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모두의 공연
얼마 전 피아노 리사이틀에 갔는데, 앞쪽 움직임과 소리가 공연장에서 통상 발생하지 않는 종류였다. 궁금해서 중간 휴식시간에 가보니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공연장 환경에서 훈련시키는 중이었다. 안내견을 동반해 공연에 오는 사람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 내내 부끄러웠다. 안내견의 움직임은 사실 공연 도중 울리는 휴대전화 벨소리를 비롯해 사람들이 벌이는 온갖 행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공연 예매를 할 때 장애인 접근성 안내를 찾아봤다. 예술의전당은 휠체어석 외에 별다른 내용은 없어 보였다. 콘서트홀과 오페라극장 모두 20석 안팎의 휠체어석을 운영하는데 모두 공연장 가장 뒤 열에 있다.
다른 나라 사례가 궁금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경우,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별도 구역 외에 출입구 근처에 있어 휠체어 사용 여부와 무관하게 쉽게 접근 가능한 좌석을 안내하고 있다. 일정 기준에 해당하는 장애인의 경우 동반자 1인에게 무료 티켓을 제공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청각 또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별도 장비까지 제공하고 안내견 출입도 가능하다고 명시한다. 휠체어 좌석이 가장 뒷줄뿐만 아니라 공연장 전체에 비교적 골고루 있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는데, 해당 좌석을 예매하면 좌석을 들어내 휠체어가 위치할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보인다.
영국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는 장애 여부를 사전에 회원 정보로 등록하면 매번 별도 조치를 요청할 필요 없이 예매 과정부터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점이 눈에 띄었다. 특정 좌석에 접근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계단의 개수를 미리 파악할 수 있는 도면을 웹사이트에 제공하고, 장애인 동반자 무료 티켓, 안내견 출입도 앞서 설명한 공연장과 유사한 수준이다.
일률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은 맞다. 장애인 접근성에 대한 제도와 인식이 개선된 것은 공연장 건물이 지어진 후의 일이고, 공연장의 특성상 시야 확보를 위한 단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장애인 관련 제도나 인식이 앞서가는 나라의 공연장을 봐도 구체적 해법은 제각각이고 온전한 접근성을 달성했다고 하기는 미흡한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한국의 대표적 공연장의 장애인 접근성은 아쉽다.
다행히 우리 사회에도 장애의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장애인이 공연에 갈 때 마주하는 장벽을 없애고 접근성 공연을 만들려는 시도를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립극단은 2020년 코로나19 유행에 따라 대면공연이 제한되자 온라인 공연 영상에 해설자막을 붙이게 된 것을 계기로 접근성 공연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해외 사례를 찾아보고 장애 당사자의 피드백을 받으며 기획을 이어갔고, 2021년에 처음으로 모든 회차에 한글자막, 음성해설, 수어통역을 제공하는 접근성 공연을 내놓게 되었다.
K팝에서도 접근성 공연에 관한 인식 그리고 이를 실제로 구현하려는 노력을 볼 수 있다. 대형 기획사 그리고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아이돌 스타들이 장애인의 공연 접근 장벽을 없애는 데 동참하고 있다. BTS는 2016년 이후로 공연에서 수어통역서비스를 제공했다. YG엔터테인먼트는 올해 3월에 최초로 장애인 접근성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는 지속가능공연보고서를 냈고, ‘장애를 무의미하게’를 목표로 삼는 단체 ‘무의’와의 협업을 통해 접근성 가이드를 만들고 공연에 참여하는 모든 스태프에게 공유할 예정이다.
얼마 전 JTBC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 직관 경기에서 “장애인은 티켓 예매가 불가”하고 “휠체어석은 현장에서 (휠체어 탑승 여부) 확인 후 구매 가능하다”고 안내한 사실이 보도됐다. 휠체어 사용자가 어렵게 현장에 가도 휠체어석 매진이면 헛걸음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장애인 접근성 하면 휠체어만 생각하는 수준을 벗어난 지 오래인데, 아직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슬픈 일이다.
장애인의 실질적 접근성을 보장하려면 예매부터 관람을 마칠 때까지 공연의 전 과정을 세심히 살펴야 한다. 미국 장애인법은 장애인석 예매는 일반 좌석과 동일한 시간, 동일한 방법, 동일한 단계(선예매, 예매대기 등)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규정한다.
‘무의’의 홍윤희 이사장은 공연장 휠체어석 현황 조사를 한 게 2019년인데 그 후의 발전이 감개무량하다고 했지만, 시민의 노력, 대형 기획사나 몇몇 선도적 공연 단체에 맡겨둘 일은 아닐 것이다. 정치인이 장애인의 지하철 접근성을 위해 애쓰는 단체와 싸울 시간이 있으면 이런 문제를 한 번이라도 들여다보길 바란다. 그러면 우리는 좀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다.
유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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