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금융회사의 위기,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2024. 8. 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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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본 칼럼은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 이사장
2021년 하반기부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국내 부동산경기도 침체국면을 지속하다가 최근 들어 반동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2020년말 0.5%에서 2023.1월 3.5%로 인상된 이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한국부동산의 전국 아파트실거래거가지수는 2021년 10월 최고점(144.6)을 기록한 후 2023년 1월까지 약 19% 하락하였다.

부동산경기가 침체국면에 접어들면서 저축은행, 신협 및 농·수·산림 협동조합, 새마을금고 등 소위 서민금융회사들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부동산 PF)의 부실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 서민금융회사는 설립목적으로 저축은행의 경우 서민과 중소기업의 금융편의를, 신협 등 상호금융은 공동유대(公同紐帶)나 상부상조 정신에 입각한 조합원의 금융편의를 제공하도록 있음에도 서민금융의 문제가 아닌 부동산 PF대출 부실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게 아이러니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금년 3월말 현재 금융권 전체 부동산PF대출 규모는 총 230조원이며, 이중 저축은행은 9.4조원(4.1%), 상호금융(새마을금고 제외)은 4.4조원(1.9%) 수준이나 부동산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연체율이 급증하는 등 건전성이 크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왜 서민금융회사들이 부동산 PF대출 부실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일까? 사실 서민금융을 공급하는 대표적 금융기관이 바로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이다. 1972년 설립된 이래 1997년 외환위기가 있기 전까지 저축은행의 경우 재래시장 상인이나 영세자영업자, 저신용 서민 등 형편이 어려운 개인이나 중소 상공인들에게 자금을 융통해주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 왔으며, 신협 및 농·수·산림 협동조합, 새마을금고 등도 각 조합원에 대하여 자금을 융통해 주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여관, 사우나 등 소비·향락업종과 부동산업에 대한 일반은행의 여신금지업종제도가 폐지되면서 저축은행 고유의 영업기반이 상실되고, 개인대출시장에서도 일반은행, 카드사, 캐피탈사의 경쟁적 진출로 저축은행은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상호금융 또한 조합원에 대한 금융편의 제공보다는 부동산담보대출 위주로 외형을 확대하는 등 영업행태가 변화하였다.

서민금융회사들이 설립목적과 동 떨어진 부동산 PF 등의 영업에 치우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어찌보면 생존전략 차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의 서민금융산업에 대한 철학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은행이 저금리를 바탕으로 서민금융시장을 잠식하면서 저축은행의 경우 저신용차주 위주의 영업에 한계가 있는 만큼 생존전략 차원에서 부동산관련 대출을 확대하면서 부동산경기에 따라 부침(浮沈)이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나갈 것인가? 필자가 2011년 금융감독원 재직 시 ‘저축은행 사태’를 총괄했던 검사국장으로서 최근 저축은행 등 서민금융회사의 부동산 PF대출 부실화와 관련된 기사를 접하면서 몇 가지 정책적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규제는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는 합법성의 문제가 제기될 우려는 없는지 잘 살펴야 한다. 「부동산PF대출취급규정」의 일부로 금년 4월 1일에 시행된 규제(6개월이상 연체채권 3개월 이내 공매, 유찰시 3개월내 재공매 등) 범위를 벗어나서 대출채권 공·경매지침을 강화하여 발동하는 것은 채무자, 소유자, 기타 이해관계인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을 야기할 경우 금융소비자 보호에 반하는 정책이라는 비난과 함께 소송제기의 우려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PF대출의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해 캠코에 매각하도록 했던 점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영국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지옥(地獄)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되어 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는 선의로 출발한 정책이 때로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말이 뇌리에 스친다.

둘째, 대량의 경·공매물량 공세가 부동산시장을 왜곡 시킬 소지가 있다. 경매 참여자들은 한번 경매에 나온 물건은 향후 6개월 이내에 2차, 3차 물건으로 다시 나올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빨리 경락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제값을 받지 못하고 처분하게 되면 금융회사는 손실을 보게 되고, 그 손실은 정상적으로 이자를 잘 갚고 있는 채무자들에게 전가될 것이 뻔하다. 부동산 PF대출 부실채권 정리문제가 결국은 서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오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셋째, 규제는 경기가 좋은 호경기(好景氣)때 강화되어야 하며, 규제를 받는 상대방이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정상 여신거래 중에 있는 여신”은 “정상”으로 분류하도록 되어있는데, 대출금에 대해 이자를 잘 갚고 있으나 부동산경기라는 외부요인으로 사업이 다소 지연되어 3회 이상 연장한다고 해서 6개월 이상 연체채권의 분류기준과 동일하게 ‘고정’ 이하로 분류토록 하는 것은 성실한 여신거래자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많은 민원을 야기할 수 있다.

넷째, 정치는 구호일지라도, 정책은 현실이어야 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해 금융권이 ‘비 올 때 우산 뺏기’식으로 대응한다면 단기적으로 건전성이 개선될 수 있을지 모르나, 중장기적으로는 실물경제 뿐 아니라 금융회사 건전성에도 부정적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앞으로 금리인하 등으로 부동산 경기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과도한 규제는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다섯째, 중앙회 등 자율규제기구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지난달 1일 신협중앙회가 부실채권(NPL) 전문 자회사인 ’KCU NPL 대부‘를 출범하여 회원조합의 부실채권을 사후 재정산 방식으로 매입해 신협의 연체율 하락 방지와 건전성 관리에 힘쓰도록 한 것은 좋은 예로 보인다. 저축은행도 저축은행중앙회가 부동산PF 정상화펀드 등을 가동시켜서 시장의 충격을 줄여나갈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저축은행 등 서민금융업권이 ‘체력을 길러 건강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감독기관의 검사나 규제도 중요하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바탕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우선, 서민금융회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한다. 1998년 1월 폐지된 일반은행의 ‘여신금지업종’과 같은 제도를 마련하여 상생금융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완화된 규제를 역행하기 어렵다면 은행들이 스스로 ‘여신자제업종’을 선정토록 유도하여야 한다. 그래서 서민금융회사들의 수익창출기반을 마련해주고 저금리든 중금리대출이든 서민들을 위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게 본질일 것이다.

합리적인 감독정책으로 필자가 구조조정과정에서 귀가 따갑게 들어오던 감독당국의 법에 근거하지 않은 ‘그림자 규제’, ‘뒷북 대책’, ‘두더지 잡기식’ 등의 악평이 따라다니질 않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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