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강세→고용→빅테크→중동"... 폭락 부른 '악재 도미노'
담보부족분 못 채워 넣으면
7일 증시 또 한번 폭락할 수도
한국 증시가 5일 사상 최악의 날을 기록한 이유로 일주일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잇따른 대형 악재들이 지목된다. '악재 도미노'가 시장을 무너뜨렸다는 얘기다. 특히 인공지능(AI) 빅테크에 대한 기대로 시장이 과열됐던 만큼, 투자심리는 급격히 꺼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고점을 찍은 지난달 16일까지 미국 S&P500지수는 올 들어 18% 상승했다. 역대 최대 기록도 거듭 경신했다. 매그니피센트7(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테슬라, 엔비디아, 메타·M7)이 랠리의 주역이었는데 '혁명'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AI 관련 사업 기대감이 원동력이 됐다. 마지막 상승장은 우리 시간 1일 새벽이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가 엔비디아를 '톱 픽'으로 선정한 후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7.01% 급등하며 장을 마쳤다.
7월 31일: 일본 금리 인상... 폭락의 전조
하루 전 폭락장의 변곡점이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일본은행(BOJ)이 0.25%로 금리를 1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리면서다. 이후 엔캐리트레이드 자금이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엔캐리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일본에서 싼값에 돈을 빌려 미국처럼 금리가 높은 국가에 투자해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금리 인상 이후 글로벌 투자자의 엔캐리트레이드 유인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엔캐리 자금이 유입되는 경우 증시는 상승하지만, 엔캐리가 청산되면 반대급부로 폭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엔캐리 자금은 세계에 산재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개인적으로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엔캐리 청산인데, 자금 이동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불안심리를 키울 수 있다"고 밝혔다.
1, 2일: 고용 둔화... 침체 공포 부각
이튿날 증시를 'R(경기침체)의 공포'로 몰아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1일 오후 11시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가 발표한 7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예상보다 크게 낮은 46.8포인트로 나타났다. 6월과 유사한 48포인트대를 유지할 것으로 기대한 시장 입장에서는 기습 발표나 다름없었다. 2일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가 2.3%, 국내 코스피지수가 3.65% 하락 마감했지만 '미국 정부가 발표하는 비농업고용지수'를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비농업고용지수 또한 시장 예상을 크게 밑돈 것은 물론 실업률이 4.3%로 상승하면서 R의 공포는 심화했다. 여기에 '실업률 3개월 평균이 이전 12개월의 최저치보다 0.5%포인트 이상 높으면 침체에 진입한다'고 보는 경험적 척도인 '삼의 법칙'이 0.53%포인트를 기록한 게 공포를 더 키웠다.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침체가 아니다'라는 반론도 나온다. "미국 이민자 수가 증가하면서 모수인 고용참여율이 상승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 "팬데믹 이후 시중에 유동성이 대거 풀리면서 이전 지표들이 왜곡됐을 가능성이 있다"(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 등이 대표적이다.
3일: "버핏이 애플 팔았다" 빅테크 실망감 증폭
랠리의 주역 빅테크에 대한 실망감은 침체 우려와 함께 고조됐다. ISM 제조업 PMI 발표 직후 아마존과 인텔은 시장 예상보다 낮은 실적을 발표했다. 애플은 호실적에도 중화권 매출이 아쉽다는 지적을 받았다.
본격적으로 빅테크 쇼크가 발생한 건 다음 날이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6개월 사이 애플 보유지분 중 절반을 줄였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다. 심지어 M7의 리더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반도체 '블랙웰'의 생산이 설계상 결함으로 지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 기대감으로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가 7% 이상 오른 상황에서 결함 문제가 발생했고, 버핏까지 애플을 던지면서 시장이 많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부연했다.
5일: 증권가 반대매매 경보... 추가 하락 가능성
이에 더해 이란과 이스라엘의 전면전 위험이 커지고 있고, 미국 대선도 접전 양상이 지속되는 등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들만 산적한 상황이다. 심지어 증권가엔 반대매매 경보가 울렸다. 증시가 폭락하면서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려 주식을 산 투자자의 계좌 잔액이 증거금율(140%) 미만으로 떨어진, 담보부족계좌가 대량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한 대형 증권사의 경우 이날 지난달 29일 대비 10배 이상의 담보부족계좌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6일까지 증거금율을 채워 넣지 못하면 해당 계좌에 든 주식은 7일 장 시장과 동시에 자동 매도된다. 증시가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ISM 서비스업 지수 등 평소 '참고'로만 삼던 지표 하나하나로부터 시장이 호재를 찾으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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