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숙 “하이든 소나타 56곡, 치다 죽어보자는 마음으로”
전곡 연주 마무리 리사이틀도
모차르트는 18곡, 베토벤은 32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남겼다. 두 사람에게 영향을 준 하이든은 무려 56곡을 작곡했다. 국내에서 모차르트,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녹음한 피아니스트는 더러 있지만, 하이든 전곡 음반은 없다. 오는 16일 피아니스트 허원숙(66)이 마침내 시디(CD) 10장짜리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 전집 음반을 발매한다. 허원숙은 이날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아이비케이(IBK) 체임버 홀에서 전곡 연주를 마무리 짓는 다섯번째 ‘하이든 리사이틀’도 연다.
‘하이든 프로젝트’는 햇수로 5년이 걸린 대장정이다. 독주회와 음반 녹음을 병행하는 방식이었다. 6~8곡씩 묶어 독주회를 열고 그 곡들을 음반에 담거나, 녹음부터 한 뒤에 그 곡들을 독주회에서 풀어내기도 했다. 음반은 폴란드 클래식 전문 레이블 둑스(DUX)에서 발매한다. 녹음은 폴란드 크라쿠프에 있는 공연장 ‘펜데레츠키 유러피언 뮤직센터’에서 네차례로 나눠 진행했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아 끝까지 갈 수 있을까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포기하면 그걸로 끝이잖아요.”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만난 허원숙은 “하이든 치다가 죽어보자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다”며 웃었다. 소나타 6곡으로 채운 첫 독주회는 2019년 12월5일. 그때까지 하이든 소나타는 2~3곡을 연주해본 게 전부였다. 하이든이 그렇게 까다로울 거라는 생각도 미처 못했다. 이듬해엔 코로나 팬데믹으로 독주회를 열 수 없었고, 넘어져 팔을 다치는 바람에 한동안 피아노 앞에 앉지 못하는 곡절도 겪었다.
“배우가 맡은 배역에 빠져드는 것처럼 저도 하이든에 푹 빠졌나 봐요.” 허원숙은 “하이든은 모차르트보다 날것이고 베토벤보다 유머러스한 면이 섞여 있는데,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게 어려웠다”고 했다. “하이든을 다듬어서 치면 모차르트가 되고, 하이든을 과장해 연주하면 베토벤이 된다고 할까요.”
그는 올해 호서대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명예교수로 남았다. 60살 넘어 그토록 험난한 길을 나선 이유가 뭘까. “바흐와 베토벤 음반을 내면서 감정과 군더더기를 덜어내게 됐어요. 표현이 점점 간결해지면서 하이든과 어울릴 거란 생각이 들었지요.” 그는 2016년 베토벤 디아벨리 변주곡에 이어 2018년 발매한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으로 음악전문지 ‘피치카토’의 슈퍼소닉상을 받았다. 일종의 ‘틈새시장 전략’도 작용했다. “모차르트, 베토벤은 모범적인 연주가 많지만, 하이든은 내 고유한 아이디어로 칠 수 있잖아요.” 국외에서도 하이든 전곡 소나타 음반을 낸 피아니스트는 루돌프 부흐빈더, 예노 얀도, 장-에프랑 바브제 등 손으로 꼽을 정도다.
그는 “무대 독주회가 연극이라면 음반 녹음은 영화”라고 비유했다. 영화감독처럼 프로듀서가 음반 제작을 총괄 지휘했다. 연주자 외에 프로듀서와 보조 프로듀서, 엔지니어, 조율사 등 5명이 팀을 이뤄 움직인다. 수시로 피아노를 조율했고, 프로듀서의 주문에 따라 체력이 고갈되도록 같은 부분을 몇번이나 반복해 연주하기도 했다. 템포를 두고 의견이 맞설 땐 4대 1로 논쟁도 벌였다.
아파트 방 하나를 개조한 연습실은 두 대의 그랜드 피아노와 하프시코드로 꽉 들어차 있었다. 토굴과도 같은 이곳에서 허원숙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 먹는 시간 빼놓고 10시간 넘도록 연습에 매진한다. 보름 앞으로 다가온 마지막 다섯번째 독주회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음반보다 잘 치고 싶은데 그게 불가능하거든요.” 이번에 연주할 소나타는 7곡 모두 외워서 연주한다. “100을 잘해도 1을 놓치면 끝장이거든요. 100%가 아니라 1000% 외워야 해요.”
음반 발매와 전곡 독주회가 끝이 아니다. 음반을 제작한 프로듀서가 하이든 소나타 56곡 전곡을 1주일에 걸쳐 마라톤으로 연주하는 독주회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하루에 시디 1.5개 분량씩 연주하면 1주일에 끝낼 수 있다는 계산이다. 내년 중에 한국과 폴란드에서 ‘하이든 소나타 56곡 전곡 마라톤 연주’를 추진 중이다. “하이든이 1732년생이니 앞으로 8년 있으면 탄생 300돌이잖아요.” 허원숙은 “그때까지 하이든을 붙들고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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