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규제...당국의 무관심 속에 '티메프 사태' 씨앗 자랐다
티몬·위메프(티메프) 미정산 사태는 국내법 규제의 사각지대를 그대로 노출했다. 한해 동안 227조원 규모의 상품과 재화, 용역 등이 이커머스를 통해 거래되는데 환불 주체도 제대로 명시돼 있지 않다. 여행상품과 상품권에 대해 서로 환불할 의무가 없다며 '폭탄돌리기'를 하는 이유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관련 규정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5일 전자상거래법 15조2항에 따르면 통신판매업자는 청약받은 재화 등을 공급하기 곤란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지체 없이 그 사유를 소비자에게 알리고 대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급한 날부터 3영업일 이내에 환급하거나 환급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에서 정의하는 통신판매업은 '통신판매를 업(業)으로 하는 자' 즉 판매자(셀러)다. 통상 이커머스는 통신판매중개업으로 분류된다.
이렇게 본다면 여행상품의 경우 티몬과 위메프의 미정산 사태로 인해 대금 정산이 어려워질 것이 예상됐을 때 여행상품을 판매한 여행사(통신판매업자)가 소비자들에게 서비스 제공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고 이에 필요한 환불 조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여행사들은 이커머스로부터 대금을 정산받지 못했다며 환불 의무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여행사들은 소비자들이 구매한 여행상품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일부는 별도의 결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자상거래법은 이커머스도 통신판매자로 규정한다. '전자상거래법 등에서의 소비자보호 지침'을 보면 통신판매중개업자를 통해 재화 등에 대한 판매정보의 제공과 청약의 접수 등이 이뤄지는 경우 이 통신판매중개자는 '통신판매업자인 통신판매중개자'로 규정하고 있다.
단순히 상품정보를 나열하고 가격비교 등의 서비스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티몬과 위메프처럼 결제를 통해 판매 계약을 체결하면 이커머스도 곧 통신판매업자가 된다는 얘기다.
'통신판매업자인 통신판매중개자'도 앞서 언급한 15조2항의 적용을 받게 되는데 이렇게되면 환불의 주체는 티몬과 위메프가 되게된다.
법 자체가 모호하다 보니 문제가 생기면 책임 소재도 항상 모호해진다. 통신판매자와 통신판매중개자의 역할이 제대로 구분돼 있지 않아 논란을 빚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숙박 중개 이커머스를 통해 예약한 호텔이 현지에 가보니 아예 없거나 예약한 숙소와 현지숙소가 달라 소비자 피해주의보가 내린 게 대표적 사례다. 해당 호텔을 판매하는 판매자와 이를 중개한 통신판매중개업자의 책임 소재를 두고 논란이 있었으나 결국 책임소재를 가리지 못하고 한국소비자원은 '소비자주의보'만 내렸다.
통신판매자와 통신판매중개업자의 권한과 책임 등 관련 규정은 정비되지 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 등 규제 당국의 무관심 속에서 티몬 위메프 사태 혼란의 씨앗이 자라고 있던 셈이다.
PG사의 환불규정 역시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여신전문금융업법 19조에 따르면 물품의 판매나 서비스 제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경우, 신용카드 이용자인 소비자가 환불을 요구하면 PG(결제대행)사가 이를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티몬과 위메프 미정산 사태 이후 11개 PG사와 신용카드사는 소비자들이 티몬과 위메프에서 일반 상품을 주문한 소비자에게 환불을 진행하고 있다. 일주일 내로 환불 절차가 마무리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PG사들은 여행상품과 상품권에 대해서는 "환불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환불 요건인 '물품의 판매나 서비스 제공'에 대한 해석이 달라서다. 상품권의 경우에도 PG사들은 핀(PIN) 번호가 발행돼 소비자에게 전달됐으면 상품권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판매 절차가 끝났기 때문에 PG사가 아닌 상품권 발행사가 환불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티몬과 위메프가 집중적으로 판매한 해피머니 상품권 발행사는 사실상 디폴트(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이커머스는 파산직전 상황에 몰려 환불해줄 능력이 없고 PG사, 여행사, 상품권 업체 모두 자신들은 환불해줄 수 없다며 책임을 떠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커머스의 현실이 법에 반영돼 있지 않다보니 이번 사태처럼 재화나 서비스 공급에 차질이 생겼을 때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진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커머스에서는 통상 판매자(셀러)가 공급하는 상품과 재화를 통신판매중개자(이커머스)가 판매를 중개하고 결제는 PG(결제대행)사를 통해서 진행한다. 반면 티몬과 위메프 같은 이커머스는 통신판매업자이자 통신판매중개업자이자 PG사 역할까지 함께하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커머스 업체가 통신판매자이자 통신판매중개자이자 에스크로 역할까지 하는 상황"이라며 "각각의 역할에 대한 법적 미비점을 재정비 하지 않으면 이같은 사태는 되풀이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우 기자 minu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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