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노동연구자가 기후위기 문제를 다루냐고요?
아직도 자주 받는 질문이다. "왜, 노동연구자가 기후위기 문제를 다루나요?" 석탄화력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나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에 따른 노동자들의 일자리 상실 문제와 노동 전환 필요성을 얘기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당장의 일자리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산업 외에도 철강과 석유화학산업, 건물부문의 기후위기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하면 "왜요? 그건 (노동연구자가 아닌) ○○분야, △△분야 연구자들이 할 일 아닌가요?"라는 질문이 이어진다. 얼마 전 산업 전환이 일자리의 녹색 전환으로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품고 서남권 해상풍력발전 실증단지를 방문했을 때에도 "(노동연구자가) 이런 데를 함께 간다고 해서 의아했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이런 질문들은 비단 기후위기 의제를 다루는 노동'연구자'만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 테다. 노동과 기후가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는지는 운동 진영에서도 질문 혹은 논쟁 대상이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기후위기 심각성은 알겠는데, 당장 우리가 뭘 해야 하는가?"를 묻고, 기후정의 진영의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고용(일자리)과 노동조건 외에는 관심이 없는 노동조합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전자가 기후위기가 노동에 미치는 쌍방향 관계성을 더 정확하게 인식하고 하나하나 실천방안을 만들어내야 하는 과제를 제기한다면, 후자는 노동이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아니 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과제를 제기한다. 이 글은 우선 전자의 문제에 집중한다.
적응 - 기후재난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올 여름 들어 지리한 장마기간 동안, 또한 이어진 폭염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에어컨이 가동되는 건물 안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형편이 낫겠지만 에어컨은커녕 아예 지붕이 없는 옥외에서 일을 해야 하는 건설업, 조선업, 배달업, 운송업, 방문업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지옥불'에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고 있다. 건설노조가 2023년 7~8월에 전국 건설현장 31곳에 222개(같은 건설현장에서도 지하층의 벽체와 고층의 기둥과 철근 근처의 온도가 차이가 난다)의 온습도계를 설치하여 조사를 한 결과, 현장의 체감온도는 기상청이 발표한 인근 지역 체감온도보다 평균 6.2도가 높았다. 배달라이더나 택배노동자들과 같은 이동노동자들은 직사광선 외에도 아스팔트 복사열과 차량들이 내뿜는 열기와 매연을 견뎌야 한다. 설비나 장비가 상대적으로 큰 조선소와 석유화학단지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폭염에 따른 탈수, 탈진, 어지러움, 고열, 집중력 저하 등 건강장해만이 문제가 아니다. 최근 필자가 참여한 석유화학산업 노동자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폭염으로 설비가 자체 발열하여 폭발·화재가 발생한다거나 폭우·벼락·돌풍에 따른 감전·추락·낙하 위험에 노출된다거나 태풍으로 인해 시설의 안전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정부는 폭염시 노동자 온열질환 예방 차원에서 '물·그늘·휴식' 3대 원칙을 제시하였는데, 현장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건설노조의 2024년 7월 말 조사(건설노동자 1575명 응답)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15%는 물도 제공받지 못하고 있었다. "폭염특보 시 정기휴식 있다", "작업중지가 있다"는 응답은 각각 18.5%, 19.4%로, 10명 중 2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늘막이 있다"는 응답은 40.9%, "샤워실(세면장)이 없다"는 응답은 45%이었다. 이런 결과를 보면 다수 노동자들은 기후재난에 충분한 보호조치 없이 알아서 버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폭염 시 작업중지권과 정부 폭염지침 법제화, 기후실업급여 도입을 요구하는 것도 노동자들 스스로가 기후재난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완화 –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은 노동현장에서부터
노동자들은 또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온실가스는 기업의 생산 활동에서 다량 배출되고 있다. 한국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의 기준이 되는 2018년 온실가스 배출 현황을 보면, 발전산업이 포함된 전환 부문이 37.1%, 산업부문이 35.8%로 전체의 4분의 3을 차지한다. 기업별로 살펴보면, 상위 15개 사의 배출량 비중이 우리나라 전체의 절반 이상(50.6%)이다. 포스코가 배출량 비중 10.1%로 압도적인 1위다. 발전공기업 5사가 2~6위를 차지하였는데, 이를 다 합하면 전체 배출량의 29.1%다. 다음으로 현대제철(3.1%), 삼성전자(1.5%), 쌍용씨앤이(1.5%), 엘지화학(1.1%), SK에너지(1.0%), S-OIL(0.9%), 현대오일뱅크(0.9%), 롯데케미칼(0.8%), GS칼텍스(0.7%) 순이다. 사정은 2022년 현황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상위를 차지했던 철강, 전자, 정유, 석유화학 기업들의 배출량 합은 2018년 대비 오히려 9.1% 증가하였다. 다만, 발전공기업 5사의 배출량은 23.4% 줄었다.
