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지켜본 양궁과 사격의 슛오프…보는 사람도 미치겠는데 주인공들의 마음은[파리에서 생긴 일]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사격와 양궁을 주로 취재하다보니, ‘슛오프’에 중독되고 말았습니다. 금메달의 순간에 유독 ‘슛오프’가 많았고 이를 지켜보던 기자도 손에 땀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양궁에서 나온 첫 금메달이자 올림픽 단체전 10연패의 신화를 완성한 여자 양궁에선 ‘강심장’이 부각됐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4강에서 네덜란드, 결승에선 중국을 슛오프 끝에 각각 5-4로 꺾었는데, 중계 화면에 등장하는 심박수가 현장에서도 화제였습니다 .
무명의 베테랑 궁수 전훈영(30·인천시청)이 ‘신 스틸러’였습니다. 올림픽 같은 큰 무대, 슛오프에서 떨리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합니다. 그런데 전훈영은 슛오프에서 첫 발을 쏘는 부담을 안고도 일반인이 쉴 때와 비슷한 74~89BPM 사이에서 활 시위를 당기면서 10점을 쐈습니다. 중국의 첫 주자였던 안치쉬안이 108BPM까지 치솟는 바람에 8점에 그쳤던 것과 비교됐습니다.
사격의 세 번째 금메달이었던 여자 25m 권총은 거꾸로 선수들의 불안한 심리 상태가 관전 포인트였습니다. 양지인(21·한국체대)이 결선에서 개최국 프랑스의 카밀 예드제예스키와 37점으로 동률을 이루면서 슛오프에 돌입했는데,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양지인은 시상식 뒤 예드제예스키의 표적지를 힐끔 바라보면서 “한 발만 더 실수하길 바랐다”고 고백했습니다. 평소 남의 점수는커녕 내 점수도 안 본다는 양지인인데도 슛오프는 잔인할 정도로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상대 예드제예스키는 그 이상으로 휘둘린 게 역력했습니다.
양궁의 마지막 금메달이 걸렸던 남자 개인전에서도 어김없이 슛오프가 나왔습니다. 김우진과 브레이디 엘리슨 모두 슛오프에서 10점을 쐈고, 김우진의 화살이 과녁 정중앙에서 55.8㎜로 엘리슨(60.7㎜)보다 4.9㎜ 가까워 금메달을 가져갔죠.
4.9㎜의 차이는 마지막 화살에 담긴 용기에서 나왔습니다. 김우진은 “바람이 부는 것을 감안해 3시 쪽을 강하게 슈팅했다”고 밝혔는데, 엘리슨이 멋쩍은 표정으로 “난 그냥 중간으로 쐈다”고 말했거든요. 엘리슨이 진심으로 김우진의 금메달을 인정한 순간이었습니다. 잔인할 정도로 짜릿한 슛오프의 어쩔 수 없는 매력입니다.
파리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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