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노숙인 돌본 진료소…보조금 삭감에 폐원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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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부산 부산진구 도시철도 1호선 서면역 근처에 있는 노숙인 진료소 '사랑그루터기 진료소'에서 의사는 노숙인 염아무개(71)씨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진료소장인 정운용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부산경남 대표는 "사회 복지 체제 사각지대를 찾아 개선하려는 노력은커녕 민간에 떠넘겼던 노숙인 진료소에 대한 보조금마저 삭감하는 것에 허망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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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당 수치가 500이 넘었어요. 이러다 진짜 큰일 납니데이. 약 좀 꼭 챙겨 드이소. 저혈당 쇼크 올 수 있으니 약 드신 뒤엔 무조건 식사 챙겨 드셔야 합니더!”
지난 2일 부산 부산진구 도시철도 1호선 서면역 근처에 있는 노숙인 진료소 ‘사랑그루터기 진료소’에서 의사는 노숙인 염아무개(71)씨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의사는 “혈당 약은 식사 전에 꼭 드셔야 한다. 아침(식사)이 여의치 않으면 점심 전이라도 챙겨 먹어야 한다”고 여러차례 반복했다.
의사의 당부를 들은 염씨가 약으로 가득한 비닐봉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여러 병을 앓고 있는데 걱정은 크게 안 해. 의사 선생이 자세하게 (진료) 봐주고 약까지 준다 아이가. (진료소) 드나든 지 20년 다 돼 가는데, 여가 내 주치의 아이가.”
염씨가 진료를 보는 사이, 다음 진료 순서인 김아무개씨가 진료소 근처에서 혈압, 맥박, 혈당, 체온 등을 측정했다. 부산대 약학대 학생들이 김씨의 검사를 도왔다. 염씨가 진료소 밖으로 나오자, 김씨가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2003년 이곳에 터를 잡고 노숙인 진료를 해온 ‘사랑그루터기 진료소’는 20년 동안 노숙인들의 주치의였다. 한때는 진료소에서 노숙인 전용 의원으로 확대하려는 계획도 세웠지만, 기피시설을 반대하는 지역 여론에 밀려 진료소로 남았다. 공중보건의 배치도 2015년 이후 철회됐다.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이 도입되며 군 복무를 마친 뒤 의전원에 입학하는 남학생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뜻있는 의사와 약사 등 10여명이 모여 매주 금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노숙인을 진료하고 있다. 평일에는 상근 복지사가 노숙인이 처방받은 약을 지급하거나, 심리상담을 진행한다. 한 달에 120~130명, 한 해 평균 1500여명이 진료소를 찾는다.
그런데 노숙인 진료의 필요성에 공감한 이들의 노력으로 20년간 유지돼온 진료소가 내년에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다. 지난해 부산시가 진료소 보조금을 삭감했기 때문이다. 부산시는 지난해 7200여만원에서 올해 6100여만원으로 보조금을 줄였다. 시 보조금 성과평가 심의위원회가 진료소 성과를 ‘미흡’으로 평가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부산시의 한 관계자는 “정확히 어디 기준이 부족한 것인지 파악할 수는 없다. 지난해와 다른 점이 없기에 올해도 심의위에서 ‘매우 미흡’ 또는 ‘미흡’으로 평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내년도 보조금 삭감도 불 보듯 뻔하다는 뜻이다.
이에 진료소 쪽은 “잠정적으로 올해까지만 진료소를 운영하고 내년에는 문을 닫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진료소장인 정운용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부산경남 대표는 “사회 복지 체제 사각지대를 찾아 개선하려는 노력은커녕 민간에 떠넘겼던 노숙인 진료소에 대한 보조금마저 삭감하는 것에 허망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진료소 폐쇄 소식에 노숙인들도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박아무개(57)씨는 “내가 사는 곳(부산 연제구) 병원에서도 무료 진료를 받을 수는 있지만, 이 진료소만큼 친절하고 자세하게 진료를 봐주는 곳은 경험하지 못했다. 가진 것 없고, 힘없는 노숙인들이 이용하는 곳이라 무시해도 된다고 보는 듯해 씁쓸하다”고 말했다.
진료소 보조금 운영을 관리·감독하는 부산진구의 복지정책과 관계자는 “최대한 (진료소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고민 중인데, 결국 시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했다. 부산시 복지정책과 관계자는 “내년도 예산안 편성 전이라 정해진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 진료소 기능이 유지될 수 있도록 기존 노숙인종합지원센터 등 다른 기관과의 업무협약을 통해 야간 진료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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