이들 기업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면 공정을 수소환원제철로 대체해야 하고(철강), 전기가열로 도입과 같은 연료전환과 바이오납사로의 원료전환을 추진해야 한다(석유화학·정유). 발전산업에서는 석탄이 아닌 바람과 태양과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과정은 해당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미 발전산업과 자동차산업에서 보듯이 직접적인 일자리 상실 영향도 있고, 생산품과 생산방식 변화에 따른 노동과정 및 노동조건 영향도 있다.
더 본질적으로는 이 전환을 누가 주도하느냐의 문제가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과 재생에너지 사용량에 관한 국내·국제적 규제에 대응하여 경영방식을 바꾸는 것이므로 이는 기업 경영진이 알아서 결정할 문제라고 보면 곤란하다. 그 결정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그 과정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 '필라델피아 선언'으로 잘 알려진 국제노동기구(ILO) 목적에 관한 선언(1944년 채택)에서는 "모든 인간은 물질적 진보와 정신적 발전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고 하였다. 물질적 진보가 빈곤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면 정신적 발전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참여하여 말할 권리를 말한다. 그래서 이 선언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는 부단한 진보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고 하였다.
노동자의 복합적인 정체성
이렇듯 노동자들은 기후재난의 당사자이자 기후위기를 완화시켜야 하는 주체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노조가 기후의제를 자신의 주된 활동으로 설정하지 못한 채 조합원들의 임금과 고용 문제에 주로 집중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반대로 보면, 노조가 임금과 고용이라는 '먹고 사는' 문제를 도외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의로운 전환 개념을 정초한 토니 마조치의 말처럼 "노동자들은 환경을 보호하지 않으면 내일 죽지만, 일자리를 잃으면 오늘 죽는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죽고 사는' 문제다. 이미 지구 온도는 국제사회가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 약속한 마지노선인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 1.5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 '먹고 사는' 문제와 '죽고 사는' 문제를 어떻게 통합할 수 있을까?
해법은 노동자의 복합적인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있다고 본다. 첫째는 생산자다. 생산의 주체로서 생산과정에서 기후위기 적응과 완화를 위해 참여하고 발언하는 것이다. 단체교섭과 노사협의회, 산업안전보건위 등과 같은 기구에서 노동자 건강·안전 보호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기업의 에너지 사용량과 온실가스 배출량을 확인하고 감축 방안을 노사가 함께 찾고 실천할 수 있다. 둘째는 소비자다.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소비하느냐의 문제다. 탄소배출량이 적은 상품(예를 들어 전기차)을 구매하는 것에서부터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는 소비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 또한 새벽배송을 최소화하는 것 말이다. 이 새벽배송은 소비자로서 노동자의 시간 결핍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장시간노동으로 몸과 마음이 소진된 노동자의 선택은 타인의 야간노동을 통한 구매 필요성 충족으로 이어진다. 결국 자신의 장시간 노동체제를 바꿔내지 않고서 이 악순환을 끊기는 어렵다. 셋째는 공동체의 시민이다. 기후재난은 생산 현장의 노동자들만을 향하진 않는다. 주거와 생활 조건이 취약한 계층일수록 더 큰 피해를 주는데, 2022년 신림동 반지하 참사에서 보듯이 피해자는 노동자 당사자이기도 하고 그 가족과 이웃이기도 하다.
이러한 복합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는 노동자들이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겠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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