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경쟁에 현대차 과감한 지원… 양궁이 따낸 32개의 金 비결

김지환 기자 2024. 8. 5. 17:4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대차, 코치·선수 의견 받아 각종 첨단 장비 개발
“기업가 논리로 불가능한 지원… 사회공헌의 표본”

2024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 대표팀은 전 부문(남·여 개인·단체, 혼성)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새 역사를 썼다. 임시현, 김우진은 대회 3관왕에 올랐다. 한국 양궁은 1984년 LA올림픽 금메달을 시작으로, 올림픽에서만 32개의 금메달을 땄다. 은·동메달까지 합하면 11번의 올림픽에서 총 50개의 메달을 거두며 세계 최정상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국 양궁이 ‘넘을 수 없는 벽’이 된 데에는 현대차그룹의 기술·장비 지원과 대한양궁협회의 투명한 운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기 종목에 비해 마케팅 효과가 크지 않음에도 전사적인 지원과 대한양궁협회가 마련한 ‘공정한 경쟁의 장’이 맞물리면서 한국 양궁이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경지를 표현한 말)’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학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양궁 지원을 스포츠를 통한 사회공헌의 표본이라고 평가한다.

대한양궁협회장인 정의선(가운데) 현대차그룹 회장이 2024 파리올림픽 대한민국 양궁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대한양궁협회 제공

◇ 회장은 정신적 지주… 회사는 첨단 기술 지원

현대차그룹의 한국 양궁 대표팀 지원은 정몽구 명예회장이 한번 시작한 것은 끝을 보는 성격으로 화끈하게 지원했다면, 2005년 대한양궁협회장을 이어받아 19년째 협회를 이끄는 정의선 회장은 선수들과 격의 없이 지내며 조언을 하는 등 정신적으로도 교감했다.

정 회장은 선수들과도 직접 연락하지만, 대표팀 선발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양궁협회에는 지연·학연 등 파벌에 따른 불합리한 관행이 없어 선수들의 사기 진작에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많다.

양궁협회는 지난 도쿄올림픽이 코로나19로 1년 늦춰지자 이미 선발된 국가대표가 있었음에도 선발전을 다시 진행했다. ‘대회가 열리는 해에 가장 성적이 좋은 선수를 선발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국가대표 코치도 공채로 뽑다. 양궁은 선수와 협회 간 불화가 없는 종목으로 유명하다.

이번 올림픽에서 3관왕에 오른 김우진은 ‘한국이 양궁을 잘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란 말에 “한국 양궁은 체계가 확실하게 잡혀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실업까지 모든 선수가 운동하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공정한 대한양궁협회가 있기에 모든 선수가 부정 없이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한다. 양궁협회 회장이 양궁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어떻게 하면 세계 정상을 지킬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만들어간다. 그래서 지속해서 강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고 했다.

정 회장은 이미 2028 LA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장영술 양궁협회 부회장은 “(정의선) 회장님께서 LA 올림픽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지시하신 게 있다. (한국으로) 가서 바로 준비하려 한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이 양궁 대표팀에 제공한 고정밀 슈팅 로봇. /대한양궁협회 제공

정 회장은 협회 운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 회장의 협회장 취임 일성도 ‘공정성’과 ‘투명성’이었다. 회장사인 현대차그룹과 양궁협회 사이에 인적 교류도 없다. 현대차그룹이 후원하고 양궁협회는 그 지원을 바탕으로 양궁 발전의 토대를 쌓았다. 이는 정 명예회장때부터 이어온 기조다. 이를 통해 양궁협회는 유소년 대표부터 국가대표까지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을 수십년 간 발전시켜왔고 정몽구배 한국양궁대회와 일반인 대회 등을 통해 양궁 저변 확대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전사적으로 대한양궁협회를 돕고 있다. 도쿄올림픽이 끝난 직후부터 선수들과 코치진의 의견을 수렴해 훈련 장비를 보완했다. 대표적인 게 비전 기반 심박수 측정 장치다. 몸에 센서를 부착하지 않고도 얼굴의 미세한 혈류 변화를 분석해 심박수를 보여준다. 현대차가 운전자의 졸음 여부 등 안전을 위해 연구·개발하던 기술을 양궁에 접목한 것이다. 선수들의 자세를 분석하는 다중카메라 장비, 개인 훈련용 슈팅로봇 등도 제작해 지원했다.

현대차그룹이 대한양궁협회에 제공한 다중카메라로, 선수들의 자세를 분석하는 데 쓰였다. /대한양궁협회 제공

◇ “진정성 있는 후원으로 마케팅 효과 극대화”

현대차그룹의 양궁 지원을 두고 업계에서는 기업의 사회공헌이 선수들에게도 긍정적인 효과를 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 세계에서 자동차를 파는 현대차그룹에 양궁 지원은 마케팅 효과가 크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양궁은 서양 등 전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스포츠가 아니다”며 “인풋(input) 대비 아웃풋(output)이 적어 기업가의 논리로 40년 지원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진정성 있는 후원이 오히려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했다는 분석이 있다. 기업들이 올림픽과 월드컵 등 국제 대회를 후원하는 이유는 광고 효과 때문이다. 단기간에 브랜드를 노출해 상품 판매량 증가, 호감도 상승 등을 노린다. 양궁은 올림픽을 제외하면 전 세계인의 관심이 쏠리는 대회가 거의 없다. 그만큼 광고 효과가 낮을 수밖에 없는데, 한국 양궁이 이번 대회에서 대활약하면서 영국 공영방송 BBC는 최근 ‘한국 양궁의 성공을 이끈 첨단 로봇’이라는 방송을 통해 현대차그룹의 양궁 지원을 자세히 소개했다.

류성옥 고려대 국제스포츠학부 교수는 “현대차그룹은 세계적인 스포츠 대회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여 광고하는 것보다 적은 금액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했다”며 “전 세계적으로 올림픽의 인기가 예전만 못한 상황을 고려하면 사회공헌 활동으로 큰 효과를 본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40년간 양궁에 500억원 이상을 쓴 것으로 알려졌는데, 올림픽 공식 후원 업체인 올림픽 파트너(TOP·The Olympic Partner)들은 한 대회에서만 1000억원 이상을 쓴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