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 안세영 배드민턴 여자단식 금메달...이변에 떨어져 나간 경쟁자들과 차원이 달랐다 [올림픽 NOW]
[스포티비뉴스=파리(프랑스), 조용운 기자] '여제' 안세영(삼성생명)이 올림픽 금메달로 자신의 시대를 공고히 했다.
세계랭킹 1위 안세영은 5일(한국시간) 오후 프랑스 파리의 포르트 드 라샤펠 아레나에서 펼친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허빙자오(9위•중국)를 게임스코어 2-0(21-13, 21-16)으로 압도했다.
안세영이 28년 만에 한국 배드민턴에 값진 단식 금메달을 안겼다. 한국 배드민턴은 역대 올림픽 단식에서 딱 한 차례 우승했다. 1996 애틀랜타 대회 방수현이 유일하다. 28년이 흘러 안세영이 오래 멈춰있던 대업을 이을 기회를 잡았다. 올림픽 전부터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평가받았던 것처럼 이번 대회 파죽지세로 내달렸다.
사실 금메달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우선 안세영의 경기력이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이미 세계 최고라는 공인을 받았다. 예선전도 순조로웠다. 위기는 있었지만 그래도 안세영의 저력이 상대를 압도했다. 세계선수권대회와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제패한 안세영은 하나 남은 올림픽 금메달을 향해 조금씩 다가섰다. 소원하던 금메달을 목에 걸면 이제 남은 건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 뿐이다. '그랜드슬램'에 다가설 수 있었다.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는 조금 실수가 잦았다. 이유가 있었다. 금메달을 따놓은 당상이라고 여기는 분위기에 몸이 굳었다. 기대감이 부담으로 이어진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 숙제까지 이중고에 시달렸다.
이런 고충을 이기지 못한 경쟁자도 있다. 안세영의 금메달 행보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던 세계 3위 타이쯔잉(대만)은 조별예선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약체들과 짜여진 예선에서 짐을 싸야 할 정도로 올림픽이 주는 압박감은 상당하다.
그래도 안세영은 코트를 누비면서 긴장감을 푸니 만나는 상대마다 압도하고 있다. 8강에서 안세영 이전 세계랭킹 1위였던 야마구치 아카네(일본)에 역전승을 거뒀다. 4강에서는 김나은을 꺾고 기세가 좋던 그레고리아 마리스카 툰중(6위•인도네시아)도 뒤집기에 성공했다.
안세영은 4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포르트 드 라 샤펠 아레나에서 펼친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준결승에서 그레고리아 마리스카 툰중(인도네시아)을 게임스코어 2-1(11-21, 21-13, 21-16)로 제압했다. 1세트를 내주고도 2세트와 3세트를 모두 따내며 결승전에 안착했다. 어쩌면 예선에서 조금 부진했던 것이 결승을 앞두고 좋은 약이 됐을 수도 있었다.
그러는 사이 안세영의 숙적까지 파리를 떠났다. 세계랭킹 2위인 천위페이(중국)가 8강에서 짐을 싸는 이변이 벌어졌다. 천위페이는 오랫동안 안세영의 천적으로 불려왔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안세영을 가로막은 것을 비롯해 커리어 초반 벽과 같은 답답함을 안겨준 상대다. 올림픽을 앞두고도 1승 1패로 팽팽했다. 전초전이라 불린 싱가포르 오픈과 인도네시아 오픈에서 연거푸 천위페이를 만나 자신감과 숙제를 모두 경험했다. 그런 천위페이가 떨어지면서 안세영 입장에서는 금메달 가능성이 소폭이라도 상승한 셈이다.
물론 지금은 안세영이 한 수 위 평가를 받는다. 무한 체력과 단단한 수비력으로 천위페이의 장점을 무력화시키는 데 도가 튼 안세영은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해 완벽하게 뛰어넘었다.
