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시만 있나요? 앙상블 배우, 우리가 ‘시카고’ 그 자체”

서종민 기자 2024. 8. 5. 09: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뮤지컬 ‘시카고’ 배우 4人 인터뷰
초연부터 마마役… 배우 김경선
“중년 카리스마 갖추려 움직임 최소화”
‘감초’ 에이모스役… 배우 차정현
“혼자 노래할 때 이제야 편안한 기분”
17년째 앙상블 활약… 배우 최성대
“눈빛만 봐도 호흡 맞출 수 있어”
일인다역… 협력안무 감독 김준태
“앙상블 부족할땐 배우로 무대 올라”
“무대에서 연기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이제 나로서 존재하는 느낌입니다.” 뮤지컬 ‘시카고’ 공연을 하고 있는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만난 베테랑 앙상블 배우 최성대·김경선·김준태·차정현(왼쪽부터). 곽성호 기자

햇수 24년·시즌 17회째 ‘시카고’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스테디셀러 뮤지컬이다. 가수 인순이부터 배우 최정원·윤공주·정선아까지, 뮤지컬 문외한 귀에도 익은 대표 넘버 ‘올 댓 재즈’(All That Jazz)를 부르는 ‘벨마 켈리’ 등 주요 배역의 계보를 꼽으며 반복 관람하는 관객층이 두껍다. 그 계보가 변화하는 동안에도 변함없이 무대를 지킨 ‘베테랑 배우’들이 있었기에 시카고는 믿고 보는 공연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시카고의 또 다른 대표 넘버 ‘클래스’(Class)로 유명한 ‘마마 모튼’을 합류 시점부터 맡고 있는 배우 김경선. 2007년 시즌 앙상블로 합류한 후 2018년부터 감초 ‘에이모스’로 활약하고 있는 배우 차정현. 서울예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17년째 시카고 앙상블로 활약하고 있는 배우 최성대. 그리고 2008년 시즌부터 앙상블로 무대에 올랐고, 현재는 협력안무 감독을 맡고 있는 김준태. 이들 4명을 시카고 공연이 진행되고 있는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지난달 18일 만났다.

◇“하나의 유기체가 된 것처럼 공연한다” = 벨마가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별다른 동작이나 대사를 하기도 전에 관객은 ‘저 사람 스타구나’ 하는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앙상블 배우들의 힘이다. 최성대는 “앙상블 17명이 각자 분주하게 움직이다가 딱 멈추고 그 1명에게 초점을 맞춘다”며 “브이 모양 대형으로 객석의 시선이 꽂힐 수밖에 없도록 한다”고 했다.

차정현은 이를 ‘아메바 같다’고 표현했다. 그는 “다 같이 모여 있을 때 유기적으로 뭉치고 또 한순간에 흩어지는 모습이 너무 멋있다”고 했다. 무대 위에 함께 있는 15인조 밴드 음악의 타이밍, 다른 배우의 대사 시간 등 여러 요소 중 한 가지라도 어긋나면 공연의 전개가 어그러질 수 있는 것이 시카고의 특징이다. 최성대는 “공연을 하다 보면 내가 했던 역할이 아닌 위치로 갑자기 들어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며 “근데 우리 팀은 서로서로 동선을 다 알고, 수십 년 동안 호흡을 맞췄기 때문에 눈빛만으로 서로를 도울 수가 있다”고 했다.

더구나 시카고의 무대는 좁다. ‘보드빌’(Vaudeville) 형식으로, 장식을 최소로 줄인 무대 위에서 여러 배우가 함께 움직이고 그와 객석의 간격도 좁혀놨다. 그만큼 배우 실력이 출중해야 자신 있게 공연을 펼칠 수 있다. 김준태는 “좁은 공간 안에 움직이는 게 많기 때문에 서로 믿고 움직이지 못하면 부딪치는 사고가 생긴다”며 “내가 이쪽으로 가면 동료가 어디로 갈지도 알고, 서로 그것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믿음’이 시카고의 키워드였다.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시카고 무대” = 김경선이 마마로 발탁됐던 당시 27세로 ‘세계 최연소 마마’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는 역할에 몰입하기 위해 선배들과 식사도 피했다고 한다. 극 중 죄수를 감시하고 나이도 가장 많은 마마의 ‘위치’를 연기해야 하는데, 선배들과의 생활이 몰입을 방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경선은 “중년의 카리스마, 그 나이 때는 없는 면모를 갖추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며 “거친 목소리를 만들려고 목을 긁기도 하고, 이런저런 시도를 정말 많이 했다”고 돌이켰다. 김경선이 마마 역할을 체화하기 위해 가장 많이 연습했던 부분은 ‘움직임’이었다. “최대한 움직이지 않는 쪽으로 집중했다. 움직임이 많을수록, 무게감 있고 카리스마를 내뿜는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났기 때문이다.”

차정현에게 첫 에이모스 무대는 ‘무서움’이었다. 동료들과 함께 무대를 채운 앙상블이 아니라 혼자서 뮤지컬 넘버를 불러야 했기 때문이다. “기댈 데가 없다는 느낌이 두려웠지만, 이제는 세 번째 시즌으로 이 역할을 하면서 ‘편안한 기분’이 든다. 그동안 해 왔던 것이 헛되지 않았구나 싶다.”

◇“시카고는 놓을 수 없는 무대” = 최성대는 한때 은퇴를 고민했으나, 다시 시카고 오디션에 응시했다. 그는 “두 바퀴를 도는 띠동갑하고 함께 공연하면서 비켜줘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며 “다만, 똑같이 오디션을 보고 경쟁하는 것이고 내가 이 무대를 사랑하는데 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협력안무 감독을 맡고 있는 김준태는 “아직도 초연 때 멤버들의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이 있다”며 “시카고는 가족”이라고 했다. 인터뷰 당일 앙상블 배우 중 1명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 지난 2021년 코로나19 상황에서 이와 같은 공백을 채운 배우는 다름 아닌 김준태였다. 감독 역할을 하다가도, 이런 ‘비상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다시 배우로서 무대에 오른다는 것이다. 차정현은 “연기로 뭘 만들어 내려 하지 않아도, 우리가 시카고이고 시카고가 우리가 된 기분을 이번 시즌에서야 느낀다”며 “이번은 정말 자신 있게 공연하고 있다”고 했다. 공연은 9월 29일까지.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