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금야금 영화팬 쓸어모았다 … 두 영화의 조용한 흥행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8. 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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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브 인터레스트
아우슈비츠 옆 독일군 공관
지옥 외면한 평화로운 일상이
나치 악행 소름끼치게 드러내
퍼펙트 데이즈
일본 시부야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하루 여정 관찰기
'삶의 자세' 관한 따뜻한 시선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아우슈비츠 담장 옆 공관을 다룬다. 누군가에겐 지옥과도 같았던 아우슈비츠가 가족에겐 지상 최대의 낙원이 되는 대비를 이룬다. 담장 뒤로 보이는 흰 연기는 유대인을 실어나르는 기차의 연기다. TCO·더콘텐츠온

'공간'은 영화의 절대적 요소다. 어디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가에 따라 서사의 갈등 양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극장가에선 장소성이 짙은 예술영화 두 편이 입소문을 타고 조용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관객 20만명 돌파를 앞둔 '존 오브 인터레스트', 10만명 돌파가 예상되는 '퍼펙트 데이즈'가 주인공이다. 두 영화는 2023년 제76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그랑프리, 2등상)과 남우주연상을 각각 수상한 작품인데, 칸에서 본상을 받은 작품이라도 국내 관객 1만명을 넘기기 쉽지 않은 영화계에서 준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로, 개봉 두 달이 지난 현재까지도 각종 소셜미디어에서 꼭 봐야 하는 영화로 주목을 받고 있다.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사울의 아들' 등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다룬 홀로코스트 영화는 많지만, 이 작품은 차별된다. '히틀러의 나치가 아우슈비츠에서 도대체 무슨 악행을 저질렀는가'란 뻔한 질문 대신에, 아우슈비츠 정문 옆 꽃이 만발한 공관사택을 다루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영화는 실화다.

주인공은 루돌프 회스와 그의 아내 헤트비히 회스. 그들이 4년째 거주 중인 아우슈비츠 옆 공관은 부부에겐 에덴동산이다. 아내 회스가 공들여 만든 정원엔 꽃이 정성스럽게 심어져 있다. 정원 중앙엔 아이들이 뛰어노는 작은 수영장, 그리고 나무로 만든 미끄럼틀까지 있다. 남편 회스는 이곳에서 군주이고, 아내는 아우슈비츠의 여왕이다. 어느 날, 회스에게 전출 명령이 내려지며 균열이 온다. '천국과도 같은' 아우슈비츠와 이별해야 하는 것이다.

아내 회스는 "가족은 두고 당신 혼자 가라"며 남편 회스에게 화를 낸다.

유대인에겐 떠나고 싶은 아우슈비츠가 독일군 장교 부부에겐 결코 떠나고 싶지 않은 낙원이라는 대비가 이 영화를 꼭 봐야 하는 이유가 된다.

회스의 정원의 담장 너머에선 두 종류의 연기가 피어오른다. 하나는 유대인을 실어나르는 기차에서, 또 하나는 유대인을 산 채로 불태우는 소각시설에서 배출되는 연기다. 회스 부부와 그의 아이들은, 저 두 개의 연기와 섭씨 1000도에서 산 채로 태워지는 사람들의 아우성, 그리고 가끔 들리는 비명과 총성을 들으며 비치타올을 깐 잔디밭에서 일광욕과 수영을 하며 유유히 논다. 연기와 비명만이, 이곳이 평화의 공간이 아닌 절대악의 공간임을 일러주지만 누구도 내색하지 않는다.

재현(再現)의 시선에서 볼 때 앞선 홀로코스트 영화를 압도해버리는 문제작임이 분명하다.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말해준다.

눈여겨봐야 할 배우는 아내 회스를 연기한 산드라 휠러다. 독일 배우 휠러는 작년 칸영화제에서 '존 오브 인터레스트'와 '추락의 해부'로 칸 트로피를 2개나 손에 쥐는 인생 최고의 영예를 얻았다. '추락의 해부'는 작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특히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관객은 영화를 연출한 조너선 글레이저의 전작 '언더 더 스킨'을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 시부야 공중화장실 청소부인 히라야마의 삶을 다룬다. 중요한 건 자신이 위치한 장소가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과 시선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2023년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작이다. 티캐스트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주목해야 할 공간은 도쿄 시부야의 공중화장실이다. 영화 주인공은 청소부 히라야마. 그는 매일 새벽 일찍 기상해 작은 차를 몰고 그날의 청소 장소로 떠난다.

히라먀마의 일상은 일정하고 삶의 무게는 하루씩 균등하다. 이불을 개고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고 올드팝을 들으며 출근해 열쇠로 화장실 문을 연다. 공원의 나무 아래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하고, 필름 카메라로 나뭇잎과 햇살을 찍으며, 퇴근 후엔 역사(驛舍)의 단골 식당에서 맥주를 마신 뒤 집으로 돌아가 소설을 읽고 잠에 드는 삶이다. 가난해 보이지만 그의 삶은 경이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미래를 살지 않고 현재를 살아내기 때문이다.

자족하며 살던 어느 날, 그의 일상을 깨는 사건이 발생한다. 조카 니코가 가출해 히라야마를 찾아온 것이다. 니코는 삼촌의 일터인 공중화장실을 따라다니면서 그의 삶을 관찰한다. 분비물과 토사물을 닦지만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히라야마의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부유한 집안 출신임에도 그가 왜 청소부 일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불확실한데, 이 모호성 때문에 영화는 더 빛이 난다. 중요한 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장소가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과 세상을 보는 시선임을 영화는 주장한다.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야생 종려나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11' 등이 인용된다. 헌책방에서 구매한 소설을 읽으며 한 명의 인간으로서 현실의 무게를 감각하는 히라야마의 자세는 영화 '패터슨'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이 영화는 마지막 쿠키 영상(영화 상영 후 짧게 추가된 영상)까지 봐야 온전한 이해가 가능한데 마지막 영상엔 고모레비(こもれび)란 단어가 나온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뜻하는 일본어로 '바로 지금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을 뜻한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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