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돋보기] 오래된 것들을 부르는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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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류는 말과 글이 있어 지식을 나누며 계승하고 역사를 기록했다.
역사는 인류 활동의 기록이며, 인류의 역사는 남겨진 유산들로 증명된다.
이렇게 인류의 역사를 증명하는 오래된 것들을 우리는 최근까지 문화재(文化財)라고 불렀다.
고적이건 문화재건 이 단어들이 내포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우리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증명하는 소중한 유산들이라는 점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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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류는 말과 글이 있어 지식을 나누며 계승하고 역사를 기록했다. 역사는 인류 활동의 기록이며, 인류의 역사는 남겨진 유산들로 증명된다. 역사책에 아무리 상세한 기록이 있다 하더라도, 남겨진 유적이나 유물이 없으면 사실로서 증명되기 어렵다.
산속의 주춧돌은 이 곳에 건물이 있었고, 누군가 살았었음을 증명한다. 허물어진 성터는 옛날에 이곳이 전투를 각오하고 지켜야 했던 곳임을,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모여 성을 쌓았음을 증명한다. 커다란 무덤은 이 무덤을 쌓을 만한 힘을 가진 사람이 있었고, 그 주인공 또한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음을 증명한다. 선사시대 질그릇은 태곳적 조상들이 음식을 보관하거나 조리를 했고, 흙을 구워 그릇을 만드는 기술문화가 있었고, 디자인적인 요소들은 지역과 시간에 따라 문화전파가 있었음을 증명한다.
이렇게 인류의 역사를 증명하는 오래된 것들을 우리는 최근까지 문화재(文化財)라고 불렀다. 우리의 역사를 증명하기 때문에 문화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에겐 가슴 뜨거운 그 무엇이었다. 그런데 문화재라는 대명사는 이제 국가유산이 됐다. 국가유산청에서는 지난 5월 17일을 기점으로 문화재를 국가유산으로 부르기로 했다.
국가유산. 입에 잘 붙지도 않고, 아직은 생소하다. 왜 굳이 이렇게 이름 해야 했을까. 역사를 보자. 문화재라는 말은 지금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하고 친숙한 말이지만, 이 말이 우리나라에서 공식화 된 것은 60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1961년 문화재보존위원회 조직,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으로 문화재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문화재라는 말이 있기 전에는 '고적(古蹟)'이라는 말이 오래된 것들을 부르는 대표적 대명사였다. 이 고적은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공식화됐으니, 그 역사는 500년에 가깝다.
이 문화재와 고적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단어의 채용과 확산을 국가가 주도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수입된 단어라는 점이다. 문화재는 일본에서, 고적은 중국에서 수입한 단어였다. 우리보다 먼저 일본에서는 문화재보호법을 만들었고, 중국에서는 지리지에 고적 항목을 넣었었다. 이런 주변국의 사례를 차용해서 우리 사회에 이식한 단어가 고적과 문화재였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문화 선진국이다. 우리의 유산들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이 많아 적지 않은 유산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우리의 문화유산 보존관리 능력도 세계적 수준이 돼 앙코르와트나 이집트의 유명 문화유산을 복원하고 있다. 오래된 유산들의 체계적 관리 못지않게 우리 민족, 우리 국가 스스로 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키는 능력은 한껏 고조돼 있다. 이런 문화국가의 국격에 맞게 과거의 유산-오래된 것들을 부르는 이름도 주체적이어야 함은 당연하다. 일본의 제도를 따라 쓴 문화재라는 단어의 한계는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고, 여러 논의와 고민 끝에 국가유산이라는 단어를 쓰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은 생소하긴 하다.
그런데 1961년의 한국인에게는 문화재가, 1530년의 조선인에게는 고적이라는 단어가 생소했을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당시 국가는 이 새로운 단어를 공식화했고, 여러 해를 거치면서 큰 거부반응 없이 자연스럽게 사회에 녹아들어갔다. 고적이건 문화재건 이 단어들이 내포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우리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증명하는 소중한 유산들이라는 점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가유산 차례다. 오춘영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디지털문화유산연구정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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