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친환경’ 내세운 파리올림픽…내막 들여다보니
산호초 파괴, 대규모 탄소발자국 등 피할 수 없어
“국제 스포츠 이벤트 축소 검토” 목소리도
“기후변화가 파리올림픽을 망쳤다.”
기후 연구자 단체 ‘세계기후특성’(WWA)의 프리데리케 오토 공동창립자는 최근 발표한 ‘지중해 폭염 원인 분석’ 보고서에 “인간의 화석연료 사용과 지구 온난화가 없었다면 지금보다 파리의 온도가 약 3도 더 낮았고, 폭염으로부터 스포츠 선수들의 안전이 보호됐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 비영리 기후연구 단체인 ‘클라이밋 센트럴’(Climate Central) 조사 결과, 실제로 파리에서 첫번째 올림픽이 열린 1924년 이후 100년간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파리의 7~8월 연간 기온은 3.1도 상승했다. 1924~1933년 파리에서 30도가 넘는 날씨는 69일이었지만, 최근 10년(2014~2023년)간은 188일로 폭염(유럽 기준 30도 이상)이 약 2.7배 증가했다. 열대야(유럽 기준 밤 기온 20도 이상, 우리 기준은 25도 이상)도 100년 전보다 20배 이상(4일→84일) 많아졌다. 산업화 이후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 지역에서 온실가스가 무한정 배출된 결과다.
‘1924 파리올림픽’과 완전히 달라진 기상 환경에서 치러지는 ‘2024 파리올림픽’은 새 경기장을 짓지 않고,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저탄소’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과연 이번 파리올림픽은 친환경 올림픽으로 기록될 수 있을까? 파리올림픽조직위원회는 128년 올림픽 역사상 첫번째 ‘탄소중립(탄소배출량 0) 대회’가 될 것이라 홍보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경기 시설 건설로 인한 산호초 파괴와 탄소배출권 거래를 통한 탄소 감축 목표 설정 등 ‘그린워싱’(친환경 이미지 세탁)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100년새 3도 오른 파리에서 ‘저탄소’ 가능한가?
이번 파리올림픽 기간, 30도가 넘는 폭염이 기승을 부린 탓에 올림픽조직위가 애초 홍보한 친환경 정책들은 조금씩 변경됐다. 탄소 배출을 막기 위해 에어컨이 없는 대회를 선언했지만, 폭염 우려 속 선수단의 불만이 커져 자비로 2500여대 에어컨을 주문할 수 있게 승인한 게 대표적이다. 미국 농구대표팀의 경우 800개 객실을 보유한 파리지역 특급호텔 전체를 대여해 저탄소 정책에 반하는 ‘초호화 올림픽 관광’을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선수촌 식당에선 친환경 채식 식단을 제공했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국가의 선수들이 단백질 보충을 위해 자체적으로 식사를 공수하는 일도 벌어졌다.
파리와 1만6천㎞ 떨어진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타히티 섬에서 서핑 대회를 개최한 것도 해양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경기 운영을 위해 바다 위에서 심판 등이 머물 대형 타워를 건설하려는 과정에서 산호초가 파괴된 게 문제였다. 환경단체들은 새 경기 시설 건설을 최소화한다는 대회 운영 방침에 맞춰 기존 타워를 재활용하라고 요청했지만, 결국 규모를 줄일 뿐 타워를 새로 건설하는 쪽으로 계획이 수정됐다. 시설을 축소해 건설하는 방침에도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산호 생태계 파괴에 대한 우려는 가시지 않았다.
진짜 문제는 올림픽 탄소발자국
대회 운영상의 문제뿐 아니라, 초대형 국제 스포츠 행사의 특성상 파리에 모인 수천만 명의 관람객들이 한 번에 배출하는 ‘탄소 발자국’도 기후변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환경단체들은 200여국에서 온 1만여명의 선수와 6만여명의 봉사자 및 미디어 관계자, 1500만명의 관람객이 직·간접적으로 배출하는 탄소배출량이 파리올림픽조직위의 목표치인 175만톤을 웃돌 것이라고 본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대회 기간 중 전체 탄소 발생량 절반 이상이 관람객들로부터 나온다고 예상한다.
글로벌 기후연구 단체인 ‘카본 마켓 워치’(Carbon Market Watch)의 탄소발자국 조사 등을 종합하면, 예상 관람객 1500만명이 파리올림픽 기간 남길 탄소발자국은 약 180만톤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1인당 대중교통 이용과 식사 등으로 발생한 탄소배출량을 약 120㎏ 잡아 보수적으로 계산한 결과다. 장거리 관람객이 많아지면 탄소배출량은 급증할 수 있다. 한국에서 프랑스까지 왕복 비행 시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약 800㎏이다.
개빈 메이어 카본 마켓 워치 연구원은 “파리올림픽이 이전 하계 대회 평균 350만톤의 탄소배출량을 절반인 175만톤 수준으로 줄인다고 공언했지만, 실상은 탄소배출권 거래와 탄소배출량 누락 등으로 만들어낸 ‘부풀려진 수치’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 배출량은 300만톤 안팎으로 예상되는데, 탄소배출권 거래로 배출량 수치만 줄였다는 것이다. 일본도 2020 도쿄올림픽 탄소배출 목표 달성을 위해 배출권 거래 프로그램에서 400만톤이 넘는 탄소배출권을 구매했고, 프랑스도 이번 대회를 준비하며 150만톤의 탄소배출권을 구매한 것으로 전해졌다.
환경파괴 기업이 올림픽 후원사라고?
‘그린워싱’ 혐의로 수사 선상에 올랐거나 비판받는 글로벌 기업들이 올림픽 후원사로 참여한 점도 친환경 이미지 세탁을 방조하고 있다는 비판이 따른다.
파리올림픽에서 캐나다 선수단 의류를 후원하는 ‘룰루레몬’은 캐나다와 프랑스 규제 당국으로부터 온실가스 감축 성과를 과장해 소비자를 기만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환경단체인 ‘스탠드어스’(Stand.earth)가 룰루레몬이 2020년 지구를 생각한다는 의미를 담은 ‘비 플래닛’(Be Planet)이란 친환경 경영 기조를 발표한 뒤 탄소 배출량이 100% 늘었고 재료 60% 이상이 화석 연료에서 파생됐다는 내용으로 고발장을 접수한 결과다.
올림픽에서 메달과 봉사자들의 의류 등을 후원하는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도 환경파괴 책임이 크다며 비판받고 있다. 브랜드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굿온유’(Good on you)에 따르면 루이비통은 에르메스, 샤넬과 함께 상품 과대 포장, 가죽을 위한 가축 도살,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재고 태우기 등을 했다는 이유로 환경파괴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 기후 연구기관인 ‘뉴 웨더 인스티튜트’(the New Weather Institute)는 국제올림픽위원회의 공식 파트너 기업 중 전 세계에서가 가장 많은 내연기관 차량을 판매하는 도요타와 반도체·스마트폰 제조 과정에서 가장 많은 전력을 사용하는 삼성전자 등이 올림픽을 활용해 친환경 이미지 세탁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다보니 일각에선 탄소배출을 막기 위해 대형 스포츠 이벤트 자체를 축소·중단해야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줄스 보이코프 미국 퍼시픽대학교 교수(정치학)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기고를 통해 “비교적 최근에 열린 올림픽(런던 2012, 리우 2016, 도쿄 2020) 모두 친환경 올림픽을 약속했지만, 모두 (탄소 감축) 후속 조치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대형 스포츠 행사가 기후재앙을 앞당기는 상황에서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대회를 축소하거나 중단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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