최근 몇 년간 안세영의 오른손에는 굳은살이 박혀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전략대로 파리 올림픽에서 안세영은 차례대로 상대를 돌려세웠다. 8강에서 '숙적' 야마구치 아카네(일본), 준결승에서 '다크호스' 그레고리아 마리스카 툰중(인도네시아)을 같은 전략으로 무너뜨렸다. 연이어 1세트를 내주고도 끈질긴 랠리로 상대를 지치게 해 2·3세트를 가져와 역전승을 거뒀다.

결승에서 만난 허빙자오는 지난 4월 아시아선수권 8강에서 안세영이 0대2로 패했던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그러나 안세영은 팽팽한 승부에서 상대 실책을 유발하는 전략으로 몰아붙였다. 1세트에서 11대9로 근소한 차이를 지키던 안세영은 끈질긴 네트 플레이와 상대 허를 찌르는 직선 공격으로 허빙자오와 차이를 순식간에 벌려 21대13으로 승리했다. 이어 2세트에서도 11대11 동점 상황에서 안세영은 푸시 공격을 성공해 다시 리드를 잡고, 허빙자오의 연속 실책으로 점수 차를 벌려 승기를 잡았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뒤 특유의 포효하는 세리머니를 하면서 분위기를 즐긴 안세영은 "충분히 낭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에 참아왔던 걸 표출할 수 있었다. 이런 낭만을 또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좋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안세영은 "올림픽은 사소한 변수 하나까지도 생각하며 준비해야 했다. 그래서 어떤 변수도 다 잡고 싶어서 하루도 운동을 쉬지 않았다"면서 "어떤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게 올림픽 메달을 딸 수 있던 키포인트였다"고 덧붙였다.

마침내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안세영은 '낭만 있는 올림픽'의 피날레를 남다르게 장식하고 싶어했다. 그는 "귀국하면 공항에 샴페인을 흔들면서 들어가겠다"며 활짝 웃어 보였다.

[파리 김지한 기자 / 서울 임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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