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이 애플 대신 미 석유회사 선택한 까닭 [마켓톡톡]

한정연 기자 2024. 8. 5.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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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퍼펙트스톰’에 대비해야 할까
버핏이 2분기에도 지분 늘린 회사
옥시덴털, 미국 셰일오일에 특화
중동 확전, 트럼프, 러시아 맞물리면
석유 공급 총체적 난국 발생 가능성

워런 버핏은 석유시장의 퍼펙트스톰을 내다봤을까. 버핏은 올 들어서 애플 지분 절반을 처분해 현금 보유량을 역대 최대로 늘렸지만, 미국에서 석유를 생산하는 옥시덴털의 지분은 오히려 늘렸다. 중동 확전 등 석유시장 퍼펙트스톰은 어떻게 발생하고, 그 결과 누가 새로운 석유 주도권을 거머쥘지 알아봤다.

워런 버핏이 올해 상반기 애플 주식을 대거 처분했지만, 옥시덴털 지분은 오히려 늘려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 풍향계 버핏=워런 버핏의 대규모 거래는 항상 사람들의 관심을 모아왔다. 워런 버핏은 지난 3일에도 애플 보유 지분을 상반기에만 절반으로 줄이고, 현금 보유액을 사상 최대인 2769억 달러(약 375조원)로 늘린 사실로 주목받았다. 리서치 전문회사 CFRA는 "버크셔가 방어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기서 말한 버크셔 해서웨이는 버핏이 이끌고 있는 투자기업이다.

이럴 때일수록 워런 버핏이 팔지 않은 주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버핏은 애플 주식과 함께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지분도 38억 달러어치 이상 처분했다. 대형 석유회사 셰브론 주식도 올해 2월 일부 팔았다. 버핏은 최근 7개 분기에서 셰브론 주식을 6차례나 순매도했다.

버핏이 2020년 2분기 이후 한 번도 팔지 않은 주식은 미 셰일오일 생산업체 옥시덴털 페트롤리움(OXY)이 유일히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지난 6월 17일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버핏의 2분기 마지막 투자도 옥시덴털이었다.

버크셔는 6월 5~17일 매 거래일 옥시덴털 주식을 사들였다. 버크셔의 옥시 지분율은 29%에 육박하고, 현재 보유한 100억 달러 규모의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면 지분율이 40%를 넘는다.

버핏은 왜 셰브론은 팔고, 옥시덴털은 샀을까. 두 회사의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회사 모두 미국 석유회사지만 셰브론이 하루 335만 배럴(2024년 1분기 기준)을 생산하는 종합 에너지회사라면, 옥시덴털은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에 특화된 회사다. 버핏이 '미국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는 뜻이다.

[자료 | 뉴욕상품거래소]

■ 안갯속 석유시장=버핏의 선구안과는 별개로 석유 시장은 안갯속이다. 여름 석유 수요가 높다고는 해도 불과 보름 전까지 미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80달러를 넘겼던 건 기저에 공급 불안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OPEC은 2022년 10월 이후 지금까지 감산을 유지하고 있다. 실효성은 떨어져도 러시아산 원유가 미국 등의 제재로 원칙적으로는 60달러 이상으로 올리지 못하는 영향도 있다.

최근 각국 중앙은행들의 금리인하 움직임과 맞물려 경기침체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유가는 하락세를 보였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 7월 11일 발표한 월례 보고서에서 "올해 2분기 수요 증가는 하루 71만 배럴로 최근 1년간 분기별로 가장 낮은 증가세에 머물렀다"고 밝혔다.

하지만 안정적으로 보였던 석유 시장은 이내 암초를 만났다. 이스라엘의 도발로 이란의 참전이 유력해졌고, 미국의 11월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확률이 여전히 높은 가운데 석유시장의 퍼펙트스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총체적 난국을 뜻하는 퍼펙트 스톰의 대표적 사례는 팬데믹 이후 공급망 붕괴, 유가 급등, 기업의 탐욕적 가격 책정이 맞물려 발생한 역대급 인플레이션 랠리다.

■ 석유 퍼펙트스톰의 경로=그렇다면 미 석유회사에 초점을 맞춘 버핏의 '전략'은 어떤 경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세 개의 경로를 거치면 미국산 석유를 만드는 회사의 미래 가치만 성장할 수 있다. 이른바 석유시장의 퍼펙트스톰이다.

1차 폭풍은 '중동 확전'이다.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면, 전쟁이 중동 전 지역으로 확산할 수 있다. 이란은 지난 7월 31일 수도 테헤란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최고 정치지도자인 하니예를 암살한 주체가 이스라엘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레바논 무장정파인 헤즈볼라도 자신들의 최고위급 지휘관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했다며 이스라엘에 보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7월 중순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예멘의 후티반군은 4일(현지시간) 아덴만을 지나는 라이베리아 선적 컨테이너선에 보복 공격을 감행했다.

2020년 아시아개발은행(ADB) 소속 이코노미스트들이 발표한 '미국과 이란 전쟁 시뮬레이션과 국제유가 움직임'이란 논문에 따르면 중동 확전은 유가를 최대 11배 폭등시킬 수 있다. 논문은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당시 배럴당 4.75달러였던 유가가 1974년 배럴당 9.35달러로 두 배가 됐고, 종전 이후에도 계속 올라 1980년 37.42달러가 됐다고 설명했다.

2차 폭풍은 '트럼프 당선'이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는 4일(현지시간)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재선되면) 규제를 완화하고, 석유를 증산해 이를 전 세계에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미국이 석유시장 주도권을 쥐겠다는 선전포고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가 4일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실제로 미국은 2018년 이후 6년 연속 세계 최대 산유국이다. 미국의 2023년 석유 생산량은 1일 평균 1290만 배럴로 사우디, 러시아보다도 30% 더 많았다. 2023년 12월 기준 미국의 석유 수출량도 일평균 450만 배럴에 달한다.

3차 폭풍은 '러시아 복귀'다. 4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은 '금리 인하에 속지 말라'는 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11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줄여서 푸틴이 승리하게 될 것"이라며 "그 여파로 국제 식량, 에너지 가격이 다시 오를 수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와 미국의 석유 증산은 언뜻 석유 공급을 늘려 가격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석유시장 주도권이 특정 국가로 일단 넘어가면 가격은 언제든지 쉽게 조정할 수 있다.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석유시장 주도권을 거머쥔 사우디아라비아는 약간의 감산을 통해서도 유가를 한달에 4배 이상 폭등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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