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여야 대표 회담으로 풀어라 [성한용 칼럼]

성한용 기자 2024. 8. 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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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성한용 | 선임기자
대통령실 대변인은 대통령의 입이다. 지난 2일 오후 정혜전 대변인은 야당의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를 강하게 비판하는 논평을 냈다. 그럴 수 있다. 문제는 품격과 수위였다.

“북한이 오물 풍선을 보내는 것과 야당이 오물 탄핵을 하는 것이 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지 되묻고 싶다.”

“야당의 횡포는 윤석열 정부의 발목 잡기를 넘어서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야당은 민심의 역풍이 두렵지 않은가? 헌정 파괴 정당은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를 느낄 수 있다. 정혜전 대변인은 윤석열 대통령이 불러준 대로 논평을 작성했을 것이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야당의 행위를 북한의 도발에 빗댔다. 색깔론이다.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는 세력은 반국가단체다. 야당을 반국가단체라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역시 색깔론이다.

‘대한민국의 발목’ 표현은 지난 7월26일 윤석열 대통령이 이상인 방통위 부위원장 사임을 재가할 때도 나왔다. “국회가 더이상 미래로 가는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고 했다. 그 표현이 윤석열 대통령 자신도 멋있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한번 써먹었다.

‘국민의 심판’ 대목에서는 헛웃음만 나온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심판은 선거를 통해 내려진다. 윤석열 대통령은 불과 4개월 전 총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의원내각제였다면 정권을 내놓았어야 한다. 지금 누가 누구를 심판해달라는 것인가.

4·10 총선 이후 국정이 사실상 멈춘 상태다. 국정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집행 권력과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의 입법 권력이 함께 이끌어가는 것이다. 협력과 양보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통령과 국회, 여당과 야당은 협력이나 양보를 할 생각이 조금도 없는 것 같다. 22대 국회의원 임기는 5월30일 시작됐지만, 아직 개원식도 못 했다. 국회의원 선서도 못 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검색해보면, 정부가 22대 국회에 제출한 법안은 192건이다. 소관 위원회에 접수만 되어 있을 뿐 단 한건도 국회에서 의결하지 않고 있다.

절대다수 의석을 가진 야당은 야당이 필요한 법안과 탄핵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 탄핵 의결 직전 사퇴, 버티기로 맞서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을 기각한다고 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야당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고위 공직자 탄핵안을 발의해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다.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기소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윤석열 대통령은 스스로 표현했듯이 지금 ‘거의 식물 대통령’이다. 이러고도 나라가 온전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대통령과 국회, 여당과 야당이 한발씩 물러서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오물 풍선’ ‘국민 심판’ 운운하며 ‘격노’할 때가 아니다. 양보하고 타협해야 한다. ‘거의 식물 대통령’임을 인정하고 권력을 절반쯤 국회에 내줘야 한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좋은 사례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2024년 1월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는 총선 뒤 4월29일 회담했다. 이 회담에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의제로 올랐고 이를 바탕으로 여야 합의가 이뤄져 5월2일 수정된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정치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국회에서 야당 주도로 통과된 ‘방송 4법’, ‘전국민 25만원 지원법’ 등 다른 법안도 이런 절차와 수순을 거치면 얼마든지 타협이 가능하다.

4월29일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가 만날 때 여당에는 대표가 없었다. 지금은 한동훈 대표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집권 여당의 대표다.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대표, 그리고 8월18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새로 선출되는 대표가 만나야 한다. 세 사람의 회담을 정례화해도 좋고 새로운 협의체를 만들어도 좋다.

정치와 정책 의제를 포함해 모든 것을 논의해야 한다. 대화와 타협으로 정치를 살려야 한다. 지금처럼 대통령과 국회, 여당과 야당이 극한 대치를 하는 상황을 끊어내지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

윤석열, 한동훈 그리고 새로 선출될 민주당 대표의 어깨 위에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의 현재와 미래가 걸려 있다. 세 사람의 각성을 촉구한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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