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지상주차? 저층 주민 "집값 떨어져"
신축 5% 이상, 구축은 2%로
친환경 주차 의무화해놓고
소방 등 구체적 규정은 없어
지상주차장 설치비용 커질듯
서울 성북구 한 아파트는 최근 입주자대표회의를 열었다. 주민들로부터 '전기차 지상 주차 의무화' 요청이 늘면서 전기차 주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일부 주민이 "전기차 소유자가 무슨 잘못이냐. 똑같이 관리비를 내고 왜 지하에 못 대느냐"고 반발해 결국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인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가 폭발한 사고 이후 전국 아파트 단지에서 전기차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천 아파트에서는 전기차 화재로 단지 내 주차된 차량 140여 대가 손상을 입고 며칠째 전기와 수도 공급이 끊기는 등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이에 전기차 충전소가 설치된 전국 아파트 단지 입주민들은 "우리도 안전하지 않다"며 전기차 충전·주차시설에 대한 안전 조치를 강화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전기차 화재는 피해와 파괴력이 커서 화재 예방을 위한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5일 아파트와 부동산 관련 커뮤니티 등에서는 전기차 지하 주차를 반대하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경기도 수원의 한 입주민은 "전기차는 한번 사고가 나면 피해가 어마어마하다"며 "전기차는 더 이상 등록을 못 하게 하고, 기존 전기차는 지상에 대야 한다"고 했다. 세종의 한 입주민은 "전기차 차주에게는 관리비를 더 받고 소방시설을 강하게 점검해야 한다. 지하 주차장에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아파트 입주자회의는 '해결 방안'을 찾기가 답답한 상황이다. 전기차 충전시설을 지상으로 옮기려 하면 저층에 사는 사람들은 집값 내려간다면서 반대한다. 또 전기차 충전시설을 지상으로 옮기면 그 비용은 누가 낼 것인지도 뾰족한 해법이 없다.
건설업계에서는 단지 내 전기차 충전소 설치는 의무화해 놓고 관련 소방시설에 대한 규제는 없어 사실상 안전에 '구멍'이 뚫린 상태라고 지적한다. 아파트에서 전기차 주차·충전시설 설치는 의무 사항이다.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100가구 이상 신축 공동주택은 주차 대수 5% 이상, 2022년 1월 28일 이전 건축허가를 받은 아파트는 2% 이상 범위로 전기차를 포함한 친환경 자동차 전용 주차구역을 설치해야 한다.
문제는 이때 전기차 시설을 어디에 설치하라고 딱히 규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다 보니 전기차 시설이 대부분 지하에 설치돼 있다. 미관상 이유도 있고, 요즘 신축 단지들은 '차 없는 단지'를 표방해 지하에 통으로 주차장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기차 시설은 지하에 설치할 때 가장 위험하다. 한국화재보험협회 등에 따르면 전기차 충전시설을 설치하기에 합당한 곳으로는 '옥외→별도 충전 전용 건물→주차 전용 건물 옥상→건물 내(지상)→건물 내(지하)' 순으로, 지하 설치를 가장 위험하다고 본다. 지하는 소방차가 진입할 수 없고 이동식 수조도 펼칠 수 없다. 실제로 이번 인천 아파트 전기차 화재도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해 피해가 더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가 의무화된 만큼 소방 규제가 강화돼야 할 필요성이 공감을 얻고 있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주차장에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할 때 화재에 대비해 소방시설도 반드시 설치하도록 하는 주차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전기차 등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충전시설을 설치할 경우 소방 용수시설, 소화수조 등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소방시설을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상북도는 전기차 충전·주차시설을 지상으로 유도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한국화재보험협회는 '전기차 충전설비 안전기준'에서 "지하에 전기차 시설을 설치할 때 전기차 배터리가 충분히 잠길 수 있는 높이의 물막이판(방화구획 벽체 활용 가능)을 화재감지기 등과 연동해 자동으로 작동되도록 해 물을 채울 수 있는 전기차 전용 소화수조도 함께 설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아직은 권고 사항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화재가 위험한 것은 알지만, 권고 사항을 따르기엔 엄청난 비용이 든다. 만약 전기차 충전시설에 대한 소방시설 설치가 의무화되면 건축비는 또 올라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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