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5월, 잊을 수 없는 김영균의 한줄기 눈물
1991년을 맞는 유가협은 무척 바빴다. 유가협 후원회에서 노래 공연을 하자고 꼬드겼다. 노래도 하고, 작곡도 하는 김제섭을 비롯해 음악하는 사람들이 후원회에 많았고, 어머니들이 서너 번 무대에서 노래한 적이 있어서였다. 자신 없다며 뒤로 빼던 어머니들이 점점 솔깃해져서 알아서 노래 연습을 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소박한 노래 공연 판이었는데, 노래마을의 백창우를 비롯해 민중가수 정세현, 박미선, 강일철, 윤정숙, 박재화와 ᄒᆞᆫ돌이 가세했고, 민족음악연구회, 민족극패 울력도 끌어들여 판을 엄청 키웠다. 가수들의 노래 사이사이에 김성수·김윤기·박선영·이한열 어머니, 박관현 누님, 박종철 아버지가 독창, 중창을 하고, 배우 문성근 씨가 시낭독, 이재식 딸 이근혜가 편지를 읽는 식으로 구성이 다채로웠다.
제목은 ‘어머니의 노래’였다. 1991년 4월27일 오후 3시와 6시에 연세대 대강당에서 하기로 했다. 마침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은 과 후배인 임헌태가 하고 있어서 장소 대관은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언론에 공연 기사가 나가자 참가 문의가 쇄도했다. 공연 날짜가 다가오면서 공연이 살짝 대박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유가족들이 노래 공연을 한다는 게 그때는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1991년 4월26일 오후에 우리는 연세대 대강당에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때 명지대 1학년생 강경대가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서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겼지만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유가족들은 고민에 빠졌다. 이런 마당에 공연을 밀고 갈 것인가? 연기할 것인가?
강경대 사망과 ‘어머니의 노래’ 공연
서울 강남구 수서지구 택지분양 과정에서 일어난 6공화국 최대 비리사건인 수서비리가 터졌고, 물가와 집값은 폭등하고 ‘범죄와의 전쟁’으로 대표되던 공안탄압으로 양심수가 급증하면서 노태우 정권은 위기에 몰리고 있었다. 민심이 폭발할 지경인 상황 위에 대학교 1학년생이 백골단에 맞아 죽은 것이니 이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다시 기회가 없을 듯해 준비된 공연을 강행하기로 했다
4월27일, 연세대학교는 전쟁터였다. ‘고 강경대 열사 폭력살인 규탄 및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전국에서 모인 학생들이 결의대회를 열고 교문으로 진출하려고 했다. 이를 저지하려는 전경들과 공방이 치열했다.
그런 중에 ‘어머니의 노래’ 공연이 막을 올렸다. 전체 2천석 객석 중에 5백석. 텅 빈 공연장이었지만, 유가족들은 준비한 노래를 마음을 다해 불렀다. 저기 다시 내 자식과도 같은 경대가 죽어서 세브란스 영안실에 누워 있는 상황에서, 툭 건드리기만 해도 금세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마음을 안고 유가족들이 무대에 올랐다. 공연은 감동 그 자체였다. 그때의 공연 실황을 녹화라도 해놓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만, 그때는 그럴 정신이 아니었다.
공연을 마치자마자 유가족들은 세브란스 영안실로 넘어갔다. 대책위원회에서 나의 역할은 ‘영안상황실장’이었다. 한 마디로 영안실을 지키는 일이었다. 유가족들을 돌보는 일과 함께 강제부검을 막는 일이 주요한 임무였다. 언제든 검찰은 경찰을 앞세워 들이닥칠 수 있는 상황이라 영안실은 늘 긴장이 감돌았다. 당시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연)에서 부검을 한다는 것은 사인을 왜곡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이를 막아야 하는 일이었다. 결국 부검은 막아냈고 검시, 검안으로 끝냈다. 경대는 맞아 죽은 사람답지 않게 편안한 얼굴이었다.
