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 사상 첫 5종목 석권…비결은 스포츠 심리학 기반 '심리훈련'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 5개를 독식한 한국 양궁 대표팀의 활약에 전세계 스포츠계가 놀라고 있다. 올림픽 공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정상권을 놓치지 않았던 한국 국가대표팀의 남다른 훈련 비결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는 모습이다.
일찍이 '해병대 입소 훈련', '공동묘지 왕복 훈련' 등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던 양궁 국가대표팀의 혹독한 훈련은 스포츠 심리학에 기반한 과학적 단련으로 평가된다.
4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4 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전 결승에서 한국 남자 국가대표 김우진 선수가 5번째 금메달을 수확했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한국 양궁 국가대표팀이 올림픽 금메달을 독식한 건 금메달 4개가 걸려있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이후 8년 만이자 사상 두 번째다. 2021년 도쿄 대회에 혼성전이 도입되면서 양궁 금메달이 5개로 늘어났는데 한국은 해당 대회에서 남자 개인전 금메달 한 개를 놓친 바 있다.
● 심리적 요인 80% 작용하는 양궁…심리 훈련 효과 '톡톡'
전문가들에 따르면 양궁은 다른 종목보다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스포츠다. 앞서 김영숙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선임연구위원은 "다른 종목에서 스포츠 심리학은 일반적으로 20~30% 정도 작용하지만 양궁에선 80% 가까이 작용한다"고 말했다.
정적인 자세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양궁은 다양한 환경적 변수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2022년 베이징대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국제스포츠 및 운동심리학회지'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분노, 불안, 소진, 안도, 행복, 자부심 등의 심리적 요소가 양궁 선수의 경기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경기 중 자신의 심리 상태를 제대로 인지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곧 성적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국제 양궁계에선 이러한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심리 훈련'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심리기술훈련(PST)이 있다. 양궁 고득점 달성에서 가장 중요한 심리적 능력인 자신감과 긍정적인 태도를 조절할 수 있게 하는 훈련으로 주로 상담을 통해 이뤄진다.
김의재 단국대 스포츠과학대 교수 연구팀이 2021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심리기술훈련을 받은 양궁 선수는 이 훈련을 받지 않은 선수와 비교했을 때 경기력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가 18%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하루에 60분 미만으로 12주 이상 훈련을 실시했을 때 효과가 가장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 양궁 국가대표팀은 2015년부터 체계적인 심리기술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목표설정, 루틴개발, 심상훈련, 이완훈련, 주의집중 5단계로 이뤄진 훈련 프로그램을 받은 선수들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경기 중에도 안정적인 심박수를 유지할 수 있다. 3일 경기에서 마지막 한발을 쏘는 중 김우진의 분당 심박수는 100을 넘지 않았다.
심리기술훈련은 각국 국가대표팀마다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 양궁 국가대표팀은 독서 동아리를 구성해 선수끼리 책 구절을 낭독하는 시간을 갖는다. 긍정적인 자기암시 효과가 있는 책의 구절을 소리내어 읽으면서 자신감을 고양하는 '루틴'을 개발하는 방식이다.
스포츠 심리학 전문가들은 심리기술훈련은 선수들로 하여금 두 가지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만든다고 말한다. 선수들이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해 우수한 운동 성과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고, 계속해서 삶의 발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 장기적인 발전을 달성하게 하는 것이다.
● 국대 선수만큼 정확한 슈팅 로봇과 실전 훈련…첨단기술장비 활약
한국 양궁 국가대표팀의 훈련을 도운 첨단 기술들도 있다. 양궁협회에 따르면 한국 양궁 국가대표 6명은 국내 대기업이 개발한 첨단 슈팅 로봇과 카메라 장비를 활용해 훈련을 실시했다.
실시간 제어 소프트웨어와 풍향 및 온습도 센서가 탑재된 슈팅 로봇은 외부 환경 변수를 측정한 후 조준점을 보정해 평균 9.65점 이상의 높은 명중률을 보인다. 뛰어난 실력 때문에 훈련 상대가 제한적인 국가대표팀의 '위협적인 상대 선수'로 역할할 수 있는 것이다. 바람에 따른 영향 외에는 오차 요소가 거의 없는 슈팅 로봇과의 훈련은 선수들의 실전 감각 유지에 큰 도움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야외 훈련을 위해선 선수들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다중카메라가 도입됐다. 이 카메라는 머리 위와 정면의 2개 각도에서 선수를 촬영한 영상을 모니터에 분할 출력해 선수가 자신의 슈팅 자세를 여러 각도로 모니터링할 수 있게 한다. 또 실제 선수의 동작과 피드백 영상 간 시차를 0∼9초로 설정할 수 있으며 '천천히 보기 기능'을 지원해 정밀 분석도 가능하다.
훈련장 밖에선 첨단 기술을 활용한 장비들이 도입됐다. 슈팅 로봇과 다중카메라를 개발한 현대차그룹은 폭염에 대비해 활 성능을 검증할 수 있는 장비를 새롭게 개발했다.
활 성능 검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줄을 당길 때 생기는 복원력인 장력인데, 이를 측정하는 기존 장비는 크기가 너무 크거나 작을 경우 성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번에 국가대표들이 사용한 활 검증 장비는 3D 프린터로 부품을 제작해 무게를 줄여 휴대성을 높였다.
이 외에 복사에너지 방출을 극대화하는 원단으로 만들어진 경기용 모자는 뜨거운 햇살 아래 경기를 펼쳐야 하는 선수들의 더위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 복사냉각 모자는 표면 온도가 일반 모자보다 최대 5도가량 낮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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