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닭도 폐사할라…역대급 폭염에 농가들 ‘한숨’

김규현 기자 2024. 8. 5. 17: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5일 대구시 달성군 현풍면 손후진(46)씨가 운영하는 산란계 농장에 대형 환기 팬을 틀고 있다. 손후진씨 제공

“닭들은 땀샘이 없어요. 방법이 없습니다. 이 여름이 빨리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구시 달성군 현풍면에서 17년째 산란계 농장을 운영하는 손후진(46)씨는 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구에서는 보름째 폭염 경보가 지속하면서 낮 최고 기온 36도를 기록하고 있는데, 손씨가 운영하는 농장 내부 온도 역시 35∼36도까지 올라갔다. 손씨는 농장 문을 활짝 열고 대형 환기 팬을 가동했다. 조금이라도 시원한 공기를 들여보내려고 농장 입구에는 스프링클러로 물도 뿌리고 있다. 하지만 온도를 낮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손씨는 더위를 이기지 못해 폐사하는 닭이 지난해보다 4배 가량 늘었다고 한다.

손씨는 병아리 25만 마리, 성계 75만 마리 등 100만 마리 규모를 키우고 있다. 그는 “우리 농장은 시설이 대규모라 환기를 시킬 수 있어 그나마 피해가 이 정도이지만, 재래식 농장은 피해가 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동에 10마리까지는 자연 폐사로 보는데, 최근 하루에 한 동에서 200마리까지 죽습니다. 닭은 온도와 습도에 예민한데, 폭염에 비까지 자주 오니 더 힘들죠. 더우니까 사료도 잘 먹지 않고, 자연스럽게 산란율도 10% 이상 떨어졌습니다. 여름이면 계란 가격이 폭락해야 하는데,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게 이 때문이에요.”

최근 폭염으로 인한 가축 피해가 커지고 있다. 특히 가금류 농가 피해가 크다. 밀폐된 농장에서 사육하는 데다가, 닭은 호흡과 배설로 체온을 배출하기 때문에 장기간 폭염에 취약하다. 4일 기준 행정안전부 폭염 피해 집계를 보면, 폭염으로 폐사한 가축 25만7483마리 가운데, 91.6%(23만5880마리)가 가금류다.

5일 대구시 달성군 현풍면 손후진(46)씨가 운영하는 산란계 농장에 시원한 공기를 불어 넣기 위해 농장 입구에 스프링클러를 가동하고 있다. 손후진씨 제공

농가들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농장 내부 온도를 낮추려 안간힘이다. 농장 내부에 차가운 물을 흘려보내 온도를 낮추는 ‘쿨링 시스템’이나 ‘안개 분사 시스템’ 등을 설치하기도 하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전남 나주에서 42년째 닭 농장을 운영하는 김양길(70)씨는 “25만 마리를 사육하고 있는데 평소 하루 30마리가 죽던 상황에서 최근에는 하루 2000마리씩 폐사하고 있다. 이렇게 더위가 심했던 적은 없었다. 안개 분사로 농장 온도를 낮춰도 효과가 별로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나주시 반남면 3300㎡ 규모 농장에서 오리 1만4천 마리를 사육하는 전영옥(60) 한국오리협회 광주전남도지회장은 “농장 안 온도를 떨어뜨리려고 안개 분무, 지붕 살수에 물을 쓰다 보니 5톤짜리 물탱크가 한 시간이면 동난다”며 “오죽하면 오리 농가들이 지하수 펌프를 가동해야 하는 낮에는 빨래도 하지 말자고 한다”고 말했다.

닭이 수분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도록 전해질, 비타민, 미네랄이나 스트레스 완화제를 사료에 섞어 먹이기도 한다. 김씨는 “이마저도 더위에 지친 닭들이 사료 자체를 잘 먹지 않아 큰 효과가 없다”고 호소했다. 손씨도 “보조 사료를 먹이고는 있지만, 비용이 비싸 충분히 먹이기엔 역부족이다. 한우 농가 등에 비하면 산란계 산업에는 정부의 지원이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돼지 농가는 현재까지 큰 피해가 없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오재곤 전남한돈협회장은 “돼지 체온은 39도로, 기온이 35도만 넘으면 임신이 잘 안 되고 크게 자라지 않는다”며 “그나마 전남지역은 에어컨 설치 등 시설에 투자한 축사가 많아 피해가 적지만, 폭염이 계속 이어지면 돼지들도 더는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 청양군에서 돼지 5천 마리를 키우는 이대한(44)씨의 농장도 최근 100여 마리가 더위에 폐사했다. 그는 “축사에 냉방방치와 환풍기 등 공조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돼지가 열을 받으면 살릴 방법이 없다”며 “내년 여름을 대비해 축사에 냉방기와 중계 팬을 더 설치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폭염 탓에 농산물 가격이 급등할까 우려하고 있다. 장마 기간 쏟아진 폭우로 인해 농산물 가격이 한차례 들썩인 상태다. 7월 채소류 가격은 전월과 비교해 6.3% 올랐다. 채소류 가운데 상추와 시금치 가격은 각각 57.2%와 62.1%나 뛰었다.

특히 장마 영향으로 7월 가격이 이미 전월 대비 27.3% 상승한 배추는 폭염 탓에 무름병이 확산하고 있어 가격이 더 오를 전망이다. 무름병은 작물 아랫부분이 녹으면서 썩는 병으로, 고온 다습한 환경에서 빠르게 번진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펴낸 ‘농업관측 8월호’에서 이달 배추 10㎏ 도매가격을 1년 전보다 19.3% 상승한 1만6천원으로 예측했다.

정부는 경계수위를 높이고 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날 오전 농산물 수급 및 생육 상황 점검회의를 개최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확대간부회의에서 “관계 부처와 협의해 병충해 등 농작물 생육 관리를 강화하고 필요한 경우 농산물 비축 물량을 방출하는 등 수급 안정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지시했다. 정부는 농산물 수급 안정을 위해 7월 중순부터 무와 배추 비축물량을 하루 300톤 이상 방출하고 있고, 이달 1일부터는 배추를 30% 할인된 가격에 대형마트에 공급하고 있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