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안 받아요”…종량제 봉투 판매자들의 이유 있는 고집
(시사저널=강윤서·정윤경·공성윤)
누구나 쓰는 쓰레기 종량제 봉투, 구입하기가 가끔 까다롭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봉투 한 장만 사려면 종종 조건이 붙는다. 카드 결제가 안 되거나, 묶음만 살 수 있거나, 다른 상품도 함께 사야 할 때가 있다. 봉투를 아예 구비해 놓지 않는 곳도 있다. 시사저널은 서울 25개 자치구별로 소매점 2곳씩 총 50곳을 돌아보며 종량제 봉투 판매의 현실을 목격했다.
체감온도 32도를 오르내리던 7월30일 서울 양천구의 한 구멍가게. Y슈퍼는 선풍기 한 대로 열기를 쫓고 있었다. 기자는 10리터 종량제 봉투를 요구하며 카드를 건넸다. Y슈퍼 주인이 말했다. "현금 주셔야 해요. 없으면 계좌이체 해주세요. 낱장은 안 팔고 10장씩 해서 2500원이에요." 그는 계좌번호가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카드 수수료 떼면 오히려 적자"
접근성이 좋은 역세권 편의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은평구 응암역 앞 A편의점에는 "종량제 봉투는 현금결제만 가능"이라는 쪽지가 붙어있었다. 현행법상 카드 결제 거부는 불법이다. 게다가 현금 사용이 줄어드는 추세라 카드 결제를 거부한 점주가 소비자와 갈등을 빚기도 한다. 그럼에도 시사저널이 들른 소매점 10여 곳은 여전히 현금결제를 고수했다. A편의점 점주는 "구청이 지정한 업체에서 (봉투를) 사오는데 업체도 현금만 받는다"며 "고객한테 팔 때 카드를 받으면 수수료 뗐을 때 마진이 거의 안 남아서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특히 영세 소매점의 어려움은 더 크다고 한다. 중구청 인근 G슈퍼 주인은 "봉투는 현금만 받는다"며 "마트나 편의점은 다른 물품을 대량 판매하니까 별 타격이 없겠지만 우리 같은 소매점은 카드 결제해 주고 수수료 떼면 오히려 적자"라고 주장했다. 서울시에서 10리터 종량제 봉투 10장짜리 한 묶음의 가격은 어딜 가나 2500원 균일가다. 그런데 G슈퍼 주인은 별말 없이 3000원을 요구했다.
소매점은 종량제 봉투를 팔아 얼마를 남길까. 현금을 받을 경우 마진율은 보통 8~10% 정도로 알려져 있다. 카드 결제를 해주면 수수료를 제하고 5% 내외로 떨어진다. 편의점에서 파는 다른 상품들의 마진이 평균 25~30%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훨씬 낮다.
가령 마포구의 B편의점은 판매가 2500원의 10리터 봉투 10장을 구청 계약업체에서 2270원에 매입해 온다. 매출이익이 230원으로 마진율 9.2%다. 여기서 카드 결제 수수료 3%를 떼면 마진율은 6.2%(매출이익 155원)가 된다. 또 B편의점은 프랜차이즈 가맹점이라 매출이익의 30~40%를 본사가 가져간다. 결국 B편의점에 남는 건 93~109원 정도다. 봉투 수량을 잘못 세거나 분실할 경우 손해를 보기도 한다.
이윤이 거의 없다 보니 점주들은 낱장 판매를 꺼렸다. 시사저널이 취재한 서울 종량제 봉투 소매점 50곳 중 절반 이상인 27곳은 대용량 봉투 외에 낱장 판매를 하지 않았다. 용산구 H마트 직원은 "이왕이면 묶음만 판다"며 "서비스 차원에서 판매하고 있지만 낱장은 발주하거나 관리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구로구 N마트 사장은 "손님이 봉투 한 장만 사려고 하면 껌이라도 곁들여 팔려고 한다"며 "카드 수수료 다 떼면 마진이 5%도 안 될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결국 종량제 봉투는 서비스 또는 상품 구매를 유도하는 미끼 상품인 셈이다.
지자체도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소매점이 호소하자 구청이 불법행위를 묵인한 사례도 있었다. 영등포구 D마트 사장은 "1년 전 구청에 종량제 봉투 마진율로 항의한 적이 있는데 '정 그러면 현금만 받으세요'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정부는 종량제 봉투 비용을 공공요금으로 보고 카드 결제 예외는 안 된다는 입장이지만, 정작 제도적 관리는 허술한 셈이다.
봉투값 7년째 동결…유통 관리에도 구멍
역마진을 막기 위해 봉투 가격을 올리는 방법도 있다. 더군다나 '배출자 부담' 원칙에 따라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처리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도 봉투 가격 현실화가 요구되고 있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 종량제 봉투값은 2017년 이후 동결됐지만 쓰레기 처리 비용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2년 서울의 종량제 봉투 등 판매수익은 가정 배출 쓰레기 처리 비용의 약 40% 수준이다. 나머지 60%는 배출자와 상관없이 세금으로 메우는 실정이다. 당장 봉투값을 올려 주민 부담률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반발을 우려해 지자체에서 선뜻 나서지 못하는 분위기다.
한편 종량제 봉투 조달 방식에도 허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봉투는 구청 등 지자체가 직접 소매점에 공급하거나 판매 위탁계약을 맺은 업체를 통해 공급된다. 이때 다수 구청과 판매 위탁업체는 소매점으로부터 현금만 받는다고 한다. 이에 일부 소매점이 정식 루트가 아닌 저가 업체에서 불법으로 봉투를 조달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서대문구 K슈퍼마켓 사장은 "대용량 봉투를 자주 판매하는 소매점이 불법 업체에서 (봉투를) 매입해 온다는 소문을 종종 들었다"고 귀띔했다. 영등포구 T마트 사장도 "구청 지정 업체가 아니라 더 싸게 매입할 수 있는 업체에서 암암리에 봉투를 사왔다는 얘기를 업계 관계자한테 들은 적이 있다"면서 "봉투로 몇 푼 더 챙기려는 속셈 아니겠나"라고 꼬집었다.
불법 유통은 중고 시장에서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폐기물관리법상 지자체와 대행 계약을 맺지 않은 개인이 종량제 봉투를 판매하는 것은 위법이다. 그러나 7월말 강남구 일원동 일대에서 "음식물 종량제 팔아요"라는 제목과 함께 "1리터 176장, 2리터 83장을 판매한다"는 글이 당근마켓에 올라온 바 있다. 지난 6월에는 당근마켓에 동대문구 종량제 봉투 75리터 12장을 내놓은 이용자가 1만5000원에 거래를 완료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가보다 약 7500원 저렴한 가격이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