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두둔한 경찰…‘넥슨 집게손’ 피해자 고소 각하

“그림 작가 아닌 건 확인됐지만
과거 페미 동조 글 올렸으니
비판은 논리적 귀결” 합리화
피해자 쪽 “황당 논리…이의 신청”

전국여성노동조합,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 등이 모인 ‘페미니즘 사상검증 공동대응위원회’ 출범식이 지난 3월6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교육실에서 열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넥슨의 게임 ‘메이플스토리’ 홍보 영상에서 이른바 ‘집게 손가락’을 그린 이로 잘못 지목돼 남성을 비하했다며 온라인 괴롭힘(사이버불링)을 당한 애니메이터 ㄱ씨가 누리꾼들을 고소한 사건에 대해 경찰이 불송치(각하) 결정을 내렸다. 경찰이 검찰에 사건을 보내지 않고 종결하는 불송치 이유로 ㄱ씨의 ‘과거 페미니스트 동조’ 발언 등을 들어, 여성에게 가해지는 괴롭힘을 외려 합리화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ㄱ씨가 자신을 비방하는 온라인 게시글 작성자들에 대해 정보통신망법의 명예훼손,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모욕 등의 혐의로 고소한 사건을 각하했다. 사건은 지난해 11월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홍보 영상 속 여성 캐릭터가 0.1초 동안 보인 손가락 모양이 남성 비하 목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넥슨 쪽은 영상을 비공개 처리했고, 그림을 그린 것으로 지목된 ㄱ씨는 신상 정보가 공개되고 모욕적인 성희롱 발언에 시달렸다. 피해자 쪽은 모욕 글이 최소 3500여건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했는데, 이 가운데 그 정도가 심한 300건을 특정해 지난 6월 경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5일 확인된 경찰의 수사결과통지서를 보면, 경찰은 “피의자들이 고소인을 대상으로 비판하는 것은 그 논리적 귀결이 인정된다고 보인다”며 ㄱ씨를 비방한 누리꾼들을 두둔했다. 경찰은 “(ㄱ씨는) 관련 그림 담당자가 아닌 것으로 확인된다”면서도 “고소인 또한 이전 페미니스트를 동조하는 듯한 내용의 트위터 글을 게시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각하 사유로 들었다. ‘과거 페미니스트에 동조한 듯한 글’이 ㄱ씨에 대한 온라인 괴롭힘을 합리화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경찰은 이어 “(피의자들의 글이) 특정 인물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극렬한 페미니스트들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표명하는 과정에서 다소 무례하고 조롱 섞인 표현을 사용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ㄱ씨에게 성적 수치심을 일으킨 글들이 트위터 쪽지(DM)를 통해 전달된 부분에 대해선 “트위터를 통해 고소인에 대한 통신매체 이용 음란 (행위와) 관련하여 그 혐의는 상당”하다면서도 “(외국 기업인 트위터 쪽의) 회신을 기대하기 어려워 압수수색영장 신청 등 수사 계속의 실익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적었다.

ㄱ씨 쪽 변호인인 범유경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경찰은 트위터에 협조 요청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페미니스트 동조 글을 올렸으니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황당한 논리까지 폈다”며 “(경찰 수사 결과에) 불복하고 이의 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게임소비자협회도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여성 피해자를 보호할 의지가 없음을 시사함으로써 사실상 경찰이 지켜야 할 기본 이념을 망각하고 사회적 문제를 방조하고 있음을 나타냈다”고 비판했다.

고경주 기자 goh@hani.co.kr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