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의 국가' 부추기는 노란봉투법…韓산업 공급망 붕괴 우려
경제단체 '투쟁 만능주의' 우려…거부권 요청
"전면 재검토해야…극단적 불법행위 만연할 것"
공포 시 韓 '노조 리스크'↑…"해외 사례 전무"
[이데일리 조민정 기자] “노란봉투법이 시행된다면 산업 공급망 전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거대 야권 주도로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또다시 재계가 떨고 있다.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 등 독소조항이 산재한 탓에 경제계는 “노조 불법행위에 대한 면죄부”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1대 국회와 같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지만, 만에 하나 통과될 경우 ‘파업 만능주의’가 만연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5일 재계와 국회에 따르면 노란봉투법은 이날 오후 본회의에서 찬성 177인, 반대 2인으로 통과됐다.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나서며 강력 반발했던 여당이 표결 시작 직후 집단 퇴정하며 야당 주도로 의결됐다.
노란봉투법은 노조법 2·3조 개정안으로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자는 게 골자다. 사용자의 범위를 원청업체까지 확대해 원청에 하청 노동조합과 단체교섭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이밖에 △근로자가 아닌 자의 노조 가입 허용 △노동쟁의 대상 ‘근로조건’ 관한 사항으로 확대 △노조·근로자 배상 책임 면제 확대 △손해배상책임 인정 시 개별 귀책사유 및 기여도 판단 등이 있다.
노란봉투법 표결 직후 재계는 즉각 반발했다. 사실상 노조의 파업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투쟁 만능주의를 흐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특히 원청이 하청업체 등 간접고용 근로자와도 끊임없이 교섭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어 경영활동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여기에 교섭창구 단일화를 거쳐야 하는 현행법과도 충돌하며 원청은 연중 내내 1000개 넘는 하청 업체 노조와 교섭만 진행해야 할 수도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는 “산업현장의 혼란을 가중시켜 결국 기업의 의욕을 막게 될 것”이라며 “사회 갈등을 유발하고 한국 경제의 저성장 극복을 저해하는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무역협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사용자 범위 확대, 노조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책임 면제 등 법률상의 하자와 불균형이 명백하다”며 “사용자의 불법을 명분으로 내세운 극단적인 불법행위가 만연해질 것”이라고 대통령의 재의요구권을 요청했다.
정부도 노란봉투법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오후 긴급 브리핑을 열고 “산업현장 갈등과 불법 파업을 조장하는 법안”이라며 “이를 외면하는 개정안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개정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분투하고 있는 산업현장과 노사관계 당사자,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고려해 정부가 해야 할 책무를 다하겠다”고 했다.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파업 리스크’가 커지면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산업계의 입지가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도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한국의 저조한 지원 등에 등 돌리며 외국에 생산공장 등을 유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노조 문제까지 더해지면 더욱 한국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준선 교수는 “자동차 산업의 경우 하청업체만 1만개가 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 구조가 있어야 소규모 기업들도 살아날 방도가 있고 국민들을 위한 일자리도 창출될 수 있다”며 “노란봉투법은 현재 한국의 하청 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한 법”이라고 지적했다.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도 노란봉투법과 같은 사례는 전무하다. 미국 등 해외 국가들은 대개 고용 계약이 없는 문화이기 때문에 하청 노동자를 단체 교섭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최 교수는 “일본이 한국과 비슷한 문제가 있는데 결국 일본 역시 노동위원회나 법원 판결에서 대체로 (사용자 범위를 원청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통상 국회를 통과한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는 데 1주일가량 걸린다. 대통령은 정부 이송일로부터 15일 이내에 공포하거나 재의요구권을 행사해야 한다. 앞서 노란봉투법은 21대 국회에서도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지만,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이후 노란봉투법은 재표결 절차를 거쳐 폐기됐다. 민주당은 22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일부 규정을 더욱 강화한 내용으로 재발의했다.
조민정 (jju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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