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지만 새롭네… 연극무대 뜬 ★들
매체 활동으로 인기 끌다 잇단 ‘도전장’
연기력 점검·이미지 제고 등 긍정 효과
영화·드라마 제작 작품 수 감소도 영향
“무대에서 연기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작품 기회가 닿았어요.”(안소희)
지난달 4일 공개된 서울 강북구 성신여대 운정그린캠퍼스 연습실.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에서 주역을 맡은 유승호·손호준(프라이어 월터 역)과 고준희·정혜인(하퍼 피트 역)이 먼저 눈에 띄었다. 유승호와 고준희, 정혜인은 첫 무대 진출이고, 손호준은 2014년 뮤지컬 ‘요셉 어메이징’ 이후 10년 만에 무대에 선다. 미국 연극계 거장 토니 커시너의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198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사회적 소수자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며 종교, 인종, 성향 등 논쟁적 사안들을 다루는 다소 무거운 작품이다.
연습 후 기자간담회에서 유승호는 “작품이 다루는 주제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어서 관련된 영화나 연극을 찾아보는 것은 물론 성경도 읽어보고 있다”며 연극 데뷔 부담이 작지 않다고 했다.
손호준은 “대본이 너무 재미있어서 10년 만에 무대에 오르는 큰 도전에 나섰다”고 말했다. 5년 공백기를 거쳐 복귀작으로 연극을 선택한 고준희와 SBS TV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특급 골잡이로 인기를 누리는 정혜인은 배우로서 성장할 기회가 되길 바랐다. 공연은 6일부터 9월28일까지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시그니처홀.
지난달 대학로 소극장에서 막 내린 연극 ‘클로저’에서 이상윤, 진서연 등과 함께한 안소희는 첫 연극임에도 안정적인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충무아트센터 중극장에서 공연할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8월13일∼10월27일)는 영화 ‘연평해전’,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넷플릭스 시리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등으로 대중 눈도장을 찍은 이현우의 데뷔 무대다. 이현우는 똑똑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학생 크리스토퍼 역을 맡아 무대 경험이 많은 문소리 등과 호흡을 맞춘다.
아이돌 그룹 샤이니 멤버 겸 배우 최민호도 연극에 도전한다. 사뮈엘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쉽고 재미있게 재해석한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9월7일∼12월1일) 무대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분장실에서 주인공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의 대역 배우인 에스터(이순재·곽동연)와 밸(최민호·카이·박정복)이 예술, 인생, 연극 등에 대해 논하는 걸 익살스럽게 그린 작품이다. 연기 장인 이순재와 함께 연습하고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최민호에겐 값진 경험이 될 전망이다.
이처럼 대중적 인지도가 있거나 많은 팬을 거느린 배우들의 무대 도전은 여러 가지 기대 효과 때문이다. 배우로선 연기력 점검과 향상, 이미지 제고 등에 도움이 된다. 관객들은 TV·극장 화면으로만 본 배우들 연기를 가까이에서 생생하게 보고, 제작사는 공연 기간을 넉넉히 잡아도 될 만큼 흥행 가능성이 높다. 전도연·박해수·남윤호 등이 출연한 ‘벚꽃동산’(6월4일∼7월7일 LG아트센터 시그니처홀)과 황정민·김소진·송일국 등이 출연한 ‘맥베스’(7월13일∼8월1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처럼 1000석 이상 대극장 연극이 거뜬히 매진 사례를 기록한 게 대표적이다. 안소희의 연극 데뷔작 ‘클로저’나 인기 드라마 ‘더 글로리’와 ‘눈물의 여왕’을 통해 인기 대열에 오른 박성훈이 7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연극 ‘빵야’(6월18일∼9월8일)도 티켓 판매율이 괜찮았다. 곧 개막하는 창작 초연 ‘랑데부’(8월24일∼9월21일, LG아트센터 U+스테이지) 역시 박성웅·최원영·문정희·박효주가 나오는 2인극으로 관심을 모은다.
매체에서 주로 활동하던 배우들이 경쟁적으로 무대에 서는 것을 두고 TV와 영화는 물론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플랫폼(OTT)까지 전체적으로 작품 수가 줄면서 좋은 조건으로 매체 출연 기회를 잡기가 어려워진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시각도 있다.
최승연 고려대 문화창의학부 강사는 5일 통화에서 “이들 배우가 상업적인 기획력과 결합된 작품이든 다른 다양한 이유로 무대에 서든 연극 다양화와 관객 저변 확대에는 긍정적이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연극인도 많을 것”이라며 “(이름값에 기댄) 이벤트성 공연이 아니라 연극 정신을 존중하고 꾸준히 무대에 서면서 연극계 활성화에 도움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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