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제 침체 공포에 亞증시 악몽…닛케이 12%·코스피 9%·대만 8%↓

신기림 기자 2024. 8. 5.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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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연준 정책 타이밍 또 놓쳤나…캐리트레이드 청산 압박도
일본 도쿄에서 한 남성이 닛케이 주식전광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2024.8.5 ⓒ AFP=뉴스1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미국 경제가 침체로 향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위험투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5일 아시아 증시가 폭락했다. 반면 안전자산 엔과 스위스 프랑은 캐리 트레이드가 풀리면서 급등했다. 손실을 메우기 위해 수익성 있는 거래 청산이 일면서 아시아 전역의 거래소에서 서킷 브레이커(일시적 매매중단)가 발동될 정도로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일본 도쿄증시의 닛케이 225지수가 4451엔(12.4%) 폭락해 사상 최대 일일 낙폭을 그리며 추락했다. 미국 뉴욕증시의 급락이 전세계로 확산한 블랙먼데이 다음날인 1987년 10월 20일의 사상 최대 낙폭(3836엔) 기록을 갈아 치웠다.

닛케이 지수의 선물매매를 일시 중단하는 서킷브레이커가 오후 1시 30분과 2시 30분 두 차례 발동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불과 2주 전만 해도 도쿄 증시는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며 잃어버린 30년을 되찾을 것만 같았지만 미국의 침체 공포에 속절 없이 무너졌다. 닛케이 지수는 결국 지난 며칠 동안 매도세에 올해 상승분을 모두 날려 버리고 하락세로 전환했고 한 달도 되지 않아 고점 대비 20% 하락한 약세장에 진입했다.

대만 증시의 가권 지수도 8% 넘게 밀리며 57년 만에 최대 낙폭으로 무너졌다. 뉴욕증시의 선물지수도 한때 급락하며 전세계 블랙 먼데이를 예고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선물은 7% 가까이 떨어지기도 했다. 한국의 코스피도 8% 넘게 급락해 4년 만에 처음으로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됐다.

금융시장의 패닉셀링 단초는 미국의 고용보고서다. 7월 미국의 신규고용은 11만4000개로 예상 17만5000개를 크게 밑돌았고 실업률도 4.3%로 오르며 거의 3년 만에 최고로 상승했다. 많은 기대를 모았던 미국 경제의 '연착륙'에 대한 희망은 완전히 사라지고 '경착륙'에 대한 두려움으로 대체된 것으로 보인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너무 오래 금리인하를 기다렸다는 우려에 매도세가 심해진 것이다. CME페드워치툴에 따르면 고용보고서가 나온 지난 2일 연준 펀드 선물은 연준이 9월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50bp(1bp=0.01%p) 인하할 가능성을 70% 이상 반영했는데, 이는 전날 22%에 비해 크게 상승한 수치다.

그동안 시장은 나쁜 경제 지표에 급등세로 반응했지만 이날은 폭락세로 대응했다. 결국 연준이 또 다시 정책 실수로 서둘러 금리를 인하해야 할 만큼 경기가 악화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급습했다.

사르마야 파트너스의 사장 겸 최고투자책임자인 와시프 라티프는 로이터에 "바로 성장 공포"라며 "시장은 이제 경제가 실제로 둔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아폴로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토르스텐 슬로크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 그대로 하룻밤 사이에 이야기가 바뀌었다"며 "투자자들은 7월 미국의 일자리 수를 통계적 특이점으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미국이 지금 더 심각한 경기 침체기에 접어들었는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 그룹 이코노미스트들은 내년 미국 경기침체 가능성을 15%에서 25%로 상향 조정하며 9월, 11월, 12월 금리가 각각 25bp(1bp=0.01%p)씩 인하할 것으로 전망했다. JP모건의 애널리스트들은 미국 경기침체 확률을 50%로 제시하며 골드만삭스보다 더욱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마이클 페롤리 JP모건 이코노미스트는 "이제 연준이 상당히 뒤처진 것으로 보이므로 9월 회의에서 50bp 인하에 이어 11월에 50bp를 추가로 인하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지표가 더 완만해진다면 회의 간 양적완화를 단행할 수도 있지만, 연준 관계자들은 그러한 움직임이 어떻게 (잘못) 해석될지 걱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엔화가 달러 대비 7개월 만에 강세를 보이며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달러당 엔화는 이날 4% 넘게 뛰면서 환율이 141엔대에 근접했다.

일본은행이 다른 주요국과 달리 금리인상을 단행하면서 캐리 트레이드를 대표하는 엔화가 돌연 급등했다. 그동안 낮은 금리의 엔화를 빌려 높은 수익을 내는 자산에 투자하는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면서 매도 압력이 뉴욕 증시에 하방 압력을 키울 수 있다고 투자 리서치 포털 ERIC의 공동 설립자인 러셀 네이피어는 최근 보고서에서 경고했다.

그는 "엔화가 매우 저평가되어 있고 일본의 금융 억압이 임박한 상황에서 (캐리 매도라는) 변화가 나타나면 미국의 주식 가치가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리서치 회사 BMI의 세드릭 체햅 국가 리스크 책임자 역시 CNBC 방송에 "매파적 일본은행이 단기적인 캐리 트레이드의 붕괴를 일으켰다"며 "미국 제조업 지표의 부진이 시장의 불안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아시아 증시의 폭락은 유럽과 미국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FT가 인용한 도쿄의 트레이더들에 따르면 이번 매도는 글로벌 펀드의 대규모 조정과 위험 회피 움직임의 일환으로 보인다.

한 글로벌 연기금의 일본 책임자는 FT에 "일본 시장은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글로벌 무역의 보증수표로 여겨진다. 따라서 미국 경기 침체 우려와 지정학으로 인해 많은 투자자들이 지금처럼 심각한 탈위험 모드에 있다면 올해 지금까지 매우 좋은 성과를 거둔 일본 시장에서 이익을 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고 말했다.

shink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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