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빈·여서정·이원호…올림픽의 젊은 ‘구루’들 [김민아 칼럼]
몸으로 하는 운동에 영 소질이 없다. 눈으로 보는 운동엔 열광한다. 파리 올림픽이 개막한 이후 밤 새우는 일이 잦은 이유다. 이번 올림픽은 기대 이상이라 더욱 즐겁다. 메달 숫자만 기대 이상이 아니다. 선수들의 말과 삶은 더 그렇다.
신유빈(20)은 탁구 여자 단식 동메달 결정전에서 하야타 히나(일본)에게 졌다. 6게임 중 3게임에서 듀스가 벌어질 만큼 접전이었다. 경기 후 울음을 터뜨릴 법도 한데 아니었다. 밝은 표정으로 승자에게 다가가 축하를 건넸다.
공동취재구역에서도 담담했다. “하야타를 오랫동안 봐왔다.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간절하게 경기했다. 나도 더 단단한 선수가 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축하 인사를 했다”고 말했다. “이게 현재 나의 최선이고 실력이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게 분명해졌다”고도 했다.
체조 여자 도마 결선에 나선 여서정(22)은 표정이 밝지 않았다. 예선 성적이 4위로 괜찮았는데, 왜 그러나 싶어 의아했다. 1차 시기에서 착지 실수를 했다. 점수는 예선보다 나빴다. 2차 시기에선 손으로 매트를 짚었다. 점수는 1차보다 더 나빴다. 캐스터와 해설자도 당혹스러운 듯 버벅거렸다.
7위로 경기를 마친 여서정이 털어놨다. 두 시간 전 어깨가 탈구됐다고. 하지만 기권하면 더 아쉬울 것 같았다고. 어떻게든 시합을 뛰고 싶었다고.
최세빈(24)은 펜싱 여자 사브르 세계랭킹 24위다. 16강전에서 세계랭킹 1위를 완파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동메달 결정전에서 우크라이나 선수에게 1점 차로 패했다. 눈앞에서 메달을 놓쳤지만 의연했다. “4등 한 선수는 안쓰럽고 불행할 줄 알았는데, 막상 4등을 하니까 많이 얻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상위 랭커 선수들과 시합을 해서 좋았습니다.”
남자 사격 이원호(25)는 참가한 두 종목(공기권총 10m 개인·혼성) 모두 4위를 했다. 그는 오른손잡이지만 왼손으로 방아쇠를 당긴다. 고교 시절 갑자기 오른팔 떨림 증세가 시작됐다. 원인을 찾지 못했다. 결국 왼손으로 총을 들었다. 왼팔 근력을 기르기 위해 어디 가든 3㎏ 덤벨을 들고 다닌다.
이번에 메달권에 들지 못한 이원호는 귀국 후 입대(국군체육부대)할 예정이다. 혼성 경기 후 이런 상황을 잘 아는 파트너 오예진(19·여자 공기권총 10m 금메달)이 눈물을 흘렸다. 외려 이원호가 파트너를 다독였다.
펜싱 여자 사브르 윤지수(31)는 단체전 멤버 중 유일한 올림픽 유경험자다. 세계랭킹 1위 프랑스와의 준결승 도중 교체를 자청했다. “프랑스 선수들과 저는 오랫동안 경쟁을 해와서 서로가 너무 잘 안다. 상대가 파악하기 어려운 선수가 나가자는 작전이었다”고 설명했다.
작전은 들어맞았으나, 윤지수는 이후 결승전까지 피스트에 오르지 못했다. 아쉽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답했다. “제가 그 자리를 욕심 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공 앞에서 겸손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실패할 때보다는 상대적으로 쉽다. 성공 자체가 희귀한 자원이다. 심리적 안정과 여유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실패할 때는 모든 게 도전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무너지지 않는 일, 남 탓으로 돌리지 않고 경쟁자의 승리를 축하하는 일, 스스로의 한계를 직시하고 극복하는 일…. 더 큰 성공을 위해 스스로 물러서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미련 두지 않고 용기있게 물러서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파리 올림픽 무대에서 한국 대표팀의 활약이 눈부시다. 당초 금메달 5개가 목표라고 했는데, 벌써 두 자릿수를 달성했다. 양궁 3관왕 임시현(21)·김우진(32)을 비롯해 수많은 메달리스트들이 탁월한 재능과 실력으로 큰 기쁨을 주고 있다. 남은 기간에도 더 많은 메달리스트가 탄생하리라 기대한다.
금메달을 놓쳤어도, 혹은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어도 인내와 헌신을 보여준 선수들에게서 또 다른 미덕을 배운다. 이 아름다운 청년들은 도전 속에서 인생의 도를 깨친, 젊은 구루(guru·스승)들이다.
모두가 승자가 되고 싶어하지만, 누구나 승자가 될 수는 없다. 몇 번 승리할 수 있지만 영원히 승리할 순 없다. 잘 지는 법을 터득하고, 다시 일어서는 법을 연습하고, 언젠가는 아름답게 물러날 시간을 준비하는 이들이 진정한 승자다.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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