신문 보기 두려웠던 날들
그런데 그 뒤로 박승희(4월29일), 김영균(5월1일), 천세용(5월3일), 김기설(5월8일), 윤용하(5월12일), 이정순(5월18일), 정상순(5월29일), 김철수(6월2일)이 연이어 분신하면서 죽어갔다. 노태우 정권 타도, 백골단 해체 등 주장은 동일했다. 6월에는 노동자 이진희(6월15일)와 석광수(6월24일)가 노동조합 탄압에 저항하면서 분신, 자결했다. 거기에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는 안양병원에서 의문사했고(5월6일), 김귀정은 경찰의 토끼몰이 진압 중에 압사했다(5월25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분신 정국이 펼쳐지고 있었다. 유가협은 세브란스 영안실로 사무국을 옮겨서 일을 봤다. 전국에서 올라오는 ‘속보!’가 두려웠다. 아침에 신문 보기가 겁이 났다. 나는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을 지키면서 전국으로 다녀야 했다. 매일 사람들이 분신을 결행하고 죽어가자 이소선 어머니는 “태일이 분신한 게 사람이 살자고 한 건데, 왜들 분신을 하냐. 태일이 때문인 거 같아 미치겠어”하면서 우셨다.
5월1일, 안동대학교에서 김영균이 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음날 급히 와달라는 전갈이 왔다. 나는 박정기 아버지와 박관현 누님 박행순과 함께 대구로 내려갔다. 경북대병원은 경찰에 장악되어 있었다. 살벌한 풍경이었다. 누군가 와서 ‘김영균이 중환자실에 있는데 가족들이 협조를 하지 않아서 상태조차 모른다’고 했다. 나와 박정기 아버지는 바로 중환자실로 갔다. 역시 경찰이 안 된다고 가로막았다.
“이놈들아, 내는 종철이 애비여. 김영균이 여기 있는 거 알어. 썩 비켜!” 경찰이 당황한 사이 나는 뒤에서 아버지를 밀어 넣었다. 중환자실은 텅 비어 있었고 김영균만 병상에 있었다. 온몸을 붕대로 칭칭 동여맨 모습이었다.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발을 만져보았다. 얼음덩이처럼 차가웠다. 얼마 못 갈 것 같았다. 저렇게 분신해서 누워있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아왔다. 분신한 이들은 온몸에 수포가 올라오고 진물이 흐른다. 심장의 박동을 재는 기계의 녹색 그래프는 겨우겨우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박정기 아버지가 영균의 손을 잡고 “내는 종철이 애비데이. 희망을 놓지 말그라. 마지막까지 용기를 잃어선 안 된데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것일까? 누워 있는 그의 오른쪽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렀다. “니 맘 내 다 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그라.” 그리고 다시 한 번 손을 잡아주셨다. 그러고는 병실을 나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김영균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본 것이다.
유가족들의 간절한 호소
그 다음날에는 경원대(현 가천대학교) 천세용이 분신했다. 처음에는 한강성심병원으로 갔는데 응급처치 뒤 세브란스 신촌병원으로 옮겼다는 소식이 들렸다. 중환자실을 찾았다. 그 복도에서 천세용의 고등학교 다니는 동생을 만났다.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두 형제가 의지하며 살던 처지였다. 그런데 형이 분신했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우리 형 죽는 거예요?” 그 상황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아냐, 아냐”하면서 그를 꼭 안아주었다. 기가 막힌 세월이었다. 지금도 나는 김영균의 눈물이, 그리고 천세용의 동생이 종종 생각난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고 진땀이 흐르면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오는 증세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사랑은 가슴은 뛰게 한다고 했는데 나는 죽은 자들을 사랑한 것일까? 그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일까?
연이은 대학생들의 분신 소식에 누구보다 가슴 아파한 건 유가협 어머니 아버지들이었다. 1991년 5월4일 유가협은 연세대 학생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발표했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의 열사가 필요치 않다. 젊은이들의 계속되는 죽음은 민주 세력 전체의 손실이다. … 목숨을 아끼지 않는 젊은이들의 순수한 열정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새날이 올 때까지 살아서 싸우는 것만이 진정한 투쟁의 길이다.”
유가족들은 학생들이나 노동자들 만나면 “죽지 말고, 살아서 싸우자!”고 진심으로 호소했다. 성명을 발표한 유가족들은 연세대학교 백양로를 행진하면서 간절한 호소를 알렸다.
박래군 | 36년째 인권운동가로 살고 있다. 유가협,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재단 사람을 거쳐서 현재는 4·16재단 운영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 ‘상처는 언젠가 말을 한다’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 공저서 ‘이따위 불평등’ ‘새로고침’ ‘살아남은 아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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