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50·60대만 보면 ‘호헌철폐’ 아느냐고 물었죠”

김용희 기자 2024. 8. 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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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군산 6월항쟁’ 첫 기록집 펴낸 20대 청년 김성훈씨
2일 전북 군산시 한길문고에서 김성훈씨가 최근 군산의 6월항쟁을 정리해 펴낸 ‘입춘, 6월에 봄이 오다’를 소개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6년 전 대학생 때였다. 1987년 군산에서 일어난 6월항쟁을 취재하려고 길을 나섰는데 정말 앞이 막막했다. 빵집 이성당 앞 중앙사거리에서 50∼60대가 보이면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아십니까’라고 물어봤다. 물론 이상한 사람 취급당했다.“

지난 2일 전북 군산시 한길문고에서 만난 김성훈(29)씨는 무작정 길거리 인터뷰에 나섰던 2018년 여름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햇볕에 그을린 팔을 보여주며 “원래 피부가 하얀 편인데 그때 까맣게 타버렸다”며 웃었다.

80년대 군산 민주화투쟁 기록 위해
6년 전 무작정 길거리 취재 나섰다
지도부였던 박창신 신부와 연 닿아

김씨는 2020년부터 군산의 민주화 운동에 관한 책을 만들고 있다. 2020년 ‘박창신 신부 필름으로 보는 군산 6월항쟁’, 2023년 ‘오룡동 성당 시민강좌: 80년대 군산 혁명가들의 이야기’에 이어 최근엔 군산 6월항쟁 당시 지도부로 활동했던 박창신(82) 신부의 기록집 ‘입춘, 6월에 봄이 오다-박창신 신부 필름으로 보는’을 펴냈다. 박 신부에게 받은 6월항쟁 사진 수천장을 날짜별로 정리해 사건의 주요 장면을 보여주는 310여장을 추려 인터뷰와 함께 실었다. 전북 군산지역의 6월항쟁 전후 상황을 담은 첫번째 책이다.

김씨는 “전작들을 만들며 군산의 6월항쟁을 총망라한 책을 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고, 박 신부님의 부탁도 있었다. 그동안 군산 시민단체는 여력이 없어 민주화운동을 정리한 기록을 만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북 군산지역 6월항쟁 지도부로 활동한 박창신 신부. 김성훈씨 제공

김씨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중학교 때다. 논술대회에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등을 주제로 글을 쓰면서 사회문제에 눈을 떴던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시사 블로그를 운영했다. 블로그는 이명박 정부 당시 ‘천안함 침몰이 북한과 무관할 수 있다’는 글을 올린 뒤에 폐쇄됐다. 그는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상황이 보수 정권으로 이어져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았다고 생각했다. 이후 군산대 역사철학부에 진학해 지역의 역사를 공부했다”고 말했다.

김씨가 ‘군산’의 민주화운동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그가 나고 자란 고향이기 때문이다. 군산 지역 곳곳엔 6월항쟁의 흔적이 남아있다. 오룡동성당부터 옛 시청 사거리와 옛 군산경찰서 주변은 직선제 개헌과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는 시민들이 걸었던 길이다.

그는 “군산대 역사철학부 1학년 때 산학협력사업의 하나로 군산 다크 투어리즘을 기획했다. 당시 일본식 가옥에서 아이들이 사무라이 놀이를 하는 걸 보고 충격받았다. 2018년 3학년 땐 5·18기록관이 공개한 진압작전을 마친 직후 계엄군 지휘관들이 웃고 있는 영상을 접하곤 분노를 느꼈다”고 말했다.

올바른 역사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유튜브와 블로그 활동을 했는데, 이때 받은 전자우편으로 김씨의 인생 항로가 본격적으로 바뀌었다. 전자우편은 군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이 보낸 것으로, ‘5·18 때 무기를 든 광주시민도 있었다. 폭도의 측면이 있는데 왜 이야기를 안 하냐’는 항의 내용이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고민하던 중 5·18의 산물인 군산의 6월항쟁을 알리기로 했다.”