당시 안세영은 천위페이를 단식과 단체전에서 만나 모두 이겼다. 단체전에서는 2-0으로 꺾었고, 단식 결승에서도 2-1로 이겨 그동안 천적 관계를 확실하게 청산했다. 그래도 올림픽을 앞두고 만나 1승 1패로 팽팽했다. 대진상 결승에서 최후의 대결을 펼칠 것으로 내다봤는데 허빙자오에게 발목이 잡혔다.
좋아할 법도 한데 안세영은 "늘 말했듯이 모든 선수가 라이벌이라고 생각한다. 천위페이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도 정말 다 잘한다"며 "천위페이가 떨어졌다고 해서 나한테 금메달을 주는 게 아니기에 그냥 신경쓰지 않고 내 할일을 하는 게 관건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강호들이 툭툭 떨어져 나가는 건 여러 의미를 지닌다. 올림픽이라는 가장 큰 무대를 앞두고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거나 바람과 같은 낯선 경기장 환경 등을 잘 다루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또, 부상 변수도 빼놓을 수 없다. 당장 이번 준결승만 하더라도 안세영과 결승도 붙을 것이라던 카롤리나 마린(4위•스페인)이 경기 도중 부상으로 기권했다.
안세영은 상대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여러 리스크를 모두 방어했다. 자신을 가장 괴롭혔던 부담감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서면서 들뜨는 마음으로 바꿨다. 물론 자만심이 들어가지 않게 계속해서 자신을 채찍질도 했다.
안세영은 "(MBTI가) INFJ이기 때문에 상상을 정말 많이 하는 편"이라며 ""상상 때문에 잠도 못자고 몸이 막 굳기도 한다. 낭만 가득한 엔딩을 꿈꾸느라 들뜬 마음을 내려놓기가 힘들다"라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래도 아직 다 끝나지 않은 걸 누구보다 잘 안다. 안세영은 "낭만 있게 끝낼 수 있도록 내일 경기만 생각하겠다"라고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많은 의미가 담긴 금메달을 완성했다. 허빙자오를 상대로 결승전에서도 자신의 스타일로, 상대 숨통을 끊어버렸다. 앞선 8강과 4강에서는 첫 게임을 내주는 슬로 스타터의 면모를 보였는데 결승은 달랐다.
안세영은 허빙자오를 확실하게 무너뜨리겠다는 듯 1게임부터 기선을 잡아가는데 성공했다. 초반에는 허빙자오와 포인트를 주고받는 레이스였다. 허빙자오도 만만치 않았다. 8-8 접전에서 안세영에게 점수를 내줬지만 곧장 9-9로 따라붙었다.
그러자 안세영은 허빙자오를 속인 직선 드롭샷으로 다시 10-9로 앞서간 데에 이어 11점을 먼저 따냈다.
허빙자오가 추격했지만 안세영은 흔들리지 않고 15-12까지 점수 차이를 벌렸다. 허빙자오의 공격을 완벽하게 수비해내면서 16-12까지 만들었다.
안세영의 공세는 계속됐다. 허빙자오의 공격을 모두 막아 내고 날카로운 드롭샷을 허빙자오가 따라갈 수 없는 곳에 꽂아넣었다. 순식간에 21-13으로 1세트를 끝냈다.
안세영 특유의 대각 헤어핀으로 허빙자오를 계속 뛰게 했다. 상대를 뒤로 물리게 하는 하이 클리어 이후 네트 가까이 떨어지는 드롭샷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안세영의 셔틀콕이 원하는 대로 향하면서 허빙자오는 뛰고 또 뛰었다. 2게임 들어 당연히 발이 무뎌질 수 밖에 없었다. 허빙자오의 발이 무거워지면서 2세트에서도 안세영의 흐름이 이어졌다. 2-2에서 허빙자오의 대각 스매시를 받아 내고 득점을 올리며 허빙자오의 기를 꺾기까지 했다.
안세영의 기세는 가라앉지 않았다. 안세영은 2게임 역시 11-7로 허빙자오보다 먼저 분기점을 통과했다.
11점을 허용한 이후엔 전열을 가다듬은 허빙자오가 힘을 냈다. 순식간에 4점을 따내면서 11-11로 균형을 맞췄다.
