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플랫폼 자율규제 2.0을 기대하며
자율규제를 통한 플랫폼 분야 거래 질서 확립은 민간 주도 역동 경제를 표방하는 현 정부가 내걸었던 국정과제다. 그러나 이 약속은 정부 출범 이후 2년을 넘긴 지금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2022년 8월에 출범한 '플랫폼 민간 자율기구'는 입점 업체 계약 관행을 개선하고, 상생·부담 완화 방안을 마련하는 등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한정된 의제와 더불어 정부 주도 임의기구로 운영되는 등 한계가 있었고, '카카오톡 불통 사태' 이후에 플랫폼을 둘러싼 정책 환경이 급변하면서 점차 소식이 뜸해진 상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1대에 이어 이번 국회에서도 자율규제 법 근거를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이 법이 통과돼 자율규제 기구가 제대로 운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플랫폼 규제법안을 쏟아내는 거대 야당은 물론 정부 내에서도 부처 간에 자율규제 필요성에 대한 인식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매우 안타깝다. 플랫폼처럼 변화가 빠르고 불확실성이 큰 산업일수록 시장 질서 확립의 수단으로서 자율규제가 유용하기 때문이다. 플랫폼은 지난 20여년 우리 삶을 바꾼 혁신 대부분과 관련돼 있다. 플랫폼은 새 연결을 통해 가치를 얻으므로 그 과정에서 기존에는 익숙하지 않은 문제와 마찰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중 대부분은 플랫폼이 창출하는 가치에 비하면 부수적인 문제임도 유념해야 한다. 플랫폼 규제에 있어 신속하면서도 동시에 유연한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플랫폼 규제의 핵심 대상으로 여겨지는 자사우대 행위를 예로 들어보자. 타사 제품에 비해 자신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우선시하는 행위는 본능에 가깝고, 많은 경우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대형마트가 자신의 PB상품을 잘 보이는 위치에 진열하면서 일일이 양해를 구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경쟁법에서는 그동안 자사우대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구체적 사안별로 경쟁이 훼손됐는지 자세히 따져보고 규제해 왔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플랫폼에 대해서는 이러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아마도 플랫폼은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바탕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플랫폼도 여러 가지 사업모델 중 하나일 뿐이고 본질적으로 중립적으로 운용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플랫폼은 특수하므로 중립의 의무를 새롭게 부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플랫폼 시장은 쏠림현상이 나타나기 쉬우므로 자사우대 행위 경쟁제한성 여부를 따지며 시간을 보내게 되면 폐해가 너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플랫폼에 지나친 중립을 요구하면 새 방식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고, 그럴 인센티브도 줄어든다는 반론도 있다.
자율규제 기구는 이런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업계 스스로 논의를 통해 어느 정도가 지켜야 하고 지킬 만한 중립의 수준인지를 빠르게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거치며 회색지대에 해당하는 행위들도 분명해질 것이다. 이에 대한 지식과 사후적 규제 경험이 쌓이면 특정한 행위는 아예 처음부터 금지될 수도 있다. 이처럼 자율규제와 사후규제, 사전규제의 세 틀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바람직한 플랫폼 규제의 접근법이다. 그런 면에서 포괄적인 사전규제부터 도입하려는 최근 시도는 너무 거칠고 급하게 느껴진다.
자율규제는 규제를 회피하는 수단도, 법 범위를 넘는 압박 수단이 돼서도 안 된다. 자율규제 기구가 사실상 이해집단간 협상이나 상생 수단으로 활용됐던 것도 본질을 벗어나는 일이다. 자율규제는 현재로서 법제화 실익 여부가 불분명한 규제에 한정해 적용될 필요가 있다. 규제를 유예하면서 존속 필요성을 검증한다는 점에서 이는 대표 혁신 촉진 제도인 규제 샌드박스와도 통하는 지점이다. 기존 한계를 보완한 '자율규제 2.0'이 빠르게 출범해 합리적인 플랫폼 규제 질서 확립에 기여하게 되길 바란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경제사회연구원장 namhoon@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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