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팬데믹 후보 33가지로 늘었다…“이 병원체들을 대비하라”

곽노필 기자 2024. 8. 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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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필의 미래창
세계보건기구 발표…‘요주의 병원체’ 3배 늘려
“다음 팬데믹은 발생 ‘여부’ 아닌 ‘시기’ 문제”
채색 투과 전자현미경으로 본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H5N1(노란색). 위키미디어 코먼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세계적인 대유행(팬데믹)이 끝난 이후 세계 보건 당국의 관심사는 이제 다음 팬데믹을 일으킬 수 있는 병원체를 찾아내 예방 조처를 취하는 데 쏠려 있다.

예컨대 요즘 미국에선 조류(조류독감, AI)에 감염된 젖소를 통해 사람까지 조류독감에 감염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조류독감이 다음 팬데믹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로버트 레드필드 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은 지난 6월 언론 인터뷰에서 “조류독감 팬데믹은 일어날지 말지가 아니라 언제 일어나느냐 하는 시기의 문제”라고 말했다.

조류독감에 사람이 감염된 사례는 적지만 치명률은 50%나 된다. 세계보건기구 집계에 따르면 지난 20여 년 동안 23개국에서 약 900명이 감염돼 460여 명이 사망했다.

때마침 세계보건기구가 다음 팬데믹을 일으킬 수도 있는 병원체 후보군을 발표했다. 우선적인 ‘요주의 대상’으로 선정된 병원체는 아직 출현하지 않은 미지의 병원체 엑스(X)를 포함해 조류인플루엔자A, 뎅기열, 원숭이두창(엠폭스) 바이러스 등 모두 33가지다.

이는 2017년과 2018년에 발표했던 후보군보다 3배 이상 많은 것이다. 앞선 두 차례의 발표에선 다음 팬데믹 후보군 병원체가 각각 10가지였다.

이번 발표는 50여 개국 200여 명의 과학자들이 2년여 동안 28개 바이러스 계열과 1개 박테리아 그룹의 1652개 병원체와 관련한 증거들을 종합 검토한 끝에 이뤄졌다.

조류독감 등 인플루엔자A 바이러스 7개 최다

보건기구는 ‘병원체 우선순위 : 전염병 및 팬데믹 연구 준비를 위한 과학적 프레임워크’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목록에 포함된 병원체는 세계적인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일으킬 수 있는 잠재력을 고려해 선정했다”며 “전염성과 독성이 얼마나 강하고 백신을 비롯한 치료법에 대한 접근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판단의 준거로 삼았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올해 들어 젖소를 통해 사람이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가 잇따르자 조류인플루엔자 팬데믹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픽사베이

이번 발표에서 눈에 띄는 것은 올해 들어 미국 소들 사이에 전파되고 있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5N1) 바이러스를 포함한 인플루엔자A 바이러스가 7개나 목록에 올라 있다는 점이다.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소가 감염된 사실은 올해 3월 텍사스 농장에서 처음 확인됐다. 이후 지금까지 13개주에 걸쳐 소 160마리와 사람 4명이 감염됐다. 현재로선 착유기가 전파 통로가 된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 4월 유럽 임상미생물학및감염병학회(ESCMID)에서 발표된 전문가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87명 중 57%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가장 강력한 다음 팬데믹 후보로 보고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RNA 바이러스다. 두개의 가닥이 결합돼 있는 DNA가 아닌 단일 가닥의 RNA 유전물질을 지질 껍데기가 감싸고, 그 표면에 세포 침투 도구로 사용하는 단백질이 박혀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중가닥이 아닌 단일 가닥이어서 변이가 쉽게 일어난다.

바이러스 표면에는 세포 감염 도구로 쓰는 헤마글루티닌(HA)과 뉴라미니다아제(NA) 단백질이 있다. 바이러스는 세포에 침투할 때는 헤마글루티닌을, 증식 후 세포에서 빠져나올 때는 뉴라미니다아제를 도구로 쓴다.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에는 18개의 헤마글루티닌 아형과 11개의 뉴라미니다아제 아형이 있다. 소를 감염시킨 H5N1는 HA5과 NA1이 결합돼 있다는 뜻이다. H5N1 조류 인플루엔자는 1996년 중국의 거위 농장에서 처음 발견된 뒤 다음 해 홍콩에서 크게 퍼져 사람까지 사망하는 일이 일어나면서 이후 국제적인 경계 대상이 됐다.

실험실에서 배양한 감염세포(갈색)에서 발견된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청록색)의 투과 전자 현미경 사진. 원숭이두창 바이러스는 이중가닥의 DNA 바이러스다.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제공

원숭이두창바이러스가 후보군에 오른 이유

후보군에 포함된 병원체 중 사르베코바이러스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일으킨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상위 그룹(아속)이며, 메르베코바이러스는 2010년대 중반에 유행했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바이러스 상위그룹(아속)이다.

2022년 전 세계적으로 감염 사례가 보고된 이후 한동안 뜸하다 최근 중앙아프리카에서 다시 확산되고 있는 원숭이두창(엠폭스) 바이러스는 1980년 인류가 사상 처음 박멸 선언을 한 천연두 바이러스와 같은 계열(속)에 속한다. 그러나 공기 전파가 가능한 천연두와 달리 직접 접촉을 통해 주로 전파되기 때문에 전파력은 천연두보다 훨씬 떨어진다. 치명률도 천연두보다 훨씬 낮다.

네이처는 “이 바이러스가 다음 팬데믹 후보군에 오른 것은, 사람들이 더는 정기적인 예방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아 이 바이러스 계통에 대한 면역력이 없는 상태에서 우발적인 감염이 팬데믹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후보군 선정 작업에 참여한 스리랑카의 스리자예와르데네푸라대 교수(면역학)는 네이처에 “이 바이러스는 테러리스트의 생물학 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후보군 중 박테리아는 5가지다. 이들은 모두 이번에 새로 추가된 것으로 콜레라, 페스트, 이질, 설사, 폐렴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다.

사람이 아닌 설치류 바이러스 2종도 포함됐다. 보고서는 기후 변화와 도시화로 인해 사람에게 전파될 위험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목록에 포함시켰다고 설명했다.

박쥐에서 유래한 니파바이러스는 치명적이고 동물 간 전파력이 강하고, 현재 이를 예방할 약물이 없다는 점에서 잠재적인 팬데믹 후보군에 올랐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은 “역사는 우리에게 다음 팬데믹은 발생하느냐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발생하느냐는 문제라는 것, 그리고 그 영향을 최소화하려면 과학과 정치적 의지가 중요하다는 걸 가르쳐 준다”며 “다음 팬데믹에 대비하는 데도 똑같이 과학과 정치적 의지의 조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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