하지만 안세영은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12점째를 챙기며 다시 앞서갔다. 맞헤어핀 대결에서도 이기면서 13-11로 다시 점수 차이를 벌렸다.
'슬로 스타터' 안세영이라는 벽은 경기 후반부터 더욱 단단해졌다. 허빙자오의 공격을 신들린 듯한 움직임으로 방어해 내고 날카로운 드롭샷과 헤어핀으로 연속해서 득점을 올렸다. 점수 차이는 16-11까지 벌어졌다. 대관식까지 5점만 남겨뒀다.
18-13에서 허빙자오의 실수가 나오면서 안세영이 19-13으로 앞서갔다. 남은 점수는 2점.
20-16. 안세영이 마지막 점수를 챙기고 경기를 끝냈다.
안세영의 스타일이 허빙자오에게 피로를 쌓게 했고, 증상이 나타난 11점 지점부터 급격히 차이를 벌린 셈이다.
안세영은 가장 자신답게, 자신의 색깔로 세계랭킹 1위다운 경기력으로 세계 정상에 올랐다. 안세영의 시대가 계속 이어질 가장 큰 배경이다.
이날 경기 전까지 한국 배드민턴은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6개와 은메달 7개 동메달 7개로 중국과 인도네시아에 이어 종합 순위 3위에 올라 있다. 역대 올림픽 한 대회 최다 금메달은 2개.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92 바르셀로나 대회에서 남자복식 박주봉-김문수와 여자복식 황혜영-정소영이 우승했고, 1996 애틀랜타 대회에서도 혼합복식 김동문-길영아, 여자단식 방수현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해 끝난 아시안게임에서 5년 전 노메달 수모를 씻고 금메달 2개(여자단식·여자단체), 은메달 2개(남자복식·여자복식), 동메달 3개(여자복식·혼합복식)로 마무리하면서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해냈다.
그러면서 여자 단식 세계랭킹 1위 안세영(삼성생명)을 필두로 이번 대회에서 역대 올림픽 최고 성적을 목표로 닻을 올렸다.
이번 대회는 혼성 단체에서 김원호 정나은 조의 은메달에 이어 안세영의 금메달로 마무리했다.
한국 대표팀도 안세영이 금빛 레이스에 합류함에 따라 역대 최고 성과를 예감하고 있다. 안세영의 금메달로 파리 올림픽 선수단은 이번 대회 11개의 금메달을 기록 중이다. 한국 선수단은 이미 양궁에서 세계 최강의 면모를 자랑했다. 남자 개인전 김우진, 여자 개인전 임시현, 혼성 단체전 김우진·임시현, 남자 단체전 김우진·이우석·김제덕, 여자 단체전 임시현·전훈영·남수현까지 양궁 종목에 걸린 5개의 금메달을 다 싹쓸이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대표팀 예상으로 '금메달 5개'를 예상하는 시선이 있었는데 양궁에서만 그 예상치를 다 채운 것이다.
사격에서도 금빛 레이스가 이어졌다. 여자 10m 공기권총 오예진, 여자 10m 공기소총 반효진, 여자 25m 권총 양지인이 금메달을 각각 하나씩 따냈다. 사격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3개를 따내며 종전 최고 기록이었던 2012년 런던 대회의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를 넘어서는 역대 최고 성과를 냈다. 근래 올림픽에서 계속해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펜싱에서도 두 개의 금메달을 보탰다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 오상욱이 세계 최강의 면모를 뽐낸 가운데 남자 사브르 단체 오상욱·구본길·박상원·도경동이 금메달을 합작하며 마지막에 웃었다. 그리고 구기 종목 가뭄 속에서 안세영이 배드민턴 여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11번째 금메달 낭보를 알렸다.
한국 선수단은 그 이상을 노린다. 금메달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실력이 평준화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태권도 종주국이다. 올해 대회에서도 태권도가 금빛 발차기를 기대케 한다. 높이뛰기의 우상혁이 피날레를 조준하고 있고, 근대5종 등에서도 깜짝 금메달을 기대한다. 안세영의 금메달이 마지막이 아닐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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