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연탄 연기, 선풍기도 끈 채…“악으로 깡으로” 생선 구웠다

고경주 기자 2024. 8. 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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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체감온도가 섭씨 34도까지 치솟던 5일 오후 2시께, 서울 종로구 동대문생선구이골목에서 갈치를 굽고 있는 생선구이집 사장 박재분(69)씨 모습. 김채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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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서울 낮 최고 기온이 33도를 넘긴 5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동대문역 근처 생선가게 골목에서 만난 박재분(69)씨의 얼굴이 매케한 연기 사이로 붉게 번들거렸다. 연탄 연기가 날릴까 선풍기조차 틀 수 없다고 했다. ‘육즙’을 위해 연탄불로 생선을 굽는 일 또한 피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버텨내야 한다”는 결기를 되새기는 것 뿐이다. “내 70평생 이렇게 더운 건 처음이에요. 이런 날 초가집(장사 안되는 집)은 장사하고, 기왓집(장사 잘 되는 집)은 쉬는 거지 뭐. 나는 돈 벌어야지.” 그의 말대로 이 더위에 생선구이를 찾는 손님은 거의 없었다. 다만 박씨는 “일을 놓을 수는 없다”고 했다. “악으로 깡으로” 박씨는 폭염을 나기 위한 주문을 다양하게 외우며 폭염을 그저, 견뎠다.

전 국토에 폭염경보와 폭염주의보가 내린 이날, 습도와 뙤약볕이 한데 뭉친 ‘바깥’을 피할 수 없는 이들이 많았다. 생계가 팍팍할수록, 고령일수록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정부의 안내를 따를 수 없었다. 시장 상인들은 폭염 탓에 줄어든 손님과 값 비싸진 상품을 함게 걱정했다. 이날 낮에 찾은 서울 광장시장은 한산했다. 이 시장에서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박아무개(78)씨는 “어제 오늘 하루종일 있는데도 사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다들 마트를 가지, 냉방도 안 되는 여기까지 와서 물건을 들고 가기는 힘들 거다. 시장은 다 죽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5일 오후2시께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손님들이 없어 골목이 한산하다. 조영은 교육연수생

시장 상인들의 걱정은 줄어든 손님에 더해 폭우와 폭염이 갈마드는 가혹한 날씨에 값 비싸진 상품들로 향했다. 중부시장에서 과일과게를 운영하는 배만복(72)씨는 “수박은 중복때 까지만 해도 10㎏에 2만5천원 정도 하던 것을 지금은 3만5천원에 가져와야 한다. 기껏 사와도 햇볕 때문에 속이 묵사발된 것이 많다”며 얼려 놓은 생수를 들이켰다. 광장시장에서 채소 가게를 운영하는 김아무개(56)씨는 “채소가 짓무르고, 상하고 난리도 아니라 숨 죽지 말라고 (진열대 아래에) 얼음을 넣어놨는데, 날이 하도 더우니 통 소용이 없다”고 했다.

무더운 공기에 갑작스런 소나기까지 쏟아지며 배달 노동자들도 곤란을 겪었다. 김영표(46)씨는 잠시 소나기를 피해 서울 서초구 휴서울이동노동자 쉼터를 찾았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이어질 폭염 속 배달 노동 와중에 잠깐 동안의 휴식시간이라고 했다. 잠시 뒤 빗줄기가 약해지자 구슬땀을 닦고서는 곧바로 오토바이를 타러 나섰다. 그는 “땡볕 속에 오토바이를 타고 신호를 기다릴 때도 덥지만, 음식을 가지고 손님에게 가져다 드리는 도보 이동이 많다”며 “뙤약볕은 팔토시를 해서 견디려 하는데 습도가 걱정”이라고 했다.

노인들은 집 안의 더위와 고독보다 “바깥이 한결 낫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정자에는 20여명의 노인들이 돌과 나무에 몸을 바짝 붙인 채 더위를 피하려 했다. 임보람(77)씨는 “노인이 집에만 있으면 덥기만 하고 궁상맞다. 바람도 쐬고 사람들 만나 이야기를 하면 좀 낫다”고 말했다. 근처 서울 돈의동 쪽방촌에서 탑골공원을 찾은 ㄱ(64)씨는 “예전에는 쪽방촌 집 벽이 불덩이라 들어갈 수가 없어서 우리끼리 ‘(쪽방촌에선) 돈 받고 살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했다”며 “최근엔 서울시 지원을 받아서 에어컨이 일부 설치됐는데 집주인이 일부만 켜줘서 그냥 밖에 나와 있는 게 낫다”고 말했다.

지속되는 무더위로 온열질환자와 사망자도 늘고 있다. 질병관리청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감시체계)를 보면, 지난 5월20일부터 8월4일까지 온열질환으로 14명 숨졌고, 4일에만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가 2명이었다. 온열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이는 169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발생 인원(1646명)을 넘겼다. 이 가운데 열탈진 환자가 53.8%(910명), 열사병 환자가 22.7%(384명)였다. 송경준 서울시 보라매병원 교수(서울대 의대 응급의학과)는 “경증인 열경련·열실신 등으로 신체가 신호를 보내고, 중증인 열탈진으로 발전했는데도 무더위 환경에 머무른다면 열사병에 걸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질환이 발전할 수 있어 비교적 가벼운 증상이 있을 때 즉시 시원한 곳으로 이동해 수분 섭취 등 일반적인 온열질환 예방수칙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취재도움: 조영은, 조승우 교육연수생)

고경주 기자 goh@hani.co.kr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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