1987년 6월26일 군산 시민들이 광주 학살 책임자 처벌과 군사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하고 있다. 책 ‘입춘, 6월에 봄이 오다’ 갈무리.

하지만 1994년생인 김씨가 1987년 6월항쟁과 군산의 민주화투쟁 역사를 정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6월항쟁의 주역은 시민이라는 생각에 2018년 여름 무작정 길거리 인터뷰에 나섰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성과는 있었다. 한 시민이 군산 6월항쟁 지도부였던 임홍연 목사에 대해 이야기했고, 이를 계기로 같은 해 박 신부, 군산 민주화단체 마당발 오금수씨와 만나 노동·사회활동가들과 연이 닿았다.

김씨는 “어린 나이에 6월항쟁을 정리하겠다고 하니, 처음엔 박 신부님과 오 선생님이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며 “하지만 틈틈이 공부하며 익혔던 지식으로 신부님이 지목하신 사진들을 설명하니 인터뷰를 수락하셨다”고 말했다.

수천장 사진 정리하고 인터뷰 수록
알바로 출간 비용 마련해 1인 출판
“5·18 등 역사 무관심한 청소년에게
‘행동의 역사’ 통해 시민의식 심고파”

김씨는 박 신부를 수차례 만나 6월 항쟁 당시 상황을 전해 들었고, 사진과 함께 544쪽 분량 책을 만들었다. 책은 번외편을 포함해 총 7부로 구성했다. 1부 ‘난을 닮은 신부’에서는 보수적이었던 박 신부가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게 된 배경을 2부 ‘오룡동 성당 시민강좌’에서는 신군부에 맞서기 위해 박 신부가 기획한 ‘시민강좌’ 이야기를 담았다.

3부 ‘세풍합판 노동투쟁’에서는 노동운동 불모지였던 군산에서 박 신부의 시민강좌에 참여했던 김광수, 이선재, 서철심이 주도한 세풍합판 노동투쟁을 소개했다. 매일 12시간 노동을 강요받았던 경암여자상업고등학교(1991년 폐교) 학생들의 투쟁 이야기다. 4부는 세풍합판 투쟁으로 조직화한 군산의 6월항쟁, 5부는 직선제 쟁취 이후 군산의 시민운동을 설명했다.

이번 책은 지난해 5월 김씨가 차린 1인 출판사 ‘녹두서점’이 낸 두번째 책이다. 출판사 이름은 군산 6월항쟁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녹두서점에서 이름을 따왔다. “군산의 역사와 문화를 책으로 기록해보자는 생각에 출판사를 차렸다. 2002년 한길문고로 이름을 바꾼 기존 녹두서점의 의미와 정신을 잇기 위해 녹두서점으로 출판사 이름을 정했다.”

책은 기획부터 출판까지 모두 김씨의 손끝에서 탄생한다. 책 표지 디자인을 정하고, 자료를 정리하고, 글을 쓴다. 별도의 사무실이 없어 카페나 집에서 일을 하고, 출간 비용을 마련하려 카페 아르바이트나 일당제 노동을 하기도 했다. 오롯이 홀로 작업해야 하는 일이 힘들 법도 하지만, 김씨는 이 일이 즐겁기만 하다.

김성훈씨가 전북 군산지역 6월항쟁을 처음으로 정리해 펴낸 ‘입춘, 6월에 봄이 오다’ 표지. 김성훈씨 제공

김씨는 자신이 만드는 책을 통해 청년들에겐 ‘행동의 역사’를, 기성세대들에겐 정치 기득권화의 문제점을 일깨우고 싶다고 했다. 무엇보다 6월항쟁을 일반 시민들에게 되돌려 주고 싶다. 김씨는 6년 전 자신에게 5·18 왜곡 이메일을 보냈던 고등학생을 떠올리며 청소년 지도사로 진로를 정할 예정이다.

“6월 항쟁은 지루한 역사가 아닌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입니다. 입시를 위해 공부하는 청소년들에게 시민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어요. 청소년들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 사회가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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