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C] 당신도 나락에 갈 수 있다

인현우 2024. 8. 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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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나락'이란 표현의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인터넷에서 유행한 지는 오래됐다.

갈수록 잔혹해지는 온라인 세상에선 그 누구도 '나락'을 피하기 어렵다.

온라인 세상에선 모두가 창작자이기에, 누구에게나 '나락'은 찾아올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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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해 9월 30일 방송된 유튜브 '피식대학'의 나락퀴즈쇼. 고려대를 졸업한 출연자에게 "고려대 출신 중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묻고 있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 캡처

'나락'이란 표현의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인터넷에서 유행한 지는 오래됐다. 최근에는 유튜브에서 활동 중인 코미디 크루 '피식대학'이 콘텐츠 '나락퀴즈쇼'를 만들었다. '당신도 나락에 갈 수 있다'는 제목이 달린 영상 시리즈는 유명인을 앞에 세워놓고 어떤 답을 하더라도 곤란한 질문을 던진 후 어쩔 줄 모르는 유명인의 모습을 웃음 코드로 사용했다.

이 시리즈는 유명인이 약점을 노출하면 이를 집요하게 공격하는 '캔슬 컬처'에 대한 패러디임을 명시한다. 하지만 어떤 질문들은 '선을 넘는' 것처럼 보였기에 모두가 온전히 즐기긴 어려웠던 콘텐츠다. 피식대학이 다른 콘텐츠에서 경북 영양군을 비하했다는 지적 속에 '나락'을 겪고 있는 상황은 역설적이다. 갈수록 잔혹해지는 온라인 세상에선 그 누구도 '나락'을 피하기 어렵다.

2005년 시작된 유튜브의 '탄생 설화'를 보면, '나락'의 위험은 유튜브의 본질 그 자체처럼 보인다. 2004년 전 세계 시청자의 이목이 쏠린 '슈퍼볼 하프타임 쇼' 공연에서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재닛 잭슨의 신체를 노출시켰고, 잭슨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으며 음악 커리어에 큰 타격을 입었다. 실리콘밸리의 페이팔에서 일하던 '테크브로(첨단기술 분야에서 일하는 남성)' 3인이 인터넷에서 이 사건 영상의 "무삭제 원본"을 찾기 힘들다며 한탄하다가, 직접 그런 영상이 올라오는 사이트를 만들자며 내놓은 결과물이 유튜브다.

유튜버 쯔양 협박 의혹을 받고 있는 유튜버 구제역(이준희)이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자진 출석하기 전 녹취록 공개 등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20년이 지난 지금 대중문화에서 유튜브를 빼놓고 '대중적'인 것에 대해 말할 수 없다. 하프타임 쇼 사건의 피해자였던 잭슨을 포함해 무수한 팝스타들이 유튜브에 뮤직비디오를 올리고 있다. 싸이부터 BTS와 블랙핑크까지 K팝의 세계적 성공을 이끈 것도 유튜브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삶의 상당한 시간과 모바일 데이터를 저당잡고 있는 이 웹사이트 탄생의 계기가 관리되지 않은 '나락 보내기' 욕망임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욕망은 어디로 가지 않았다. 유튜브뿐 아니라 SNS와 쇼트클립, 포털의 댓글과 채팅 앱, '커뮤니티'라 일컫는 인터넷 등 온라인 세계 도처에서 덩치를 불리고 있다.

현재 여론의 집중 포화를 받고 있는 '구제역' 등의 '사이버 레커'는 '나락 보내기'의 극단적으로 나쁜 예다. 콘텐츠로 특정인을 집중 공격하는 것을 넘어서 그렇게 쌓은 자신의 영향력을 무기로 유명인을 직접 협박해 갈취까지 했다. '범죄 수익'이 발생했기에 이들은 '엄벌'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사이버 레커의 콘텐츠 자체가 만든 피해에 대해선 뾰족한 수가 없다. 외려 '유명인'이 된 사이버 레커의 몰락이 또 다른 사이버 레커의 콘텐츠가 돼 수익으로 환산되고 있다. 정의의 실현이라기보다 샤덴프로이데(남이 망하는 걸 보는 기쁨)에 가깝다. 애초에 사이버 레커들에게 유명세를 부여한 것도 바로 그 누군가가 나락에 가기를 바라던 이들의 욕망이었다.

누구나 콘텐츠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웹 2.0' 시대는 모든 이들에게 힘을 부여했지만 그만큼 혹독한 투쟁의 공간을 만들었다. 법을 만들고 규제를 한들,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사이버 레커는 계속 등장할 것이다. 순진한 소리겠지만, 결국 해법은 욕망을 자제하는 것이다. 온라인 세상에선 모두가 창작자이기에, 누구에게나 '나락'은 찾아올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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