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펜저스 1기’에서 ‘AI 해설’로···해설올림픽 마친 김준호 “내 룸메이트, 그렇게 완벽할 줄은”[파리에서 생긴 일]

김은진 기자 2024. 8. 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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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파리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 결승 한국 대 헝가리 경기가 3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렸다. 구본길(왼쪽부터), 박상원, 오상욱, 도경동이 시상식에서 금메달과 함께 3연패를 기념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7.31/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김준호(30)는 2021년 열린 도쿄올림픽에서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을 땄다. 남자 사브르 대표팀이 ‘어펜저스’로 불리기 시작했던 그때의 핵심 멤버다. 김정환, 구본길, 오상욱과 함께 출전했던 도쿄올림픽에서 김준호는 단체전만 나갔다. 주연은 3명이 맡았고 김준호는 교체 선수였다

그러나 딱 한 번에 시선을 강탈했다. 이탈리아와 결승전, 35-20으로 앞서던 8바우트에 김정환 대신 투입돼 처음으로 피스트를 밟은 김준호는 상대를 5-1로 눌러 40-21로 점수 차를 벌리면서 금메달을 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모두가 “저 선수는 또 누구냐”고 했었다.

3년이 지난 2024년 김준호는 해설가로 파리올림픽을 찾아 대한민국 펜싱팀의 경기를 지켜봤고 중계했다. ‘뉴 어펜저스’로 불린 남자 대표팀은 지난 1일 금메달을 땄다. 헝가리와 결승전에 3년 전 김준호와 똑같은 선수, 도경동(25)이 있었다.

3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파리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 한국과 헝가리의 경기. 도경동이 공격성공 후 환호하고 있다. 2024.7.31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JIN



한 번도 출전하지 않던 도경동은 헝가리와 결승전 7바우트에 구본길 대신 처음 피스트에 올랐다. 30-29를 35-29로 만든 도경동의 활약은 이번 올림픽 남자 사브르 결승전의 백미였다. 오상욱과 구본길은 그대로, 박상원과 도경동이 새로 가세한 남자 사브르는 단체전 3연패를 달성했다.

현장에서 경기를 해설한 김준호는 도쿄에서 자신의 모습과 똑같았고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도경동의 활약을 가장 먼저 눈에 담았다. 선수 시절, 함께 숙소를 쓴 룸메이트였던 도경동은 대회 전에도, 대회를 시작한 뒤에도 선배 김준호에게 많은 조언을 구하고 속마음을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김준호는 “경동이에게 개인전을 못 뛰지만 단체전 한 경기에서 너의 경기력을 보여줘야 한다. 거기 맞춰 컨디션을 조절해놔야 된다. 그게 네 역할이라고 했는데, 다른 선수들이 잘 했는데 자신이 한 경기 들어가서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부담을 크게 느꼈다. 그러면 100% 안 된다고 빨리 생각을 경기 전까지 바꿔야 된다고, 그 얘기를 정말 많이 했는데 그렇게 완벽할 경기를 할 줄은 몰랐다”고 이번 대회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았다.

한국의 남자 사브르는 세계랭킹 1위다. 김준호는 “도쿄 때에 비해서도 새로 들어온 신진 선수들 경기력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부상만 없으면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올림픽 4연패도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딴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 구본길, 오상욱, 김정환, 김준호(왼쪽부터)가 태극기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은퇴하고 소속팀 화성시청에서 플레잉코치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는 김준호는 해설가로서 참가한 첫 올림픽에서도 대활약을 했다. 정확한 해설로 ‘AI 해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사브르는 상반신 찌르기와 베기까지 허용돼 득점 여부를 센서에 불이 켜지는 것으로 최종 확인한다. 동시공격이 많아 판정 전까지 관중이나 시청자 입장에서는 득점 여부를 판단하기가 어려운데 ‘해설가 김준호’가 “늦었다”거나 “빨랐다”고 미리 알려주는족족 그대로 판정이 나왔다.

김준호는 “첫 해설이라 고민을 많이 했는데 선수 출신이고 시청자들이 보면서 판단하기 가장 어려운 종목이 사브르니까 재미있게 설명해드리고 싶었는데 감사하게도 판정이 내 얘기대로 잘 맞아떨어졌다”며 “준비하면서 심판 분석을 많이 했다. 선수 때 계속 같이 했던 분들이라 이런 심판은 이런 동작에 득점을 많이 준다 안 준다 하는 것들을 알고 있다. 그 부분을 많이 준비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펜싱 일정이 모두 끝났고 김준호는 지난 4일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이제 소속팀의 코치로, 그리고 은우·정우 아빠로 돌아간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 기자와 통화를 하며 파리에서 ‘뉴 어펜저스’와 함께 한 시간을 돌이킨 김준호는 “개인전 끝나고 단체전 하기 전 선수들이 중계석에 올라왔다. 같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상의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파리올림픽에서 그 순간이 참 좋았다”고 했다. 마음은 아직, 영원히 어펜저스와 함께 하고 있다.

파리 |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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