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집게손=금기"라며…생사람 잡은 누리꾼 "다소 무례" 면죄부

게임 영상 '집게손가락'…일부 누리꾼, 女일러스트레이터에 악담·성희롱·신상유포
논란의 장면 "다른 사람이 그려"…애먼 사람 잡았지만
경찰 "피해자, 페미니즘 동조 글"…가해 누리꾼엔 "다소 무례, 조롱에 불과해" 평가

넥슨의 게임 홍보영상 속 '집게손가락'이 '남성혐오'를 했다며 해당 장면을 그리지도 않은 여성 일러스트레이터를 모욕, 성희롱, 신상 유포까지 한 누리꾼들을 경찰이 '불송치' 처분했다.

5일 본지가 확보한 수사결과 통지서에 따르면 서울 서초경찰서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과 스토킹처벌법 위반, 성폭력범죄처벌 특례법상 통신매체이용음란 혐의로 고소당한 누리꾼들을 전부 불송치 처분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넥슨의 게임 홍보영상 속에 캐릭터가 집게손가락 포즈를 해 남성혐오적 표현을 했다며 넥슨에 항의하고, 인터넷상에서 넥슨 하청업체의 여성 일러스트레이터 A씨를 특정해 모욕하고 성희롱했다. A씨에게 트위터 DM(개인 메시지)로 A씨의 부모를 거론하며 성희롱한 누리꾼도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포털 사이트에 A씨의 실명까지 공개했다. 하지만 논란의 장면은 A씨의 그림이 아니었다. 경찰도 수사 통지서에서 "A씨가 관련 그림을 담당한 것은 아닌 것으로 확인된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경찰은 △A씨 소속사가 사과한 점 △A씨가 과거 페미니즘에 동조하는 트위터 글을 게시한 점에 미뤄볼 때 "누리꾼들이 A씨를 비판하는 것은 논리적 귀결이 인정 된다"고 판단했다. 누리꾼들이 그림 담당자를 A씨로 특정할만했다는 뜻이다.

또 "누리꾼들의 글들은 A씨 등 특정인물을 향한 비판이라기 보다 극렬한 페미니스트들의 부적절한 행위에 자신들의 의견을 표명하는 과정에 다소 무례하고 조롱 섞인 표현을 사용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썼다.

이어 누리꾼들의 모욕과 성희롱이 트위터에서 이뤄졌는데, 트위터가 미국 소재 기업이라 살인과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가 아니면 자료 제공을 요청하기 어려워 "형사 사법 공조의 회신을 기대하기 어려운 바, 수사를 계속할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다.

A씨의 법적 대응을 도운 한국게임소비자협회는 경찰의 판단이 "경찰이 지켜야 할 기본 이념을 망각하고 사회적 문제를 방조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대표적으로 경찰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집게 손가락 동작을 기업 광고에 사용하는 것은 금기시되는 것이 현재의 풍토"라고 쓴 점을 문제 삼았다. 경찰이 공식 문서인 수사결과 통보서에 객관적인 법리 판단이 아니라 한국의 풍토가 어떠한지 주관적인 문제에 관한 판단을 담은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한국게임소비자협회는 "A씨는 가해자들의 악의적인 공격에 정신건강의학과 통원 치료를 받고 있지만 아직 일상에 제대로 복귀하지 못한 상태"라며 "통보서에 기재된 수사결과는 A씨를 향한 명백한 2차 가해이며, A씨는 수사 결과에 이의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성진 기자 zk007@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